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일상은 별다를 바 없지만 늘어난 나이와 연차에 따른 책임의 무게는 누구보다도 남다르다. 일상을 짓누르는 책임감에 꿈과 비전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여기 만만치 않은 책임감의 소유자가 있다. 그의 삶에서 책임감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듣기 위해 2015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정기총회가 열린 1월 12일 저녁,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김영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에서 만났다.
- 회의에서 몇 번 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것은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대표님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김영순입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맡은 지는 일 년이 됐네요.
- 대표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여성운동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91년 대구여성회 회원활동부터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인 지금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도 들려주세요.
시작은 학생운동이었어요. 87년 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학생회를 하면서 처음으로 성차별 문제를 겪게 됐어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모였는데 남자들은 다 운동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고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뒤에 위치하면서 동등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지역대학이다보니 굉장히 보수적이었어요. 그래서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남학생들이 시비를 걸기도 하고.
그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성차별 문제를 학생운동과 학교생활을 하며 느낀 거예요. 그래서 여학생회를 만들었는데 아무도 여학생회를 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비주류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있었던 거죠. 저도 자발적으로 간 게 아니라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여학생회로 가게 됐어요. 막상 가서 우리(여학생회)끼리 모이고 공부를 하고 여성학 과목 개설이나 학내 성차별 담론 운동을 하면서 자매애, 친밀감이 형성됐어요. 
그러다 제가 졸업을 앞두고 제 전공인 신문방송학을 살려 언론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시험에 떨어져요. 그렇게 되고 보니 제가 여성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성학 대학원을 입학해요. 사실 그때는 달리 할 게 없어서 대학원을 간 측면도 있었어요. 아니면 시집을 갔어야 하니까. 그렇게 여성학 공부를 하게 됐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여성학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철학, 가치라는 걸 깨달았어요. 여성으로서 내 인생을 이해하고 내 삶을 긍정하는 학문. 그래서 저는 여성학 공부를 한 게 내 삶의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91년도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대구여성회에 회원가입을 해요. 회원활동한지 얼마 안 있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회원 교육을 담당하게 됐어요. 당시가 한창 여성주의 교육이 활성화되던 시기라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러다가 교육부장으로 대구여성회 간사까지 하게 돼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지역여성에 맞는 운동을 연구해서 지역여성운동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는 연구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성과 현실 연구회’를 만드는데 97년 대구여성회 사무처장이 조직을 떠나면서 사람이 없게 되자 제가 연구회 활동을 접고 사무국장을 하게 되요.
사무국장을 2001년까지 하고 2002년부터 쉬면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해요. 그런데 제가 2001년에 독신 선언을 했어요. 그러고 얼마 되지도 않아 연애를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지역에서는 뭐라 해요.. 결국 2002년에 결혼을 하고 좀 쉬다가 2005년에 성매매상담소장으로 복귀를 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또 사람이 없어서... 상담소 소장 삼년 정도를 해서 조직이 정비가 좀 되니까 이번엔 대구여성회 대표를 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구여성회 대표를 6년 간 하고 2014년부터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를 하고 있고요.
- 여성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런 고난을 극복하는 대표님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2002년 1월 31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 임기를 마치고, 2월 1일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심신을 이끌고 마음공부를 하러갔어요. 통장 잔액 200만원인데 수련비 50만원을 들여서 2주일간 마음의 고통을 들어냈어요. 아마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20대에 대구여성회 들어와서 몸에 맞지 않은 사무국장이라는 직책에 눌려 일만 하다가 관계를 놓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너무 당위로 인생을 살 때라서 모든 걸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힘들었어요. 알고 보니 그렇게 혼자 책임 안져도 되는데, 좀 못해도 되는데, 너무 잘 하려고 하다가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상이 더 힘들지 않나요. 일상에서 스스로 회의가 들 때죠.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일종의 우울증. 주기적으로 우울증이 오는 것 같은데, 일종의 자기검열, 강박증 이런 것들이 더 힘들어요.
