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15.04.27 조회 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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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_시즌2]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함께 걸으니 길이 됐어요”



성폭력상담소 창립멤버, 소장으로 6년만의 컴백
사람들의 인식과 성문화 바꾸는데 주력해야
‘길거리 괴롭힘’ 사업 시작, 6월 새집 입주 앞둬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모르고 시작했죠. 그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걸었죠. 함께 걸으니까 길이 됐어요. 그렇게 막 달려왔는데 벌써 24년이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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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없이 무척이나 밝고 활기찼다.>


현장, 생각이 곧 길이 되는 곳

여러 번 번복된 약속 끝에 만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무척이나 밝고 활기찼다. 흡사 ‘아이돌 스케줄’ 같은 바쁜 일정 때문에 많이 피곤해 보일거라는 필자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창립 멤버이자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소장을 지낸 그는 올해 2월 다시 소장으로 출근했다. 박사논문을 위해 상담소를 ‘떠난지’ 6년만의 컴백이다. 이 소장은 박사학위 취득 후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를 지낸바 있다.

“현장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곳이에요. 생각이 곧 길이 되는 거죠. 상담소는 저에게 고향 같고 친정 같은 곳이에요. 30대, 40대, 50대까지 내가 여기서 성장했고, 인권, 여성, 여성주의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잖아요. 그러면서 만났던 수많은 분들, 특히 생존자들이 저에게 주신 영향은 엄청나죠.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제가 다시 상담소로 돌아오기로 결정하는 걸 보더니 아들이 ‘엄마 참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주더라고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24년을 달려오면서 3번째 소장의 임기를 시작하는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또 강산이 2번 하고도 반이나 변했을 세월 동안 현장의 최전선에서 그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  
“2000년대 초반에 소장을 할 때는 그냥 앞을 봤어요. 지금은 제 바람이기도 하지만 조금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시선, 멀리도 보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여유라면 여유 같은 것이 생겼어요. 이제껏 법제도 만드는 일에 굉장한 중심을 뒀다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선 구체적인 법 제도의 모니터링이 필요한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인식과 성문화를 바꿔갈까,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법제도도 제대로 설 수 있는 거잖아요.”

상담소 개소 당시 피해생존자들은 ‘30년 전의 일이에요. 말해도 되나요’라며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피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소장은 그 시절에 비해 최근 피해자들의 권리의식은 상당히 높아졌고, 대처 과정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들 있다며 변화상을 짚었다. 하지만 ‘정조관념’만큼은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정조에 관한 죄가 실제로는 없어졌지만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 피고인의 변호인은 물론이고 경찰, 검사, 판사까지 다 그 개념 아래에서 움직이더라고요. ‘네가 처녀야?’ ‘네가 보호할만한 정조를 가졌어?’ ‘과거에 이런 성적 편력이 있는데 네가 피해받았다는 거 맞아?’라고 공격해요. 25년 전과 똑같아요. 이 부분에서 여성들은 변했는데 남성들은 변하지 않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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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이 소장은 대학 때 은사의 소개로 ‘여성학’을 알게 됐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당시 학생회장으로 시위에 참여는 했지만 그 ‘운동’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운동’에 더 심취했었다. 대학 입학식 날도 테니스장으로 달려갔던 그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대학 졸업 1년 후 입학한 여성학과는 ‘오아시스’ 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초창기 여성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몇몇 지인과 함께 성폭력상담소 개소를 준비했다.

