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콘] 세상을 바꾼 그녀들(특별판) _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상임대표

 

“지난 30년 간의 활동, 여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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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동의 한 장면’을 묘사해 주신다면?

이미 많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 사건이 내 운동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떠올라요. 여성운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여성들이 성적 착취를 당하면서 노예처럼 감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건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근처에서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착취적이고 차별적인지를 또다시 현실로 느꼈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때가 저한테는 정말 가슴 깊이 남는 한 순간이었어요.

 

지난 활동을 네 글자로 표현한다면?

학생운동을 끝내고 88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30년 동안 절반은 지역에서, 절반은 지금 있는 서울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네 글자로 표현하면 ‘여한 없다’에요. 부족한 상황이나 준비되지 못한 것들 때문에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어떤 미련도,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아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 굉장히 편안해요.

 

나에게 여성연합이란 무엇인가?

여성연합은 저에게 ‘좋은 친구’에요. 힘들 때도 함께 하고 기쁠 때도 함께 한 좋은 친구요. 잘못이 있을 때는 절대 봐주지 않는 야속한 친구기도 하죠. 여성연합은 여성운동을 하는 우리 모두들의 상징적인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전국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의 연대가 있기 때문에 저는 여성연합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함께 한, 앞으로도 함께 할 수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들 모두가 나에게는 좋은 친구이고, 나를 성장시키고 성찰하게 하는 좋은 관계죠. 절대 봐주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지만.

 

여성연합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제일 시원한 것?

‘표현의 자유’라고 이미 여러 번 말하고 다녔는데, 단체의 대표라는 사실 때문에 내 개인의 입장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지만 여성연합과 분리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서 자제해야 했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어요. 책임이 많이 결합돼있는 이 자리를 떠나면 훨씬 자유롭게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많이 억압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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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힘이 여성연합 대표직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게 했나?

자기 삶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여성연합에서의 활동은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었고, 나의 일, 자연스러운 생활이었기 때문에 ‘때려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고 지내왔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있느냐’, ‘징그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누가 강요해서 살아온 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 같아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본인의 활동 모습이 있다면?

지우고 싶은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만 옛날 일을 잊어버리기도 하고요. 내가 부족해서 안타깝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고 ‘그 때 이렇게 했다면 더 잘 했을 텐데’하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여한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지나온 모든 활동이 내가 살아온 나의 이력이기 때문에 저는 굳이 지워야겠다고 떠오르는 건 없어요. 대신 제가 오래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야사를 많이 알고 있어서 언젠가 이걸 말하는 날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여성연합 사무처 및 구성원들에게 목 놓아 외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외치시라~

그동안 여성연합 사무처장을 하고 대표를 하면서 여성연합의 활동가들이 냈던 사직서들을 다 모아놨거든요. 그걸 어느 순간에 다 공개해서...... 농담처럼 말했는데 이건 여담이고, 사실은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건강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금 여기서,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건 제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하는 말인데.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할 시간과 장소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같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행복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직서 같은 거 쓰지 말고...

 

2017년 1월 12일에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향후계획)

대표라는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역할을 하게 될 뿐이지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의 투쟁, 여성운동을 했던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12일도 오늘과 같은 날일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매일이 계속 이어질 것 같고, 대신 어깨는 덜 무거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동안 시간이 바쁘다는 이유로 못 했던 독서도 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데도 일하고 관련이 없어 자꾸 미루게 된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주변에 자꾸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첫 번째로는 그런 분들에게 찾아가서 건강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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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 겸 덕담 한마디(악담도 괜찮아요^^)

건강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도하기 때문에 건강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너무 절실하게 들어요. 나도 그동안 건강을 많이 돌보지 않고 충분히 건강하다고 자만해 왔었는데 다들 돌아보면서 건강한 새해를 꼭 보내면 좋겠어요.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옆 사람도 불행하고 행복할 수 없으니 꼭 건강을 잘 챙기기 바랍니다. 악담이라면, ‘니네도 당해봐라’, ‘열심히 살아봐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곤 하지만 그건 웃으면서 하는 말이에요. 실제 나는 여성단체연합이라는 조직 안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고, 함께 생활을 꾸려가고, 세상을 바꾸는 고민을 나누는 것이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입장벽이 있어 오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끼리 만나 삶을 바꿔나가는 경험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자신을 키우고. 마음들을 보태고 나누는 것은 축복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축복을 충분히 누리라고 하고 싶어요. 그걸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인터뷰/정리 : 정현찬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