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산한 장승배기길에 난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평등 평화 생명이 숨쉬는 곳', 전북여성단체연합의 현판과 아치형 입구가 나타났다. 3년 전 이사를 와서 깨끗하면서도 목재 가구들이 온溫한 느낌을 주는 이곳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조선희 상임대표를 만났다.
-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전북여성단체연합 조선희입니다. 제가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부터 출발했고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도 사회학적 이론보다는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함께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안에는 기독교적 생명과 평화적 신앙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요. 지금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서 내 남자 세 명과 함께 살아요. (^^)
- 신앙으로 시작하셔서 전북여연 대표가 되시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밟아 오셨는지요?
저 대학교 때 총여학생회가 부활 했거든요. 저는 학교 밖에서 기독교 운동을 하다가 선배의 요청으로 함께 총여학생회를 준비하게 됐어요. 번번한 책도 없을 때라 팜플렛 몇개 정도로 여성주의를 학습했는데 저에겐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우리 엄마도 여성농민인데 여성주의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엄마를 여성으로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여성주의를 알고서야 농촌 여성으로서 엄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또 당시 유명 청바지 회사 ‘뱅뱅’이 여성노동자를 착취해서 여학생회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었는데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의 삶도 보이기 시작했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죠.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까지는 기독교 여성모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전북민주여성회나 전북여성운동연합 활동도 참여했어요. 기독교 시스템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여성운동 단체들과 기꺼이 함께했지요. 대학 졸업 후에는 기독교단체에서 교회 내 성차별에 대한 학습과 여성목회자 안수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관심 갖고 활동하면서 지역여성운동과 연대했고요. 선배의 제의로 전주 YWCA에서도 2년 정도 일했어요.
이후 군산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상담원으로 반상근하다가 아이들 양육과 잦은 이주로 상근활동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여성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기독살림여성회(약칭 기살려!)를 만들었어요. 매월 1회씩 1박2일을 아이들 들쳐 업고 MT 가고, 독서토론도 하고, 비디오도 보는 기독살림여성회 학습이 여성주의 활동 역량을 놓치지 않게 기여했어요. 이후 3년간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으로 일을 했고 사무처장 그만두고부터는 사회복지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 사회복지를 공부하신 이유는요?
음, 그러게요잉~ 당시는 실천여성학도 없었고, 사무처장 3년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군산 개복동, 대명동 참사를 해결하면서 전북여성단체연합 부설 여성인권지원센터를 만들고, 기초자료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전국실태조사를 하고, 상근자가 7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일은 많아져갔어요. 반면 재정적 어려움도 커져갔죠. 이런 부분들로 3년 이상 사무처장을 하기가 힘들었고 뭔가 충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다시 공부하면서 젠더에 기반한 사회복지 공부를 깐깐하고 탄탄하게 한 편이에요. 좋은 교수님의 지도도 있었고요.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새롭게 공부한다는 것이 신선하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재충전으로 공부를 하실 만큼 학구열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평소 여가시간에도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추천해주실 책이 있다면요?
많이 안 읽어요. (일동 환호~) 소설로는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상당히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최근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 <투명사회>가 감명 깊었어요. 조금 어렵지만 상당히 통찰력 있어 활동가들에도 좋을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본 책은 <행복의 경제학>인데요.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화 특히 생태적이면서 순환적인 지역경제 지속가능성을 얘기하는 게 인상적이고, 지역의 다양한 실험, 도시재생이라든지 로컬푸드, 마을만들기 등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 그럼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특히 운동가는 일과 생활의 분리가 잘 안되는데 대표님은 어떠세요?
집에는 일을 잘 안 가져가요. 이제는 집에서까지 할 기운도 달린다니까요!(^^) 여가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걷는 걸 좋아해요. 텃밭 가꾸기도 재미중에 재미예요. 여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교회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 (남편이 목회자고 교회와 집이 붙어있기 때문에) 하나의 쉼이고, 재충전이기도 해요.