“상담소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상담소가 이렇게 제 삶의 한가운데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1991년 총무로 처음 상근활동을 시작했을 때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 사건 공동대책위에 참여하면서 소위 ‘운동’ 마인드, 활동가 정체성이 생겼어요. 사람들과 연대하고 ‘성폭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사회 변화를 목도하는,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기쁨을 느꼈어요. 또 피해생존자 옆에 그냥 서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어요. 지금도 법정에서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게 아니다’라고 외친 그분의 21년 간의 분노와 고통, 절규가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20년 넘게 ‘반성폭력 운동’의 길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여유’를 갖고 반성폭력 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반성폭력의 의미가 뭔지, 또 제도화의 물결 속에서 ‘운동성’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면서 가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법 제정 20년,  이제 많은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아니에요. 제가 강의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성매매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거에요. 단순한 성희롱, 성폭력 예방 교육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성과 관련된 문화나 인식의 틀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 그것이 가장 큰 관건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0년 이상 개최해왔던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올해는 쉬기로 했다. ‘말하기 대회’는 성폭력 생존자를 비난하는 사회의 편견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성폭력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로 2003년 그가 소장으로 근무할 때 처음 시작했다. 말하기 대회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공감을 통한 치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행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10년 넘게 한 행사에 대해서 조금 멈춰서서 돌아보는게 필요합니다. 이 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상담소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서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인식들이 과연 우리 운동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쉬어도 된다, 한 번 안해도 되고 계속 안해도 된다, 당위에 고착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후배들은 상담소 대표 행사이기 때문에 쉬는 것에 대해 부담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옛날에 활동했던 사람들, 선배들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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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입주 예정으로 건축 중인 상담소 공사 현장에서 이미경 소장이 흐뭇하게 조감도를 바라보고 있다.>


“소장은 윤활유 같은 역할”

말하기 대회를 쉬는 대신 상담소는 올해 평등한 공공장소를 만들기 위한 ‘노상의 진상을 고발하는 일상툰’ 사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이 사업은 “여성이라는 이유, 성소수자라는 이유, 외형이 여/남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겪게 되는 다양한 괴롭힘, 즉 노골적인 시선과 폭언, 성소수자 혐오를 담은 언행, 젠더표현에 대한 간섭이나 모욕행위, 촬영, 따라오기, 법/제도로 처벌하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이 우리가 평등하게 ‘공공장소’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됐다. 또 대법원 판결 중 문제가 있는 판결이나 좋은 판결들을 판례 평석해 자료집으로 묶어 해당 법관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06년에는 한 달에 한 권씩 자료집을 묶어내기도 했었다.

“제가 아침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어제 상담 일지를 보는 거에요. 아무리 바빠도 꼭 지키려고 해요. 우리가 그냥 상담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상담 안에서 피해자분들이 우리 사회에 뭘 이야기하는지를 짚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 이슈 파이팅 할 부분과 정책제언, 피해자 지원은 물론이고 우리가 할 일들을 찾는게 중요하죠. 이것은 상담팀만의 역할이 아니라 성문화 운동팀과 길거리 괴롭힘 프로젝트팀과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부설 연구소나 쉼터와는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죠. 같은 상담소이지만 자칫 모두 섬으로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제 할 일인 것 같아요.”

성폭력상담소는 올해 6월 쯤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서울 합정동의 기존 상담소 건물은 지금
한창 새단장 중이다. 58명의 발기인이 10만원씩 내 보증금 500만원짜리 7.5평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성폭력상담소는 24년 만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새 보금자리를 건축하고 있다. 지하 강당에서는 상담원 교육도 하고 총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에는 카페를 임대해 건축으로 낸 빚의 이자를 갚아야 한다. 빚을 다 갚고 나면 이 공간은 담론의 장, 교류의 장으로 꾸릴 계획이다. 누구든지 와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 오래지 않아 마련 될 것이라고 이 소장은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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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한국여성단체연합 정기총회에서 신임 임원으로 선출된 이미경 소장 모습>


“우리는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요. 굉장한 축복이죠. 제가 우리 후배 활동가들을 보면 너무 멋져요. 저 젊은 나이에 거의 투신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선배로서 이들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물적 기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 안에서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니까요. 결국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이 너무 멋지다고 박수쳐 주고 싶고, 앞서 그 길을 걸어온 나는 너무 행복하노라고 말하고 싶어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즐겁고 진심으로 가슴뛰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결국 그런 모습들이 후배들에게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글/사진 :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4월 문을 연 이후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과 성폭력의 원인 및 대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인간중심적인 성문화의 정착과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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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2014년 시즌1을 진행한데 이어 2015년 시즌2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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