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 진보적 여성운동의 흐름
(1) 87년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과 진보적 여성운동의 활성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8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진보적 여성운동 단체들의 연합체로서 87년 2월 결성되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참여해온 여성들이 주도한 여성연합은 여성운동의 성격을 ‘민족, 민주, 민중운동의 부문운동’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목표는 ‘여성해방·노동해방·민중해방’을 실현하는 것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기층 여성의 문제’를 핵심과제로 삼아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처럼 80년대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이슈를 민족, 민주, 민중 운동과의 연관성 속에서 풀고자 하였다. 한 예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여성연합’) 창립의 계기가 되었던, 1986년 6월 발생한 ‘권인숙씨 사건’에 대해 당시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성으로 인한 사건’으로 규정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고문과 성폭력의 종식을 위해서라도 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하며, 여성운동 또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실천에 더욱 나서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렇듯 80년대를 관통한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의 상황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에게 있어서 군사주의 정부는 총체적 투쟁의 대상이었을 뿐, 결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2) 민주주의의 이행과 진보적 여성운동의 시민운동으로의 확장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치적 자유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이 점차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던 여성 활동가들에 의해 지역과 부문을 대표하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결성되고, 이들이 동시에 여성연합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진보적 여성운동은 지역화, 대중화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듯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게 된 여성연합은 진보적 여성운동의 연합체를 구축함으로써 여성 독자적인 목소리와 요구를 사회에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90년대 이후 여성정책의 발전을 주도할 주체역량을 확보하게 된다.
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를 가름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점차 다양화지는 사회운동조직이 등장하고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연합은 90년대 초반 ‘진보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방향모색’을 위한 내부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 결과 여성연합은 민주화의 확대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1) 여성운동의 주체를 기층여성 뿐 아니라 중산층 여성 등 주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2) 여성운동의 과제도 기층중심성에서 벗어나 시민적 과제를 포괄해야 한다. (3) 따라서 전체 사회변혁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 해온 진보적 여성운동은 민주화·정보화 사회로 변함에 따라 사회변혁의 내용과 전망이 달라져야 한다는 방향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계급과 민족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여성의제들 -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그리고 참여의 배제 등 - 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모색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여성연합은 기층 중심성을 견지하면서도 87년 민주대투쟁의 성과로 확보된 법적·제도적 절차와 공간을 이용하여 시민운동 방식을 채택한 독자적 여성운동의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여성연합은 본격적으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민주주의 이행기에 걸 맞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내용과 방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총체적 투쟁의 대상이었던 국가권력과 정부 및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청원, 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 평등한 사회, 복지 정책의 수립을 위한 압력활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나 쓰레기문제 해결 등과 같은 생활과제를 지역사회 문제로 이끌어 냄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린 여성운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였다.
(3) 여성운동의 성 주류화 전략과 여성의제의 제도화
1995년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유엔여성회의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해소와 폭력방지를 위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였다. 또한 이 회의를 통해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며,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 주류화’ 전략과 ‘여성의 세력화’가 보장되어야 하며,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우대조치는 차별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여성인권운동의 국제적 흐름을 조성하게 되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 여성운동과의 직접적 교류가 없었던 한국의 여성운동은 95년 북경여성회의를 통해 국제인권운동의 흐름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차별과 폭력방지를 위한 국가의 책임과 여성의제의 법제화 및 여성관련 정책의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90년 이후 10여 년 동안 3대 여성인권관련 법의 제도화 즉, 1993년 성폭력특별법의 제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위와 같은 여성폭력방지 및 인권보호를 위한 법제화의 과정은 여성연합을 통해 조직화된 진보적 여성운동의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대중운동과 입법운동의 결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여성연합은 나아가 2001년 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의 개정을 통한 ‘산전산후휴가 90일 확대’와 2003년 ‘영유아보육법’의 개정을 통해 보육료 차등지원과 보육예산 확대, 그리고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한 가부정적인 ‘호주제’의 폐지 등 정부로 하여금 성 평등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도록 촉구하는 제도개선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왔다. 