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이 없는 민주주의라면, 아직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1,000여명 여성들 모여 축제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해소, 여성대표성 확대, 차별금지법 제정 외쳐
신주욱 작가와 현수막 제작, 손피켓 만들기 등 다양한 부스 행사 열려

 

2017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 자원활동 참가자들은 3월 4일 토요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 광장에서 오전 11시부터 미리 모여 다같이 김밥을 먹고 행사 준비를 했습니다! 아직 3월 초라 날씨가 춥거나 바람이 많이 불거나 눈이나 비라도 올까봐 걱정을 했었는데요, 다행히 행사당일엔 하루 종일 너무나 포근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제33회 한국여성대회를 맞이하여 기념제작한 티셔츠를 입고 활동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이 점심을 먹은 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함께 ‘손피켓’을 미리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요, 손피켓이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인 박스나 종이를 활용하여 만든 개성이 담긴 피켓을 의미합니다. 지난 1월 전 세계 각지에서 열렸던 여성행진에서도 시위 참여자들이 만들었던 인상적인 피켓들을 볼 수 있었지요. 저도 여성대회 손피켓 만들기 부스에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주제로 피켓을 만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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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본행사에서는 손피켓 만들기 이외에도 행사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부스들이 준비됐습니다. 먼저, ‘신주욱 작가와 함께하는 드로잉’ 부스에서는 행사참가자들이 물감으로 그림에 색깔들을 알록달록하게 채워 넣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부스에서 색칠된 그림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행진에서 현수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페미법률 상담소’에서는 사전신청을 통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드로잉 부스의 뒤쪽에는 ‘역대 한국여성대회 슬로건으로 보는 여성운동 30년’을 소개하는 전시가 있었는데요, 1985년부터 2017년까지의 흐름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2004년까지만 해도 ‘남녀평등’ 혹은 ‘양성평등’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면 2010년대 이후부터는 ‘성평등’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의 슬로건의 경우 ‘민족’이나 ‘민주’ ‘민중’이라는 이름이 여성이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했으며,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여성 대표’, ‘여성의 시대’, ‘여성의 한 표’처럼 여성대표성을 강조하는 흐름도 보입니다. 2000년 이후에는 ‘성매매방지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와 같은 이슈들이 다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양극화문제 및 복지문제 해결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폭력 없는’, ‘평등’, ‘차별철폐’와 같은 중심적인 가치들은 30여년의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슬로건에 등장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폭력과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핵심적인 지향점이자 과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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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무대에서는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자유발언과 플래시몹, 축하공연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낙태죄폐지와 성별임금격차해소, 여성대표성(여성정치참여 확대) 및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요구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보신각에는 정말 많은 인원의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저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뒤에서 서서 행사를 지켜보았을 정도였습니다. 보신각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보라색 풍선과 장미를 나눠 받기도 했으며, 보라색으로 드레스코드를 맞춰서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보신각에서 출발해 안국동을 거쳐서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졌던 행진은 보라색 물결로 물들여졌습니다. 보통 ‘행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굉장히 딱딱하고 어딘가 박자를 맞추어서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야 할 것만 같지만 이날 페미니스트들의 행진은 그야말로 ‘축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I’ll Survive”와 같은 팝송이 흘러나오고 다들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거리를 행진 하는 건 정말 짜릿했습니다. 그리고 행진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우리가 누구입니까?”라고 사회자가 선창하면 “페미니스트!”라고 한목소리로 대답할 때였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에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함께 “페미니스트!”라고 외칠 때 일종의 해방감과 사이다 같은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월 4일 행사에 참여했던 저의 동료 중 한 명은 함께 행진을 하면서 저에게 한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었는데요, “왜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하는걸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행진할 때는 이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볼수록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의 구호는 “Feminism perfects democracy”인데 이 구호를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고 하는 것이 단지 번역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이 지금까지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사회에서 전개되어온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에 민주화를 통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해졌던 여러 부당한 억압들이 사라진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민주화가 과연 여성들의 삶에도 적용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일도 하고 고등교육도 받고 투표도 할 수 있는데 ‘이미’ 평등한 거 아니야?”라는 말들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선 “성평등이 없는 민주주의라면, 아직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이미 완성된 민주주의’가 아니며, 누군가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저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하는 누군가 중 한명으로서 한국여성대회 참여를 계기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글 / 사진 : 이소윤(제33회 한국여성대회 온라인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