제 1244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후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알게 해 준 수요시위

 

나는 수요일 12시에 늘 너무 바빴다.

 

나는 한창 역사 관련 문제가 이슈일 때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통칭 수요시위가 수요일 12시에 매주 평화로에서 열린다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딱 그만큼이었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외운 수학 공식만큼이나 내게 별 의미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런 게 있구나. 와, 정말 힘들겠다.' 이 정도가 당시의 내 정직한 감상이었다. 그래서 입시가 끝나고 잊어버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밀려오는 대학교 1학년의 생활에 치여 그 소박한 감상마저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2년 동안 소녀상도 위안부도 수요시위도 떠올리지 않았다. 생각할만한 순간이 없었다. 내 수요일 12시는 전공 공부와 아르바이트와 연애와 동아리와 과외와 봉사활동과 대외활동과 또 기타 등등의 일로도 차고넘쳤다. 자투리 시간마저 잘라내 사용하던 때라 대학 입시 시절 공부했던 수요시위 따위, 딱히 기억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4.16에 슬퍼하고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에 분노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만 처리해도 잠이 모자랐던 나날들을 보냈기 때문일까, 나는 12.28 합의 이슈를 통해 수요시위가 내 일상에 다시 언급되었을 때도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수요시위에 내가 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시간이 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은 너무 바빴고 수요일 12시는 더 바빴다. 무리라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수요시위는 내 일정표에서 혹시 모를 선택지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로부터 반년 후 어느 무더운 여름 오전 12시에 나는 수요시위의 사회를 보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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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세 번째로 언급된 수요시위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던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에서였다. 여성단체들이 돌아가면서 수요시위를 주관하는데 딱 하필 내가 인턴을 하고 있을 때 여성연합에서 주관하는 순서가 돌아온 거였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여름, 회의실에서 선배 활동가와 한 짧은 미팅 후 수요시위 날까지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던 것에 대한 벌이라도 받는 듯 일이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선언문 약 100여개를 다운받았고 정대협 페이지의 모든 게시물을 읽었다. 첫 수요시위 이후부터 최근 수요시위까지, 관련된 뉴스 기사를 스크랩했다. 사회를 보는 게 걱정돼서 유투브에 올라온 1시간 50분짜리 1212차 수요시위 동영상을 적어도 세 번은 돌려봤고 할머니들의 영상은 짧게 올라온 것이라도 죄다 찾아서봤다. 그냥 위안부, 수요시위, 정대협, 12/28 합의 등의 검색어를 통해 나올 수 있는 모든 자료란 자료는 다 보려고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적당히 알고 적당히 선언문을 쓰고 적당히 사회를 보기엔 지금까지 수요일 12시를 비우지 않았던 내 자신에 이어 그 자리에서 괜히 부끄러울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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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 생각은 맞았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으로 준비하다 보니 8월 17일 수요일의 12시는 금방 왔고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날의 한 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을 거다. 준비해도 그렇게 실수가 많았는데 말이다. 다행히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인도와 함께 바위처럼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박차옥경 여성연합 사무처장님의 인사말, 윤미향 정대협 대표님의 경과보고, 참가단체와 참가자 소개, 자유발언, 할머님들의 발언, 그리고 여성연합 고래 활동가의 성명서 낭독까지. 자유발언 참가자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 정해진 시위 시간을 넘겨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제1244차 수요시위에서는 정말 시간이 강물 흐르듯이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훌쩍 흘렀다. 나는 사회를 보는 입장이라서 계속 뛰고 움직이고 메모를 전달받고 설명을 들었다. 끝나고 자유발언 중 어떤 말이 좋았다, 어떤 건 신기했다, 이런 후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누가 했어요?' 하고 물어볼 만큼 진행하기 바빴다. 물론 눈 앞에 노란 나비 부채들이 팔랑거리던 때의 울컥함과 시작하기 전 뭔지 모를 떨림, 전체 일정이 끝나고 날 알아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괜히 으쓱했던 마음은 내가 사회를 보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럼에도 충분히 내 첫 수요시위를 차분하게 마음으로 느끼고 감상할 여유는 부족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다 끝난 지금 나는 이정도 말은 드디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문제에 이제 관심이 있다. 이 관심이 언제 다른 것들에 밀려 사그라들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히 이 문제에 꽤 관심이 생겼다. 이내 곧 또 다른 일상에 치여 지금 이 마음이 바래지는 날이 올지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것이다.

 

또 언젠가 내게 수요일 낮 12시가 텅 비는 날이 온다면, 그 날 나는 평화로로 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라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다른 일정이 생겨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고, 늦잠을 자다 잊어버릴지도 모르고, 날씨가 더워(난 정말 더위에 젬병이다) 저 멀리서 마리몬드 신상품이나 뒤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내 수요일 12시에 하나의 선택지가 더 추가되긴 했다. 여성연합을 통해 만난 수요시위는 딱 그만큼, 내 정신없이 흘러가던 수요일 낮 12시에 또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

 

마태영(탱) 여성연합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