또한 2002년 정당법의 개정을 통해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할당제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여성의원의 비율이 2004년 5.9%에서 13.5%에 달하는 40명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 진보적 여성운동은 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한 전 세계사적인 성 주류화전략에 기반 하여 정부의 여성정책을 성 주류화 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여성담당 정부기구 및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선, 대통령직속여성특별위원회(이하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되었고(2001년 이후 ‘여성부’ 확대 개편), 행정자치부·법무부·교육부·보건복지부·농림부·노동부 등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신설되었으며, 정부 각 부처에서의 중요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위원회에 30% 여성할당을 요구함으로써 정부의 여성정책을 ‘성 주류화’로 실현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구와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운동은 성 주류화 전략이 성공하여 국가가 모든 여성정책을 수립하게 될 경우, 여성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롭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정부의 여성정책 전담기구에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관료로 진출하면서 소위 ‘페모크라트 (Femocrat: Feminist+Bureaucrat)’가 여성운동에 대한 배신인가 아니면 여성운동의 확산인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아울러서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되면서 폭력피해자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여성단체들의 경우,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성의 강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여성단체의 역할이 전문성과 운동성 중 어떤 부문에 더 치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여성운동의 헌신과 노력으로 성 평등 가치는 국가사회의 의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의제의 제도화는 여성운동에 의해 제기되었던 여성과제가 국가정책으로 수립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제기되어온 여성정책과제가 정부에 의해 실현됨으로 인해서 여성운동은 무엇을 담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4) 차이를 강조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흐름
87년 이후 한국사회를 특징 지웠던 시민사회 및 시민사회운동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지체된 제도정치권과 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활성화 되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제도정치권과 정부의 개혁과 민주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오히려 퇴조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의 퇴조는 불가피하지만, 대신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운동이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 성장하면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젊은 여성그룹들은 80년대의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출발한 선배그룹들이 민주주의 이행기인 90년대를 지나면서 주류 여성운동 세력으로 제도화되면서, 다양화 되고 있는 여성운동 내부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새로운 여성운동 집단은 선배 여성운동 그룹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시기에 형성된 계급과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에 치우친 구세대 여성운동가들이며, 따라서 성의 정체성(Sexuality)과 같은 사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여성문제를 간과하였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개인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강조, 그리고 성적 정체성을 둘러싼 차이의 강조는 기존의 여성운동의 흐름에게는 새로운 변화이자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주요한 여성운동의 이슈가 국가의 여성정책 과제로 제도화된 이후 다음단계의 ‘진보’에 대한 모색을 진행하고 있던 기존의 여성운동 에게는 새로운 성찰의 계기였다. 마찬가지로 과거운동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새로운 세대 역시, 선배 세대들과의 만남과 도전을 통해 과거 여성운동과 새로운 흐름 사이에서 역사적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망과 과제
(1) 정치적 민주화를 압도하는 세계화의 흐름과 시민사회의 과제
87년 민주화 대투쟁의 결과 확장된 정치적 민주화는 90년대 중반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에 의한 시장통제의 약화와 해외 금융자본에 의한 국내 시장의 개방,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한 관세협상의 압력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행기에 놓여 있는 김영삼 정부 이후 IMF 경제위기와 동시에 권력을 장악하게 된 김대중 정부, 그리고 최근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의 경제자유화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와 상반되는 경제적 비민주성을 노골화시키는 과정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60년대 이후부터 87년에 이르는 군사주의 정권 하에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중심주의로 특징되는 군사독재 정권의 경제정책이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근거한 시장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하였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민영화, 개방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서 비정규직의 양산, 공공부문의 축소,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압도하면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국민국가 차원에서 제도정치의 민주화로 특징되는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90년대 후반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압도당하면서,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가 공평한 경제적 분배와 빈곤층의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의 국가권력이 국가단위를 넘어서 세계체제의 형태로 구조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앞에서, 주체적 대응능력을 갖지 못한 채 시장으로 권력을 넘겨주고 있은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시장중심의 세계화)가 상호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와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와 정치권력에 대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역할을 담당했던 시민사회에게 있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대상이 되고 있다.
