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엄마의 몫” 편견깨고 아이 함께 돌봐
차등 보육료제 적용…저소득층 가정 부담없어


3. 프랑스 : 주민단체 '빠랑부주(Parenbouge)' 부모들의 참여·전문가 조언·지자체 지원 ‘박차’



▲ 지난 2002년 빠랑부주 설립을 주도한 조직가 피에르 이브 장. 그는 부모들의 끊임없는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낼 것을 강조했다.(사진 왼쪽) 빠랑부주가 운영하고 있는 탁아소 까레에서 남성 보육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까레는 유리창을 통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을 서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나는 여성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아홉 살 난 딸아이와 연년생인 아들, 이렇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 그나마 손이 덜 가지만 어릴 때만 해도 친정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일과 보육을 양립하기 힘들었다. 야근이나 출장이 있을 때면 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나에게 알맞은 보육 서비스가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프랑스 헨느시의 주민단체 ‘빠랑부주(Parenbouge)’는 나 같은 직장인 엄마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안 보육 서비스 모델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헨느시는 인구 21만3,000명의 아담한 도시다. 학교 밀집 도시, 행정도시, 자동차산업 도시, IT 도시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이 헨느시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빠랑부주가 운영하는 탁아소 까레(Carais)였다. IT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이 탁아소는 지난 2004년 4월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기존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기 어려운 직장 여성들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빠랑부주의 조슬린 회장 역시 IT 산업단지에서 일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인 엄마였다.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그에게서 여전사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읽을 수 있었다. 반면 운영 책임자인 임마누엘은 이웃집 아줌마처럼 푸근했다. 마침 까레의 책임자가 자리를 비워 임마누엘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까레에는 공간 곳곳에 유리창이 있어 어디에서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침 책을 읽어주는 남자 보육사 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는 하루 동안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기록하는 노트가 있었다. 아이를 찾아온 부모들은 보육사가 기록한 그 노트를 가장 먼저 읽어보고 보육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등‘소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까레에서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생후 2개월부터 만 4살(예외적인 경우 6살)까지의 아이들을 돌보아준다. 장애 아동도 이용할 수 있다. 전체 정원이 25명인데 보육사는 12명으로 1명의 보육사가 평균 2명의 아이를 돌본다. 프랑스에서는 보육사 1명이 돌보는 아이는 3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별로 원하는 보육 시간대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보육사 또한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다.

엠마누엘은 “회사 근처에 탁아소가 있다 보니 아빠들이 자녀를 맡기고 돌보는 일이 일상화되고 보육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까레와 같이 기업들의 지원과 협력을 끌어낸 보육시설은 예외적이라고 했다.

빠랑부주는 재가 보육 서비스인 빠랑돔(ParenDom)도 운영하고 있다. 까레가 생기기 전인 2002년부터 제공해온 서비스다. 당시 주민들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했던 것이 재가 보육 서비스였다. 부모가 비정규직이나 불안정 고용에 처해 있는 경우,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방법 외에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빠랑돔은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를 가진 아동이 있으면 문제 해결이 가능한 전문성을 갖춘 보육사를 파견해준다.

특히 일반 재가 서비스 이용 요금은 시간당 16~19유로로 비싼 편이라 저소득층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하지만 빠랑돔은 헨느시와 가족금고, 유럽사회기금 등의 지원을 받아 시간당 1~9유로로 비용 부담을 줄였다. 또 부모의 소득에 따라 차등 보육료를 지불하도록 해 저소득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까레 역시 차등 보육료제를 운용하고 있다. 부모가 내는 돈은 전체 보육비용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민간단체의 경우 예산의 30% 정도가 유럽사회기금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모델이다.

▲ 주민자치센터연합을 방문했을 때 화요엄마모임과 함께 한 점심 식사. 화요엄마들 한국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궁금해 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우리는 2002년 빠랑부주 설립을 주도한 피에르 이브 장의 집을 방문해 빠랑부주의 생생한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마음씨 좋은 아저씨였다. 젊은 시절부터 공공육아, 공동주거협동조합 등에서 활동하고 노조 컨설턴트 전문가였던 장은 2001년 헨느 시의회로부터 빌장 지역의 주거욕구조사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진행했다.

당시 조사 결과 주민들은 크게 청결한 지역관리 문제, 노인들의 고립과 소외감 문제, 탄력적인 보육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드러냈다. 이후 각 주제별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장은 보육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여해 주민들을 조직했다. “간병인, 실직자, 수위, 청소부 등은 그런 의사를 잘 표현하지도 못했어요. 기존 공공보육으로는 가정과 일을 양립할 수가 없었고 하지만 주민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개인의 욕구가 우리들의 문제이며, 이것은 공공 부문에 요구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스스로 조사 작업에 참여했으며, 시청을 찾아가 주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시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제시해 지자체와 외부 단체의 협력을 끌어냈다. 이러한 과정을 1년 반 정도 거쳐 드디어 2002년 빠랑부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피에르 이브 장은 “함께 참여하고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욕구를 이끌어내는 일상 교육이 중요하다”며 더불어“서로 만나고 싶고 보고 싶도록 친밀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랑부주가 성공적 보육 모델이 된 것은 부모들의 적극적 참여, 전문가의 조언, 지자체의 재정적 도움, 관련 단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 날 우리는 빠랑부주를 도와주었거나 현재까지 돕고 있는, ‘빠랑부주 서포터즈’들을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헨느시 빌 장 지역의 주민자치센터연합이었다. 1970년에 설립된 곳으로 주로 빈민층을 위한 사업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을 지원하며 저소득층 가족들의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특히 아동문제 예방과 사후 대처를 위한 지원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연합은 빠랑부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함께 논의할 장소를 제공하고 사람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주민자치센터연합의 엄마 모임인 화요 엄마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화요 엄마’들은 계획에 없던 점심 식사를 우리에게 제안했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관심사를 물어보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헨느시 시간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시간관리사무소는 헨느시 여성문제를 직업과 관련해 분석하고, 직장과 가사 양립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나 만화 등을 통한 의식개혁 작업을 한다고 했다. 또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성 인지 사업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유럽의 모델은 우리에게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우리가 헨느시에서 홈스테이를 한 집의 부부도 돌이 된 아이를 빠랑부주가 운영하는 까레에 맡기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된 남자아이와 6살짜리 여자아이도 있었는데 부부가 둘 다 일을 하기 때문에 부인은 주로 아이를 돌보고 남편은 집안일을 했다. 우리에게 훈제돼지와 감자요리, 와인으로 된 저녁 식사를 차려준 것도 남편이었다. 까레를 통한 아빠들의 자연스런 보육 참여와 헨느시의 다양한 성인지적인 정책들이 어우러져 이처럼 평등한 가정을 일구어낸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도 저출산 문제로 인해 보육비 지원이 늘어나는 등 정책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빠랑부주처럼 이용 시간대가 자유롭고 저렴한 보육 서비스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의 빠랑부주 같은 시설이 한국에도 생긴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조금은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윤김정숙 (포항여성회)

* 이 기사는 우먼타임스에서 전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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