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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부러운 게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 화장실에
가야하는데 휴게소까지는 아직 멀 때, 남성들은 잠시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거침없이 볼일을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caption id="" align="alignright" width="156" caption="권미혁 여성연합 상임대표"][/caption]


이번 일본의 지진해일 사태를 보며 갑자기 화장실과 생리대 부족으로 인한 여성의 고통이 떠올랐다. 자연재해가 비단 살고 죽는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 문제와 직결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재난을 ‘젠더 렌즈(여성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일본의 피난소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잠시도 엄마에게 안 떨어지려는 아이를 보았다. 돌봄을 보통 이중의 짐(double burden)이라고 한다. 기꺼이, 그리고 살아남아 주었음을 감사해 하면서 그 엄마는 아이를 돌보겠지만 실제 자신이 당한 정신적 고통은 돌볼 겨를이 없다. 식량과 구호품 배급 과정에서도 여성들은 자기 몫을 챙길 수 없다. 돌봄자들에게 양보하면서 영양과
건강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게 무너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집안의 어린이, 노인, 환자에 대한 1차적 돌봄자가 되어야 하는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젠더 렌즈’에 포착된 첫 번째 상황이 아닐까 한다.


그 외에도 많이 있다. 치안과 프라이버시의 취약성으로 인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무력분쟁과 테러라는 재난상황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폭력은 이미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인질 억류, 침략, 인종분쟁 그리고 피난민 여성들의 고통은 재난의 또 다른 모습이다.


또한 재난 현장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특히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당장 아이를 데리고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만 보통 여성들은 2차적으로 고용되게 마련이다.


‘젠더 렌즈’의 마지막 포인트는 실제 여성들이 재난 상황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전쟁이 나면
가장 불쌍한 존재가 여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고통이 큰 것이다. 그러나 구호현장에서도 여성, 노인, 어린이들의 필요와 욕구는 쉽게 간과된다. 재난방지 및 대비를 위한 훈련경험도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복구 작업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제한된다.


유엔 국제 재해 경감 전략기구(UNISDR)가 141개 국가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자연재해 피해로 사망한 여성인구가 남성보다 높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국가일수록 그 차이는 크게 나타났다.


바로 성평등 관점이 재난분야에서도 통합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실제 2005년 일본 고베시 효고현에서 개최된 재난 감축 국제회의에서 합의한 효고 프레임워크는 모든 재난위험관리를 위한 국가정책, 계획 의사결정과정과 재난피해조사. 조기경보, 정보관리와 교육훈련부분에서 성평등관점의 통합을 권고하고 있다. 이같은 국제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개별국가의 재난방지 및 대응활동에서 성평등한 정책실행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이다.


참혹한 지진해일 참사를 당한 일본 국민과 여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지난 1998년 과테말라 허리케인 복구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로 알고 있던 집짓고 우물 파는 일을 여성들이 주도했던 것처럼, 1985년 멕시코 지진 당시 여성들이 노조를 조직해서 재난시 가장 먼저 해고되는 여성고용률 회복활동을 전개한 것처럼 일본 여성들이 지역사회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활동을 하기를 기대한다.


사건이 터지면서 여성이 여성을 돕자는 많은 문의가 여성단체연합에 있었다. ‘젠더 렌즈’를 버리지 않으면서 일본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글 권미혁 여성연합 상임대표

2011.3.25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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