이건 심리적으로 힘든 것이고, 실제로 저는 일 중심으로 살았어요. 성격적으로 강박증이나 결벽증도 원인이겠지만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죠. 그래서 사람관계도 일 중심으로 대처하고 그랬어요. 의견이 다르다고 인신공격을 하거나, 사심을 숨기고 괴롭히거나, 자신의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모든 것은 수많은 갈등과 고통 속에 깨달은 것이죠.
고난을 극복하는 자기만의 방법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잠깐 멈추고, 돌아봅니다. 한호흡만 쉬면 답이 보이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한 호흡을 쉴 수 있는 용기가 저에겐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고난이 생길 때마다 한 호흡을 하러 갑니다.
- 작년 ‘베이징+20과 post-2015, 젠더관점에서 본 한국사회의 변화’를 통해 대구 여성정책의 10년을 검토하셨고, 대구시장 후보에게 ‘성평등 지역정치 실현을 위한 여성정책 10대 핵심 과제’를 제안하셨는데요. 대구여성정책의 특징적인 지점이나 대표적인 문제점 한두 가지를 소개해주세요.

그동안 선거시기마다 여성정책을 제안하고, 발표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대구와 경북은 특정정당이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정치지형이라 재미가 없었어요. 대구의 변화는 아마도 민주당의 김부겸씨가 40%대의 지지율로 대구시장으로 출마하고, 박근혜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새누리당의 변화에 대한 바람이 비주류 젊은 후보를 대구시장후보로 뽑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그동안 새누리당의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70% 지지로 당선되는 동네니까요. 역시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새누리당의 후보는 드디어 지역의 요청의 응하기 시작했어요.
6․4지방선거에 출마한 4당의 대구시장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서 대구지역 여성정책과제협약식을 했어요. 마치고, 이후 협약과제에 제시된 정책을 공약으로 채택되었어요. 물론 이후는 지켜봐야지요.
이번 여성정책 의제선정은 대경여연 회원단체들이 모여서 함께 의제를 만들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각 단체별로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하고,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장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었어요. 성평등정책 체계 기반구축,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문제 등 공통의 의제와 함께 대구지역 성매매집결지 폐쇄요구, 인권조례, 미혼모시설 확충, 노인문제 등이 선정되었어요.
특히 대구지역 성매매집결지 폐쇄에 대한 요구는 2007년부터 논의를 시작했으나 그동안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정책의제에 포함되고, 대구시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여성정책 의제싸움은 메아리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안한 의제 중 50%가 수용되어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물론 앞으로 진행과정을 잘 모니터해야 겠지만요.
- 대표님께서 운동을 하는 가장 큰 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선택한 삶, 그리고 이 세상은 혼자서 살수 없다는 것, 내가 즐거워야 주변이 즐거운 법이죠. 상처주고 상처받는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운동. 그동안 나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준 운동이죠. 운동하면서 상처 많이 받았다고 징징거렸는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20년이 걸렸죠.
생각해보면 운동의 동력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의 약자들에 대한, 을들에 대한,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슬픈 일을 보거나 슬픈 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주루룩...
-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세 가지만 뽑자면요?
첫 번째는 대구여성회 대표를 마치고 나갈 때. 정말 홀가분했어요. 지난 24년간 당위성과 책임감에 짓눌려 내 인생의 모두가 되어버린 대구여성회를 마음의 짐으로부터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조직에서 이제 편안한 회원활동으로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다. 대표를 마치고, 회원으로서 참석하는 대구여성회 행사는 모두 재미있었어요. 뭘 해도 불편하지가 않았어요. 상근 활동가들이 실수해도 보기 좋았고. 오히려 활동가들이 몸을 바쳐 날아다니면서 일하는 모습이 보였고요. 이제는 일이 아닌 사람이 보여요.
둘째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그리고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과 친구로 사는 것. 물론 우리들만의 리그에 갇힌 것은 반성해야 하지만 그동안 끼리끼리 살아서 행복하고 편안했어요.