- 살면서 대표님께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성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내면적인 부분은 저항이라고 봐요.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여성이 아니라 깨어있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 나에게 그것을 부여해준 사람은 할머니였어요. 여성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할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 후로도 오빠들이 미웠고, 할머니가 나를 여자라서 구박하고 차별했다는 게 내면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주의를 접하게 되었을 때 마치 복음을 전해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의 삶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여성운동에 있어 영향을 준 사람은 이강실 목사님.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하면서 가장 가깝게, 또 여성주의 리더십을 어떻게 발현하는 것이 좋은가를 옆에서 보아온 사람이죠. 특히 많이 보고 배운 것은 ‘통섭’이에요. 여성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라든가, 갈등해결 능력, 추진력있는 모습 등. 투쟁적으로 싸워야 할 때와 반대로 우리 안에서 다독여야 할 때를 적절히 통섭해내는 능력. 그러면서도 굉장히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전까지 운동하던 언니들은 주로 사명감으로 힘들게 하는 모습들을 봐왔는데, 이강실 목사부터 운동은 즐겁게 해야 하고 운동을 통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점과 이를 구체적으로 발현해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 그래서인지 전북여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전북여연만의 힘, 특수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프라이드가 아주 강해요. 하하하~
94년 남원에서 김부남 사건(9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23살이 되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북여성운동연합이 막 생겨 조직도 단단하지 않았지만(상근자 1명) 이 사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사회의 뜻을 모아 전국 이슈로 만들었어요. 대표적 여성인권법이 성폭력특별법, 성매매특별법, 가정폭력법이라고 한다면 성폭력특별법과 성매매특별법은 전북지역 여성운동의 저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인권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여성운동의 힘이 부족했다면 그냥 놓치고 갔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이슈화시키고 여론화해서 전국적 조직을 꾸리고 이를 통해 법을 만들어내는 힘이 전북지역 여성운동의 힘이라고 봐요.
이강실 목사님이 상임대표를 하던 시절, 지자체에서 잘못된 정책을 펴거나 하면 직접 전화해서 강하게 항의하기 일쑤, 오히려 옆에서 ‘저래도 되나’싶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전북여연의 힘이기도 했고 그런 것을 통해서 바꿔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여성연합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던 것이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한국여성운동이 전반적으로 태동하는 시점에서 지역의 기반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깨어있는 의식 하나만으로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활동들을 해왔고 그 힘이 전국적 운동을 이끌어냈다고 봐요. 전북여연이 한 획을 긋는 활동을 했다라고. 그래서 저는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연구하라고 권해요.
- 정말 단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전북여연이 가진 고민이 있다면요?
전북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회가 없어요. 즉 회원을 갖는 여성조직이 없어요. 회원단체 9개 조직이 서로 연합하여 활동하는데 주로 여성폭력 관련 업무 집중돼 있고요.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게 약해요. 이런 점 때문에 밖에서는 여성운동하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로만 보일 수 있어요. 지역여성들과 함께 북적북적하고 말랑말랑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데, 그게 취약해서 고민이에요.
또 서울·경기보다 지역은 여성활동가들의 미래 비젼이 약해요. 즉, 여성운동의 경력으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기관도 여성교육문화센터와 여성정책연구소 2개 있는데 두 기관 다 지자체 관련 기관이에요.
- 대표님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데요, 동시에 비젼도 가지고 계신다면요?
지역사회에서 보다 영향력 있게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역량들이 청소년이나 복지, 문화, 생태 등 사회 각 분야에 들어가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다른 영역도 보고 오니까 우리 여성운동의 역량이라는 것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나가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유행하는 ‘융합’이라는 거죠. 여성운동의 경험을 지역사회의 다른 영역들과 어떻게 융합을 만들어 낼 것인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 여성운동가가 안 되었다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학교 선생님을 했을 듯싶네요. 실제 교직이수도 했었고.