87년 이후 국민국가 차원에서의 점진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의 시민사회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전 지구를 압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막아내기 위한 국제적, 지구적 차원의 연대를 향한 새로운 운동의 모색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
87년 민주화 이행기 이후 98년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여성은 가장 먼저 해고되고, 가장 나중에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되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남성가장의 실업과 빈곤에 집중한 반면,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여성빈곤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도외시하였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가구단위로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빈곤율 또한 개인이 아닌 가구단위로 측정되고 있다. 2000년 발표된 ‘가구소비실태조사’를 근거로 IMF 이후 여성빈곤 실태를 살펴보면, 여성가구주 가구가 1996년 16.6%에서 2000년 18.5%로 증가하였으며, 여성가구주의 빈곤율은 1996년 8.3%에서 2000년 16.9%로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현재 여성가구주 가구가 전체가구 중 차지하는 비중이 18.5%인 데 비하여 빈곤가구 중 차지하는 비중은 그 2.5배인 45.8%로 나타나 빈곤의 여성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빈곤 여성가구주 가구의 고용형태별 빈곤율을 살펴보면,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빈곤율은 정규직의 경우 1996년 7.1%에서 2000년 9.1%로 2% 증가한데 비하여, 비정규직은 1996년 13.1%에서 2000년 22.5%로 9.4% 증가하였다. 이처럼 비정규직 여성가구주가 경제위기 과정을 통해 더욱 빈곤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IMF 이후 여성가구주가 증가함과 동시에 여성가구주 중 빈곤 여성가구주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IMF 이후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강화되었다는 것과 연관해 볼 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빈곤의 여성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를 수용하는 국민국가의 친 시장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한국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낳고, 여성의 비정규직화로 귀결되면서, 여성빈곤의 심화, 빈곤의 여성화를 낳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운동 또한 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막아내기 위한 국민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국제적, 지구적 차원의 연대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여성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응하지 않는 한,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를 국민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2000년 이후 전 세계의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빈곤과 폭력 철폐를 위한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에 참여하고 있다.
(3) 우리 것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 문제
세계화로 인한 또 다른 변화는 이주여성과 국제결혼, 외국인 여성 인신매매 등과 같은 인종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여성인권문제가 한국사회라는 공간 내로 급속히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폐쇄성과 국가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사회는 세계화에 의해 제기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데 있어 한계를 드러내었다. 최근 뒤늦게나마 시민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여성운동 또한 이주여성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여성 등에 대한 인권보호와 지원활동을 중심과제로 삼는 여성단체들이 늘어나면서 이주여성들에 대한 지원과 아시아를 향한 연대운동으로의 확산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인신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개발된 한국사회로 일자리를 찾아 입국하는 이주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아시아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 내에서의 이주를 포함한 국제연대 활동은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던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제부터라도 세계화로 인해 한국사회 내에서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문제를 적극 대처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3. 끝없는 변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와 여성운동의 과제
(1) 성 평등을 위한 남성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의 시민운동은 한국사회 발전정도에 대한 평가와 현 정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한 편에서는 보수적 저항(backlash)에 맞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국가 및 정부와의 협치(governance)를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지구적 차원의 빈곤의 구조화에 맞서 ‘운동의 급진화’를 통해서 운동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각각 서로 다른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성연합 역시 최근 민주화, 세계화, 다원화, 차이가 강조되는 사회 흐름 속에서 또 다시 ‘진보란 무엇인가?’, ‘지금 여성운동의 진보성은 무엇인가?’를 반문하면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망을 찾기 위한 모색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지표를 이야기 할 때,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여성의 지위향상이 급격히 이루어진 것은 가장 대표적인 민주화의 척도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교평가를 통해서 바라 본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여전히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성 평등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2004년 5월 유엔개발계획(UNDP)이 보고한 자료에서도 한국의 여성권한척도(GEM)는 68위를 차지했다. 또한 2005년 5월 16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여성의 권리: 남녀 불평등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58개국 중 이집트와 터키, 파키스탄과 요르단에 이어 54위라는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게다가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은 최근 아태지역 13개국 중 한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통계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불평등지수와 일부 남성 집단이 실감하는 불평등지수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하는 원인중의 하나는, 한국 남성이 기대하는 성 평등의 수준과 실제 국제사회에서 기준으로 제시되는 성 평등 사이에 ‘기대치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가부장성과 남성중심성으로 굳어온 한국 남성들의 인식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평등한 남녀관계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가 커진 것에 비해, 남성들은 여전히 차별적 관행과 언행에 익숙해 있어 남녀 사이에 충돌이 빈발하고 있다.
