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힘으로 지역 공동체가 큰다
유럽 풀뿌리 여성 운동의 현장을 가다
1. 독일 : ‘마더센터' 여성들이 만든 돌봄 교육공동체
엄마들의 힘으로 지역 공동체가 큰다.
여성연합 회원단체 소속 활동가 6명이 지난 5월 19일부터 6월 4일까지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4개국을 방문, 유럽의 풀뿌리 지역운동 현장을 돌아보았다.
본지(우먼타임즈)는 이들의 10여 곳에 대한 현장 탐방 사례 중 △돌봄과 교육 △저소득 여성의 경제 세력화 △사회적 기업 등 주제에 맞는 곳을 골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방자치·주민자치의 역사가 길고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 사회의 앞선 경험은 한국의 풀뿌리 지역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탐방은 한국여성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삼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구체적인 내용은 7월 말경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1973년 뉴욕의 한 사회복지사의 주도로 처음 설립된 후 현재 전 세계 750여 군데로 퍼져나간 마더센터. 의미 있지만 고되고 저평가되기까지 하는 육아를 지원하고, 자칫 고립되기 쉬운 어머니들의 연대를 통해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키워내는 비영리 기관이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방문한 돌봄과 교육의 공동체 마더센터는 새로운 형태의 주민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뜻 한국의 복지관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조직이 아니라 평등하게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운영 방식, 참여하는 만큼 권리가 주어지는 철학. 마더센터의 주인은 바로 주민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EKIZ’(Eltern-Kind-Zentrum)는 ‘더 제너레이션 하우스’라는 간판이 붙은 현대식 건물 안에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지은 건물로, 1층에 널찍한 로비와 마더센터에서 운영하는 사무실과 바, 도서관, 재활용 가게, 아동단기보호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한가운데 찻집 겸 식당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늘 여성들의 유쾌한 수다가 이어진다.
21년 전 우연히 독일에서 마더센터를 처음 만든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센터 속의 여성들’을 읽고 감명을 받아 ‘EKIZ’를 세우게 됐다는 안드레아 라욱스 씨는 우리 일행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당시 저는 싱글맘이었어요.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아이 하나는 반신마비였고, 저 자신에게도 중독의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서는 동네 장터에 가서 함께 마더센터를 만들 사람을 찾는다는 유인물을 돌렸다. 또 사회복지센터를 찾아가 공짜로 방을 빌렸다. 처음엔 30명 정도의 여성들이 모였다.
그는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등의 많은 문제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불평등과 잘못된 정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한 일이 개인적인 사정을 터놓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싱글맘이나 남편이 경제력이 있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여성, 또는 돈 버는 여성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마더센터의 운영철학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열린 공간’이라는 것. 마을 주민들은 마더센터를 서슴없이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계층이나 자격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100여명의 주민들이 마더센터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들어와서 일을 보고, 문단속을 한 뒤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 열린 공간에는 무려 40여개국의 이주 여성들이 동참하며 공동체 문화를 일궈가고 있었다.
둘째는 아이들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EKIZ가 세워진 1986년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에서는 낯선 경험이라고 했다. 공적 영역에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터부시하는 분위기였다. 이곳에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든 아이를 데려올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어린아이를 돌봐주기도 한다. 지독한 개인주의와 참혹한 가족 해체를 경험한 여성들은 이제는 아이들처럼 노인들도 마더센터 활동에 포함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셋째, 주민에 의한 운영 방식을 고집한다.
“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잘하는 일이 한 가지씩은 있게 마련이니 와서 재능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들은 뭔가를 조직하고 계획할 때 먼저 내부 사람들이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런 사람이 이웃에 있는지부터 알아본다. 일반 사회에서는 직업적 전문가를 높이 쳐주지만, 마더센터의 철학은 자신들을 ‘일상생활의 전문가’로 보는 것이다.
넷째, 인정을 해주는 문화다.
