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기나 긴 겨울이었지만 여성연합과 함께여서 그런지 결코 춥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경쟁체제 속에서 스펙 한 줄을 위해 전력투구하며 세상이 말하는 ‘성공’만을 쫓기 바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대학생으로서 중요한 가치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학 입학 이후 ‘투쟁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세상을 바꾸겠다는 나의 생각들은 현실에 부딪혀 좌절되곤 했다.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사회악을 양산해내는 근본적 원인을 뿌리 뽑는 것 자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생각하고 품어왔던 모든 가치관이 거대한 구조 하에서 무너져갔다.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표류했으며,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잡아주었던 원동력은 최소한 정의는 살아있다는 믿음이었다. 나에게 시민사회는 그러한 믿음을 확인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작은 발걸음으로나마 실현시킬 수 있을 공간인 듯했다. 인턴생활을 하면서는 교과서적·사전적 의미로 배운 시민단체를 직접 경험하며 풀리지 않는 각종 사회현상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전공 특성 상, 대학 입학부터 반(反)성폭력 문화와 페미니즘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따로 여성학을 공부해보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젠더를 다루는 교양과목들도 학내 구조조정을 거치며 유사 학과와 유사 교과목들은 통폐합되어버렸기에 페미니즘을 깊게 공부해볼 기회는 없었다. 나는 일종의 대학 졸업 전 버킷 리스트 속 하나로 페미니즘에 어느정도 식견을 가질 수 있기를 목표해왔는데, 여러 현실 앞에서 자연스레 숨어버린 나의 페미니즘 의식을 여성연합에서 일하는동안 깨우고 싶었다. 그리고 여연에서 인턴생활을 하며 그러한 감수성들은 충분히 자극될 수 있었다.
특히 여성연합에서 제1112차 정기수요집회를 주관하게 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속 여성인권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국제적인 연대 차원에서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2014 올해 제30회 한국여성대회를 준비하면서는 역대 여성운동의 간략한 역사들과 그간 여연의 의미있는 활동들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 전반에 성평등사회를 그리고 소외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들이 녹아있으며 또 사회적으로 대중들에게 확산시키고자 하는 즐거운 운동을 만들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성연합 내부의 회원단체들 간에 그리고 다른 시민단체들과도 유기적으로 조직되어있는 네트워크가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2013년 12월 23일, 첫 출근하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확히 그 전날 22일, 내 기준에서는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고 첫 출근 당일에 활동가 선생님들께서 민주노총 지지 차 현장에 다녀오시곤 했다. 놀랍고 신기했다. 그 이후에도 여성연합에서 일하면서 나도 기자회견에 두 차례 참여할 수 있었는데 매서운 추위에도 서로 으쌰으쌰하며 연대하는 그 현장들이 인상깊었다. 또한 첫 출근하던 날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그리고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이슈들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사회의 가장 낮은 목소리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도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열정이 가득한 분들의 결집체. 이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사회가 이 정도의 모습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일테다. 매력 있다. (매력있어~ 내가 반하겠어~)
사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회문제들에 접근을 할 때 가장 답답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이런 것들이 화두가 되어 우리가 고민해볼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밑바닥에 깔려있던 문제점들을 파헤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함께 고민해볼 필요성을 언급하는 그 자체에는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뭔가 가려웠던 부분들을 긁어줄 수 있었으면 했는데, 실제로 여연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은 현실 인식 을 넘어서서 결과물로 실현시키고 구체화시키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또한 사회생활이라는 조직문화를 체험해보지 못했던 나였는데 굉장히 수평적인 듯하면서도 체계적인 질서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여연! 3.8여성대회를 위해 조직 및 홍보 등에서 선생님들을 일부 지원하며 배운 업무들은 새롭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학생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정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여성단체로서 많이 알려져있는 덕분이기도 하고 여연의 역사가 있는만큼 많이 구조화되어있는듯 하여, 또 늘 바쁘신 와중에도 챙겨주시고 아낌없이 충고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업무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꽤나 안정적이었던 지난 두 달 간의 생활이었다. 사실 고민의 연속이기도 했다. 나 개인의 생각이 아닌 단체의 생각, 단체의 이름에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기는 하지만 괜히 실수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사실 상 두 달간 일한 것만으로 이 여연과 여연의 활동들에 대해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 여전히 어렵고 또 모르는 것이 많지만, 사회 각각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 특히 여성계 그 내부를 볼 수 있어서 무엇보다도 좋은 경험이었다. 잠자고 있던 나의 페미니즘 감수성을 깨워줬을뿐더러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는 세상, 차별 없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의 아름다운 열정에 많은 용기와 힘을 얻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꿈꾸는 세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느낌이었다.
솔직히는 개인적인 아쉬움들도 많이 남는다. 그러나 부족한 인턴에 늘 칭찬 아끼시지 않고 언니처럼 잘 대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나가기만 하면 잃어버리고 오는 트라우마가 생길뻔 했던 각종 에피소드들(이제서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좋은 기억들을 안고 이 8주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연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나도 행복한 삶에 대한 부단한 고민들을 해나가야할 것 같다. 공식적으로는 인턴생활이 끝났으나 앞으로 여연의 각종행사들에서 비공식적인 만남, 그 인연은 계속 되리라 믿는다 쭈욱~ 모두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