따라서 성 평등이 일상 속에서 관행으로 자리 잡고, 남녀의 관계가 일상 속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관행과 언어, 관계와 습관을 바꿔나가기 위한 남녀 모두의 일상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실천만이 법과 제도의 괴리, 선언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나의 일상이 바뀔 때, 성 평등한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87년 이후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주의 단계를 지나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을 거친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는 격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변해 온 것 보다 더 많이 변화되기를 요구받는 첨단의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변화를 주도한 집단이 변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변화의 정도와 속도의 차이로 인해 집단 간에 또는 집단 내에서 상호 갈등과 분쟁이 발생한다.
특히 민주주의 이행기를 경험하면서 권리의식이 확산됨으로 인해, 자신의 요구와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일방적 태도가 확장된 반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익히는 과정이 부족한 까닭에 개인과 집단 간에 이해의 충돌과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가 이행된 만큼 ‘민주주의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해와 갈등의 충돌은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때, 우리사회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거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틀이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쉼 없이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을 응수하면서 민주주의를 실제화 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유발하는 새로운 도전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주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우리 안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을 이끌어 내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 셋째, 상충하는 가치의 충돌 속에서 우선순위를 합의해 낼 수 있는 평화적 갈등해결 방법을 익혀야 한다. 넷째, 과거의 성과에 자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지속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겸손함을 키워야 한다. 다섯째, 분노에 머물지 않고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1) 87년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과 진보적 여성운동의 활성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8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진보적 여성운동 단체들의 연합체로서 87년 2월 결성되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참여해온 여성들이 주도한 여성연합은 여성운동의 성격을 ‘민족, 민주, 민중운동의 부문운동’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목표는 ‘여성해방·노동해방·민중해방’을 실현하는 것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기층 여성의 문제’를 핵심과제로 삼아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처럼 80년대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이슈를 민족, 민주, 민중 운동과의 연관성 속에서 풀고자 하였다. 한 예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여성연합’) 창립의 계기가 되었던, 1986년 6월 발생한 ‘권인숙씨 사건’에 대해 당시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성으로 인한 사건’으로 규정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고문과 성폭력의 종식을 위해서라도 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하며, 여성운동 또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실천에 더욱 나서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렇듯 80년대를 관통한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의 상황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에게 있어서 군사주의 정부는 총체적 투쟁의 대상이었을 뿐, 결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2) 민주주의의 이행과 진보적 여성운동의 시민운동으로의 확장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치적 자유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이 점차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던 여성 활동가들에 의해 지역과 부문을 대표하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결성되고, 이들이 동시에 여성연합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진보적 여성운동은 지역화, 대중화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듯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게 된 여성연합은 진보적 여성운동의 연합체를 구축함으로써 여성 독자적인 목소리와 요구를 사회에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90년대 이후 여성정책의 발전을 주도할 주체역량을 확보하게 된다.