- 어떤 과목이요?
화학. 다들 내가 사회학쪽이라고 생각하는데 화학을 전공했어요. (화염병 만드느라고^^)
- 전북여연이 천연화장품 등을 만드는 것도 관련이 있나요?
아니요. 나는 그런 만드는 건 안 좋아해요. 환경위원회가 있고 전 대표가 대안적 환경운동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었거든요. 또 손재주가 좋은 활동가들이 많아요.

-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후배에 한 말씀 주세요.
저는, 후배들이 선배들의 경험과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운동의 경험이 다르다보니 일상에서의 관계 맺기 등에서 차이가 많이 나요. 책으로 말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직접 이야기 나누는 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여성운동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민주주의도 배우고 자매애도 배우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여성운동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여성운동하면서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눈을 폭넓게 통크게 봤으면 좋겠어요. 넓고 큰 안목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폭넓게 통크게!
단단한 확신과 자부심으로 찬 목소리로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폭넓게 통크게”라고 말할 때 방안 공기만큼이나 인터뷰를 하는 후배들의 마음도 울렸다. 처음 가 본 사무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전북여연이 왜 남다른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발휘하는 ‘또 다른’ 여성주의 리더십이 전북여연과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얼마나 더 다르게 할지 기대하고, 믿게 되는 자리였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전북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단체들의 연합조직입니다. 군산여성의전화, 전북여성노동자회, 전북여성연구회, 전주여성의전화,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익산여성의전화, 전국여성노동조합 전북지부,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전북여성장애인연대(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전북지부) 총 9개 회원단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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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성연합의 '온콘'은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에서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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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조선희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인터뷰어 : 이루용, 김손경미
기사 작성 : 김손경미
사진 촬영 : 이루용
폭넓게! 통크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산한 장승배기길에 난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평등 평화 생명이 숨쉬는 곳', 전북여성단체연합의 현판과 아치형 입구가 나타났다. 3년 전 이사를 와서 깨끗하면서도 목재 가구들이 온溫한 느낌을 주는 이곳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조선희 상임대표를 만났다.
-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전북여성단체연합 조선희입니다. 제가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부터 출발했고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도 사회학적 이론보다는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함께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안에는 기독교적 생명과 평화적 신앙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요. 지금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서 내 남자 세 명과 함께 살아요. (^^)
- 신앙으로 시작하셔서 전북여연 대표가 되시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밟아 오셨는지요?
저 대학교 때 총여학생회가 부활 했거든요. 저는 학교 밖에서 기독교 운동을 하다가 선배의 요청으로 함께 총여학생회를 준비하게 됐어요. 번번한 책도 없을 때라 팜플렛 몇개 정도로 여성주의를 학습했는데 저에겐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우리 엄마도 여성농민인데 여성주의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엄마를 여성으로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여성주의를 알고서야 농촌 여성으로서 엄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또 당시 유명 청바지 회사 ‘뱅뱅’이 여성노동자를 착취해서 여학생회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었는데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의 삶도 보이기 시작했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죠.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정중했지만 곳곳에서 '빵'터지는 웃음을 선사할만큼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까지는 기독교 여성모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전북민주여성회나 전북여성운동연합 활동도 참여했어요. 기독교 시스템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여성운동 단체들과 기꺼이 함께했지요. 대학 졸업 후에는 기독교단체에서 교회 내 성차별에 대한 학습과 여성목회자 안수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관심 갖고 활동하면서 지역여성운동과 연대했고요. 선배의 제의로 전주 YWCA에서도 2년 정도 일했어요.
이후 군산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상담원으로 반상근하다가 아이들 양육과 잦은 이주로 상근활동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여성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기독살림여성회(약칭 기살려!)를 만들었어요. 매월 1회씩 1박2일을 아이들 들쳐 업고 MT 가고, 독서토론도 하고, 비디오도 보는 기독살림여성회 학습이 여성주의 활동 역량을 놓치지 않게 기여했어요. 이후 3년간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으로 일을 했고 사무처장 그만두고부터는 사회복지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 사회복지를 공부하신 이유는요?