셋째는 남편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을 때. 흐흐 그땐 정말 사랑했지요. 그리고 행복했어요. 과거형이라 아쉽지만..^^
- 대표님께서는 지금하고 계신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원래 제 꿈은 기자였어요. 신문방송학과에 가면 기자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냥 겨우 졸업만 했어요. 동아일보 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 동아일보를 보면 들어가지도 못했겠지만 안 들어가서 다행이다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 종군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를 꿈꿨어요. 그녀가 쓴 소설 “한남자”를 읽고 감동을 받아 한동안 ‘한남자’를 꿈꾸며 살았어요.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어를 사랑하는, 알고 보면 종군기자가 꿈이 아니라 종군기자를 하면서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 2015년이 올해라는 것이 익숙지 않은 연초인데요. 새해를 시작하는 요즘, 어떤 생각이나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더 이상 운동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 관성적인 집회, 매일 반복되는 회의, 매번 동일한 문제제기, 정권말기의 징후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장이야기들, 답답한 현실 속에서 혼자 재미를 찾는 운동을 하기도 민망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 미래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이에요. 현안에 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 해요. 이슈파이팅 물론 해야죠. 현 정권에 대한 대응활동 반드시 해야죠. 그러나 운동의 전망을 그리는 작업,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해요. 그 전략을 수정하고, 폐기하고 다시 그리는 일이 반복되더라도 비전을 세워야 해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그릴 수 있어야 운동이 살아날 수 있어요. 근데 그 그림이 우째 전혀 감이 안 오네요.
- 앞으로 십년, 이십년 또는 그 이후의 대표님의 비전을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여성운동의 위기를 몸으로 느끼는 요즘, 어찌 10년, 20년의 비전을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역의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지역의 여성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운동, 내가 즐겁고, 우리 여성운동이 신나고, 행복한 운동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먼저 우리가 행복해야겠지요. 강박이나 당위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하고 있어요.
미생에서 장그래는 이렇게 말했죠.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면 길이 아니다.” 여성운동의 길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그 길을 열어가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나는 비전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비전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시작해야겠어요.
- 마지막으로 이제 막 여성운동에 발 딛은 활동가에게 피와 살과 뼈와 근육이 되는 한 마디 해주세요. 또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분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운동은 나의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누가 시켜서하거나, 책임감으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20 대는 좀 더 자유롭고 신나는 운동세대가 되었으면 해요. 실험적인 활동, 운동과 나의 삶이 함께 갈수 있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강의내용 중에 딱 꽂히는 말이 있었어요. 칸트가 그랬답니다. 수많은 소리 중에 자신에게 꽂히는 것만 들리는 게 표상이라고.
그날 강의에서 딱 꽂히는 말은 “존재만이 필연이다. 성별, 계급, 지능 재산은 우연에서 나온다. 우연을 통제하지 못해서 차별이 발생한다. 인간의 필연성을 감추고 차별을 정당화하지 마라. 지배계급은 이렇게 본질을 감추고 우연을 통제하면서 지배를 정당화한다. 지배계급의 기득권은 본질이 아니라 우연을 통제한 결과인 것이다. 자연만이 필연이고, 잉여가 없다. 삶은 생존이고 얻어지는 것은 부수적이다. 성과에 집착하지 마라.”
정확하게 이해를 했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재만이 본질적인 것이고, 나머지 모두는 인간이 만든 우연의 성과라는 거겠죠.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우연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잘난 체 하지마라. 인생 어차피 운칠기삼 아닌가?
그의 운동과 인생은 어떻게 보면 혹독하리만큼 고되게 들렸다. 선택의 기로에서 언제나 자신의 의향보다 우선했던 책임감, 자신과 운동 모두에 모질었던 완벽주의는 그의 인생을 숨 가쁘게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의 스토리에는 낭만과 에너지가 있다. 큰 책임감은 사람과 운동에 대한 사랑이 있어서 낭만적이고, 완벽주의는 꿈과 비전이 있기에 에너지가 되었다. 20년 넘게 일하면서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그리고자 애쓰는 낭만과 에너지가 그를 여성운동의 길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대구여성노동자회,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구여성회,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주부아카데미협의회, 포항여성회, 함께하는주부모임 등 대구경북지역을 기반으로한 여성단체들의 연합운동조직입니다. 대구경북지역에 맞는 소통과 연대의 여성운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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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은
2014년 시즌1을 진행한데 이어 2015년 시즌2로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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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김영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인터뷰어 : 고래
기사 작성 : 고래
사진 촬영 : 장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