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를 가름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점차 다양화지는 사회운동조직이 등장하고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연합은 90년대 초반 ‘진보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방향모색’을 위한 내부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 결과 여성연합은 민주화의 확대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1) 여성운동의 주체를 기층여성 뿐 아니라 중산층 여성 등 주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2) 여성운동의 과제도 기층중심성에서 벗어나 시민적 과제를 포괄해야 한다. (3) 따라서 전체 사회변혁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 해온 진보적 여성운동은 민주화·정보화 사회로 변함에 따라 사회변혁의 내용과 전망이 달라져야 한다는 방향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계급과 민족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여성의제들 -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그리고 참여의 배제 등 - 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모색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여성연합은 기층 중심성을 견지하면서도 87년 민주대투쟁의 성과로 확보된 법적·제도적 절차와 공간을 이용하여 시민운동 방식을 채택한 독자적 여성운동의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여성연합은 본격적으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민주주의 이행기에 걸 맞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내용과 방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총체적 투쟁의 대상이었던 국가권력과 정부 및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청원, 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 평등한 사회, 복지 정책의 수립을 위한 압력활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이나 쓰레기문제 해결 등과 같은 생활과제를 지역사회 문제로 이끌어 냄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린 여성운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였다.
(3) 여성운동의 성 주류화 전략과 여성의제의 제도화
1995년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유엔여성회의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해소와 폭력방지를 위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였다. 또한 이 회의를 통해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며,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 주류화’ 전략과 ‘여성의 세력화’가 보장되어야 하며,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우대조치는 차별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여성인권운동의 국제적 흐름을 조성하게 되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 여성운동과의 직접적 교류가 없었던 한국의 여성운동은 95년 북경여성회의를 통해 국제인권운동의 흐름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차별과 폭력방지를 위한 국가의 책임과 여성의제의 법제화 및 여성관련 정책의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90년 이후 10여 년 동안 3대 여성인권관련 법의 제도화 즉, 1993년 성폭력특별법의 제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위와 같은 여성폭력방지 및 인권보호를 위한 법제화의 과정은 여성연합을 통해 조직화된 진보적 여성운동의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대중운동과 입법운동의 결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여성연합은 나아가 2001년 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의 개정을 통한 ‘산전산후휴가 90일 확대’와 2003년 ‘영유아보육법’의 개정을 통해 보육료 차등지원과 보육예산 확대, 그리고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한 가부정적인 ‘호주제’의 폐지 등 정부로 하여금 성 평등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도록 촉구하는 제도개선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왔다. 또한 2002년 정당법의 개정을 통해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할당제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여성의원의 비율이 2004년 5.9%에서 13.5%에 달하는 40명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 진보적 여성운동은 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한 전 세계사적인 성 주류화전략에 기반 하여 정부의 여성정책을 성 주류화 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여성담당 정부기구 및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선, 대통령직속여성특별위원회(이하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되었고(2001년 이후 ‘여성부’ 확대 개편), 행정자치부·법무부·교육부·보건복지부·농림부·노동부 등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신설되었으며, 정부 각 부처에서의 중요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위원회에 30% 여성할당을 요구함으로써 정부의 여성정책을 ‘성 주류화’로 실현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구와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운동은 성 주류화 전략이 성공하여 국가가 모든 여성정책을 수립하게 될 경우, 여성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롭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정부의 여성정책 전담기구에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관료로 진출하면서 소위 ‘페모크라트 (Femocrat: Feminist+Bureaucrat)’가 여성운동에 대한 배신인가 아니면 여성운동의 확산인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아울러서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되면서 폭력피해자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여성단체들의 경우,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성의 강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여성단체의 역할이 전문성과 운동성 중 어떤 부문에 더 치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여성운동의 헌신과 노력으로 성 평등 가치는 국가사회의 의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의제의 제도화는 여성운동에 의해 제기되었던 여성과제가 국가정책으로 수립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제기되어온 여성정책과제가 정부에 의해 실현됨으로 인해서 여성운동은 무엇을 담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4) 차이를 강조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흐름