음, 그러게요잉~ 당시는 실천여성학도 없었고, 사무처장 3년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군산 개복동, 대명동 참사를 해결하면서 전북여성단체연합 부설 여성인권지원센터를 만들고, 기초자료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전국실태조사를 하고, 상근자가 7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일은 많아져갔어요. 반면 재정적 어려움도 커져갔죠. 이런 부분들로 3년 이상 사무처장을 하기가 힘들었고 뭔가 충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다시 공부하면서 젠더에 기반한 사회복지 공부를 깐깐하고 탄탄하게 한 편이에요. 좋은 교수님의 지도도 있었고요.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새롭게 공부한다는 것이 신선하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재충전으로 공부를 하실 만큼 학구열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평소 여가시간에도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추천해주실 책이 있다면요?
많이 안 읽어요. (일동 환호~) 소설로는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상당히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최근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 <투명사회>가 감명 깊었어요. 조금 어렵지만 상당히 통찰력 있어 활동가들에도 좋을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본 책은 <행복의 경제학>인데요.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화 특히 생태적이면서 순환적인 지역경제 지속가능성을 얘기하는 게 인상적이고, 지역의 다양한 실험, 도시재생이라든지 로컬푸드, 마을만들기 등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 그럼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특히 운동가는 일과 생활의 분리가 잘 안되는데 대표님은 어떠세요?
집에는 일을 잘 안 가져가요. 이제는 집에서까지 할 기운도 달린다니까요!(^^) 여가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걷는 걸 좋아해요. 텃밭 가꾸기도 재미중에 재미예요. 여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교회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 (남편이 목회자고 교회와 집이 붙어있기 때문에) 하나의 쉼이고, 재충전이기도 해요.
- 살면서 대표님께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성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내면적인 부분은 저항이라고 봐요.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여성이 아니라 깨어있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 나에게 그것을 부여해준 사람은 할머니였어요. 여성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할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 후로도 오빠들이 미웠고, 할머니가 나를 여자라서 구박하고 차별했다는 게 내면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주의를 접하게 되었을 때 마치 복음을 전해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의 삶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여성운동에 있어 영향을 준 사람은 이강실 목사님.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하면서 가장 가깝게, 또 여성주의 리더십을 어떻게 발현하는 것이 좋은가를 옆에서 보아온 사람이죠. 특히 많이 보고 배운 것은 ‘통섭’이에요. 여성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라든가, 갈등해결 능력, 추진력있는 모습 등. 투쟁적으로 싸워야 할 때와 반대로 우리 안에서 다독여야 할 때를 적절히 통섭해내는 능력. 그러면서도 굉장히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전까지 운동하던 언니들은 주로 사명감으로 힘들게 하는 모습들을 봐왔는데, 이강실 목사부터 운동은 즐겁게 해야 하고 운동을 통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점과 이를 구체적으로 발현해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 그래서인지 전북여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전북여연만의 힘, 특수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프라이드가 아주 강해요. 하하하~
94년 남원에서 김부남 사건(9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23살이 되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북여성운동연합이 막 생겨 조직도 단단하지 않았지만(상근자 1명) 이 사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사회의 뜻을 모아 전국 이슈로 만들었어요. 대표적 여성인권법이 성폭력특별법, 성매매특별법, 가정폭력법이라고 한다면 성폭력특별법과 성매매특별법은 전북지역 여성운동의 저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인권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여성운동의 힘이 부족했다면 그냥 놓치고 갔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이슈화시키고 여론화해서 전국적 조직을 꾸리고 이를 통해 법을 만들어내는 힘이 전북지역 여성운동의 힘이라고 봐요.

