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여성, 국가발전 위한 도구 아니다

by 여성연합 posted Dec 24, 200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여성연합 김기선미 정책부장   ⓒ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 국가발전 위한 도구 아니다

김기선미(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PD수첩의 방송이후 온 나라 전체가 한 차례 큰 몸살을 앓고 난 듯하다. 적어도 연구의 진위에 대한 서울대 측의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진 이 파장이 어느 정도까지 번져나갈지 예측할 순 없지만, 일단 숨을 고르고 냉철하게 그동안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의 입장에서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최근의 논란을 되짚어보고 싶다. 일단, 연구의 과학적인 진위 부분은 전문 과학자들이 규명할 문제로 논외로 하겠다. 가장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연구의 윤리문제, 여성의 몸에 대한 시각, 언론의 태도, 그리고 이러한 논란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개발독재의 부산물과 무비판적 애국주의가 만났을 때

PD수첩 방송으로 인해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난자의 공여과정이 국제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윤리 기준을 명백히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이후 방송 제작진이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 밝혀지면서 연구의 윤리 문제는 마치 면죄부를 얻은 듯 어디론가 실종되고 말았다. 물론 PD 수첩의 제작진이 취재 윤리를 어긴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윤리 문제가 덮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 결정적인 의술이 될 수 있다하더라도, 만일 그 과정에서 윤리문제가 간과된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류에게 더 큰 해악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

윤리문제가 이렇게 쉽게 덮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개발독재과정에서 만들어진 성장 중심주의, 속도주의, 일등 중심주의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성장과 개발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 있다는 개발독재주의와 세계 제일의 배아복제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난자공여과정에서 발생한 윤리문제 정도는 덮어둘 수 있다는 논리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배아줄기 세포 연구와 관련하여 제기된 윤리문제를 꼼꼼히 살펴볼 여유도 없이 더 나은 연구 성과를 향해 앞만 보며 돌진해야 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이러한 부산물들이 무비판적 애국주의와 만났을 때 그 결과는 더욱 치명적이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가 곧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으로까지 매도되는 분위기는 무비판적 애국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몸을 국가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지

특히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황우석 박사 연구 논란과정에서 드러난 여성의 몸에 대한 시각에 대해 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논란 과정에서 여성의 난자, 여성의 몸은 배아줄기 세포를 위한 도구의 의미로, 국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밖에 인지되지 못했다.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채취 과정 자체가 여성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정보는 언론을 통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이는 국가적 목적을 위한다면 여성의 몸 정도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가부장적 시각이 명백히 드러나는 맥락이다.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배아줄기 세포가 난치병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연구에 필요한 엄청난 수의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여성들의 건강이 침해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연구 자체가 과연 타당한가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또 하나 이번 황우석 박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우리는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과정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언론이었지만, 무비판적 애국주의에 기반하여 건전한 논의 자체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한 것도 역시 언론이었다. 마치 황우석 박사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의 국익을 크게 훼손한 것처럼 호도하고, 객관적인 언론의 시각을 상실한 채 일방적인 황우석 박사 편들기에 나선 언론의 모습은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다양성과 민주성에 기반 하여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지금, 비판기능이 상실된 언론은 우리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유해한 존재일 뿐이다.

몸살도 잘 다스리면 오히려 몸에 약이 된다고 한다. 이번 황우석 박사 연구 논란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열린 토론과 검증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낸다면, 이번 황우석 박사 논란은 오히려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레이버투데이 12월 15일 기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