87년 이후 한국사회를 특징 지웠던 시민사회 및 시민사회운동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지체된 제도정치권과 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활성화 되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제도정치권과 정부의 개혁과 민주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오히려 퇴조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의 퇴조는 불가피하지만, 대신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운동이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 성장하면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젊은 여성그룹들은 80년대의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출발한 선배그룹들이 민주주의 이행기인 90년대를 지나면서 주류 여성운동 세력으로 제도화되면서, 다양화 되고 있는 여성운동 내부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새로운 여성운동 집단은 선배 여성운동 그룹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시기에 형성된 계급과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에 치우친 구세대 여성운동가들이며, 따라서 성의 정체성(Sexuality)과 같은 사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여성문제를 간과하였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개인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강조, 그리고 성적 정체성을 둘러싼 차이의 강조는 기존의 여성운동의 흐름에게는 새로운 변화이자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주요한 여성운동의 이슈가 국가의 여성정책 과제로 제도화된 이후 다음단계의 ‘진보’에 대한 모색을 진행하고 있던 기존의 여성운동 에게는 새로운 성찰의 계기였다. 마찬가지로 과거운동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새로운 세대 역시, 선배 세대들과의 만남과 도전을 통해 과거 여성운동과 새로운 흐름 사이에서 역사적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망과 과제
(1) 정치적 민주화를 압도하는 세계화의 흐름과 시민사회의 과제
87년 민주화 대투쟁의 결과 확장된 정치적 민주화는 90년대 중반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에 의한 시장통제의 약화와 해외 금융자본에 의한 국내 시장의 개방,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한 관세협상의 압력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행기에 놓여 있는 김영삼 정부 이후 IMF 경제위기와 동시에 권력을 장악하게 된 김대중 정부, 그리고 최근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의 경제자유화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와 상반되는 경제적 비민주성을 노골화시키는 과정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60년대 이후부터 87년에 이르는 군사주의 정권 하에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중심주의로 특징되는 군사독재 정권의 경제정책이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근거한 시장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하였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민영화, 개방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서 비정규직의 양산, 공공부문의 축소,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압도하면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국민국가 차원에서 제도정치의 민주화로 특징되는 87년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90년대 후반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압도당하면서,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가 공평한 경제적 분배와 빈곤층의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의 국가권력이 국가단위를 넘어서 세계체제의 형태로 구조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앞에서, 주체적 대응능력을 갖지 못한 채 시장으로 권력을 넘겨주고 있은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시장중심의 세계화)가 상호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와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와 정치권력에 대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역할을 담당했던 시민사회에게 있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대상이 되고 있다.
87년 이후 국민국가 차원에서의 점진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의 시민사회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전 지구를 압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막아내기 위한 국제적, 지구적 차원의 연대를 향한 새로운 운동의 모색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
87년 민주화 이행기 이후 98년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여성은 가장 먼저 해고되고, 가장 나중에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되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남성가장의 실업과 빈곤에 집중한 반면,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여성빈곤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도외시하였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가구단위로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빈곤율 또한 개인이 아닌 가구단위로 측정되고 있다. 2000년 발표된 ‘가구소비실태조사’를 근거로 IMF 이후 여성빈곤 실태를 살펴보면, 여성가구주 가구가 1996년 16.6%에서 2000년 18.5%로 증가하였으며, 여성가구주의 빈곤율은 1996년 8.3%에서 2000년 16.9%로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현재 여성가구주 가구가 전체가구 중 차지하는 비중이 18.5%인 데 비하여 빈곤가구 중 차지하는 비중은 그 2.5배인 45.8%로 나타나 빈곤의 여성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빈곤 여성가구주 가구의 고용형태별 빈곤율을 살펴보면,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빈곤율은 정규직의 경우 1996년 7.1%에서 2000년 9.1%로 2% 증가한데 비하여, 비정규직은 1996년 13.1%에서 2000년 22.5%로 9.4% 증가하였다. 이처럼 비정규직 여성가구주가 경제위기 과정을 통해 더욱 빈곤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IMF 이후 여성가구주가 증가함과 동시에 여성가구주 중 빈곤 여성가구주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IMF 이후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강화되었다는 것과 연관해 볼 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빈곤의 여성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를 수용하는 국민국가의 친 시장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한국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낳고, 여성의 비정규직화로 귀결되면서, 여성빈곤의 심화, 빈곤의 여성화를 낳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운동 또한 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막아내기 위한 국민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국제적, 지구적 차원의 연대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여성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응하지 않는 한,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를 국민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2000년 이후 전 세계의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빈곤과 폭력 철폐를 위한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에 참여하고 있다.