전북여연의 힘을 이야기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신뢰와 긍지가 담겨있다
이강실 목사님이 상임대표를 하던 시절, 지자체에서 잘못된 정책을 펴거나 하면 직접 전화해서 강하게 항의하기 일쑤, 오히려 옆에서 ‘저래도 되나’싶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전북여연의 힘이기도 했고 그런 것을 통해서 바꿔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여성연합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던 것이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한국여성운동이 전반적으로 태동하는 시점에서 지역의 기반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깨어있는 의식 하나만으로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활동들을 해왔고 그 힘이 전국적 운동을 이끌어냈다고 봐요. 전북여연이 한 획을 긋는 활동을 했다라고. 그래서 저는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연구하라고 권해요.
- 정말 단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전북여연이 가진 고민이 있다면요?
전북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회가 없어요. 즉 회원을 갖는 여성조직이 없어요. 회원단체 9개 조직이 서로 연합하여 활동하는데 주로 여성폭력 관련 업무 집중돼 있고요.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게 약해요. 이런 점 때문에 밖에서는 여성운동하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로만 보일 수 있어요. 지역여성들과 함께 북적북적하고 말랑말랑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데, 그게 취약해서 고민이에요.
또 서울·경기보다 지역은 여성활동가들의 미래 비젼이 약해요. 즉, 여성운동의 경력으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기관도 여성교육문화센터와 여성정책연구소 2개 있는데 두 기관 다 지자체 관련 기관이에요.
- 대표님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데요, 동시에 비젼도 가지고 계신다면요?
지역사회에서 보다 영향력 있게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역량들이 청소년이나 복지, 문화, 생태 등 사회 각 분야에 들어가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다른 영역도 보고 오니까 우리 여성운동의 역량이라는 것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나가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유행하는 ‘융합’이라는 거죠. 여성운동의 경험을 지역사회의 다른 영역들과 어떻게 융합을 만들어 낼 것인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 여성운동가가 안 되었다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학교 선생님을 했을 듯싶네요. 실제 교직이수도 했었고.
- 어떤 과목이요?
화학. 다들 내가 사회학쪽이라고 생각하는데 화학을 전공했어요. (화염병 만드느라고^^)
- 전북여연이 천연화장품 등을 만드는 것도 관련이 있나요?
아니요. 나는 그런 만드는 건 안 좋아해요. 환경위원회가 있고 전 대표가 대안적 환경운동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었거든요. 또 손재주가 좋은 활동가들이 많아요.

전북여연 사무실은 활동가들의 손재주와 감성이 드러나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가득하다
-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후배에 한 말씀 주세요.
저는, 후배들이 선배들의 경험과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운동의 경험이 다르다보니 일상에서의 관계 맺기 등에서 차이가 많이 나요. 책으로 말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직접 이야기 나누는 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여성운동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민주주의도 배우고 자매애도 배우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여성운동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여성운동하면서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눈을 폭넓게 통크게 봤으면 좋겠어요. 넓고 큰 안목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폭넓게 통크게!
단단한 확신과 자부심으로 찬 목소리로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폭넓게 통크게”라고 말할 때 방안 공기만큼이나 인터뷰를 하는 후배들의 마음도 울렸다. 처음 가 본 사무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전북여연이 왜 남다른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발휘하는 ‘또 다른’ 여성주의 리더십이 전북여연과 전북지역 여성운동을 얼마나 더 다르게 할지 기대하고, 믿게 되는 자리였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전북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단체들의 연합조직입니다. 군산여성의전화, 전북여성노동자회, 전북여성연구회, 전주여성의전화,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익산여성의전화, 전국여성노동조합 전북지부,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전북여성장애인연대(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전북지부) 총 9개 회원단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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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성연합의 '온콘'은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에서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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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조선희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인터뷰어 : 이루용, 김손경미
기사 작성 : 김손경미
사진 촬영 : 이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