(3) 우리 것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 문제
세계화로 인한 또 다른 변화는 이주여성과 국제결혼, 외국인 여성 인신매매 등과 같은 인종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여성인권문제가 한국사회라는 공간 내로 급속히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폐쇄성과 국가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사회는 세계화에 의해 제기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데 있어 한계를 드러내었다. 최근 뒤늦게나마 시민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여성운동 또한 이주여성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여성 등에 대한 인권보호와 지원활동을 중심과제로 삼는 여성단체들이 늘어나면서 이주여성들에 대한 지원과 아시아를 향한 연대운동으로의 확산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인신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개발된 한국사회로 일자리를 찾아 입국하는 이주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아시아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 내에서의 이주를 포함한 국제연대 활동은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던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제부터라도 세계화로 인해 한국사회 내에서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문제를 적극 대처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3. 끝없는 변화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와 여성운동의 과제
(1) 성 평등을 위한 남성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의 시민운동은 한국사회 발전정도에 대한 평가와 현 정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한 편에서는 보수적 저항(backlash)에 맞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국가 및 정부와의 협치(governance)를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지구적 차원의 빈곤의 구조화에 맞서 ‘운동의 급진화’를 통해서 운동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각각 서로 다른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성연합 역시 최근 민주화, 세계화, 다원화, 차이가 강조되는 사회 흐름 속에서 또 다시 ‘진보란 무엇인가?’, ‘지금 여성운동의 진보성은 무엇인가?’를 반문하면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망을 찾기 위한 모색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지표를 이야기 할 때,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여성의 지위향상이 급격히 이루어진 것은 가장 대표적인 민주화의 척도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교평가를 통해서 바라 본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여전히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성 평등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2004년 5월 유엔개발계획(UNDP)이 보고한 자료에서도 한국의 여성권한척도(GEM)는 68위를 차지했다. 또한 2005년 5월 16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여성의 권리: 남녀 불평등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58개국 중 이집트와 터키, 파키스탄과 요르단에 이어 54위라는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게다가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은 최근 아태지역 13개국 중 한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통계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불평등지수와 일부 남성 집단이 실감하는 불평등지수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하는 원인중의 하나는, 한국 남성이 기대하는 성 평등의 수준과 실제 국제사회에서 기준으로 제시되는 성 평등 사이에 ‘기대치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가부장성과 남성중심성으로 굳어온 한국 남성들의 인식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평등한 남녀관계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요구가 커진 것에 비해, 남성들은 여전히 차별적 관행과 언행에 익숙해 있어 남녀 사이에 충돌이 빈발하고 있다.
따라서 성 평등이 일상 속에서 관행으로 자리 잡고, 남녀의 관계가 일상 속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관행과 언어, 관계와 습관을 바꿔나가기 위한 남녀 모두의 일상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실천만이 법과 제도의 괴리, 선언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나의 일상이 바뀔 때, 성 평등한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87년 이후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주의 단계를 지나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을 거친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는 격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변해 온 것 보다 더 많이 변화되기를 요구받는 첨단의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변화를 주도한 집단이 변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변화의 정도와 속도의 차이로 인해 집단 간에 또는 집단 내에서 상호 갈등과 분쟁이 발생한다.
특히 민주주의 이행기를 경험하면서 권리의식이 확산됨으로 인해, 자신의 요구와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일방적 태도가 확장된 반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익히는 과정이 부족한 까닭에 개인과 집단 간에 이해의 충돌과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가 이행된 만큼 ‘민주주의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해와 갈등의 충돌은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때, 우리사회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거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틀이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쉼 없이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을 응수하면서 민주주의를 실제화 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유발하는 새로운 도전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주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우리 안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을 이끌어 내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 셋째, 상충하는 가치의 충돌 속에서 우선순위를 합의해 낼 수 있는 평화적 갈등해결 방법을 익혀야 한다. 넷째, 과거의 성과에 자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지속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겸손함을 키워야 한다. 다섯째, 분노에 머물지 않고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