마더센터 내부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은 모두 보수를 주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1980년대만 해도 매우 혁명적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은 “주부들이 나라 돈을 받아 앉아서 커피나 마실 거냐”며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 성과가 이제 독일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라욱스 씨처럼 국가의 생계비 보조를 받고 사회복지사의 돌봄을 받던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들이 집 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던 일들을 공식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엄마들이 여성운동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마더센터의 운영 철학은 ‘마더센터를 세우는 네 가지 기둥’이라고 불리며 건물 공간 곳곳에, 또 모든 프로그램과 만남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마더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안티나 씨는 “마더센터에는 ‘예민한 안테나’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언제나 옆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곳은 저에게 가족이 되어주었어요. 진짜 가족은 독일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오히려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는 마더센터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게 좋았고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많은 여성들을 데려와 체험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마더센터에서 의사결정 참여자로 역량을 쌓은 주민들은 지역 사회에 이슈를 제기하고 지방정부 정책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풀뿌리 여성들의 성인지적 관점이 공공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도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어떤가? 여전히 프로그램 중심이고,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나뉘어져 대상화되어 있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을 때 이용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프로그램 중심의 운영은 사람들을 소원하게 한다. 마더센터의 경험과 철학이 우리 지역운동에 던지는 메시지다.
박신연숙(서울여성의전화 지역조직국장)
* 이 기사는 우먼타임스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유럽 풀뿌리 여성 운동의 현장을 가다
1. 독일 : ‘마더센터' 여성들이 만든 돌봄 교육공동체
엄마들의 힘으로 지역 공동체가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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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우먼타임즈)는 이들의 10여 곳에 대한 현장 탐방 사례 중 △돌봄과 교육 △저소득 여성의 경제 세력화 △사회적 기업 등 주제에 맞는 곳을 골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방자치·주민자치의 역사가 길고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 사회의 앞선 경험은 한국의 풀뿌리 지역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탐방은 한국여성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삼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구체적인 내용은 7월 말경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1973년 뉴욕의 한 사회복지사의 주도로 처음 설립된 후 현재 전 세계 750여 군데로 퍼져나간 마더센터. 의미 있지만 고되고 저평가되기까지 하는 육아를 지원하고, 자칫 고립되기 쉬운 어머니들의 연대를 통해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키워내는 비영리 기관이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방문한 돌봄과 교육의 공동체 마더센터는 새로운 형태의 주민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뜻 한국의 복지관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조직이 아니라 평등하게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운영 방식, 참여하는 만큼 권리가 주어지는 철학. 마더센터의 주인은 바로 주민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EKIZ’(Eltern-Kind-Zentrum)는 ‘더 제너레이션 하우스’라는 간판이 붙은 현대식 건물 안에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지은 건물로, 1층에 널찍한 로비와 마더센터에서 운영하는 사무실과 바, 도서관, 재활용 가게, 아동단기보호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한가운데 찻집 겸 식당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늘 여성들의 유쾌한 수다가 이어진다.
21년 전 우연히 독일에서 마더센터를 처음 만든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센터 속의 여성들’을 읽고 감명을 받아 ‘EKIZ’를 세우게 됐다는 안드레아 라욱스 씨는 우리 일행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당시 저는 싱글맘이었어요.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아이 하나는 반신마비였고, 저 자신에게도 중독의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서는 동네 장터에 가서 함께 마더센터를 만들 사람을 찾는다는 유인물을 돌렸다. 또 사회복지센터를 찾아가 공짜로 방을 빌렸다. 처음엔 30명 정도의 여성들이 모였다.
그는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등의 많은 문제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불평등과 잘못된 정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한 일이 개인적인 사정을 터놓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싱글맘이나 남편이 경제력이 있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여성, 또는 돈 버는 여성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마더센터의 운영철학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열린 공간’이라는 것. 마을 주민들은 마더센터를 서슴없이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계층이나 자격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100여명의 주민들이 마더센터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들어와서 일을 보고, 문단속을 한 뒤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 열린 공간에는 무려 40여개국의 이주 여성들이 동참하며 공동체 문화를 일궈가고 있었다.
둘째는 아이들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EKIZ가 세워진 1986년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에서는 낯선 경험이라고 했다. 공적 영역에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터부시하는 분위기였다. 이곳에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든 아이를 데려올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어린아이를 돌봐주기도 한다. 지독한 개인주의와 참혹한 가족 해체를 경험한 여성들은 이제는 아이들처럼 노인들도 마더센터 활동에 포함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셋째, 주민에 의한 운영 방식을 고집한다.
“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잘하는 일이 한 가지씩은 있게 마련이니 와서 재능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들은 뭔가를 조직하고 계획할 때 먼저 내부 사람들이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런 사람이 이웃에 있는지부터 알아본다. 일반 사회에서는 직업적 전문가를 높이 쳐주지만, 마더센터의 철학은 자신들을 ‘일상생활의 전문가’로 보는 것이다.
넷째, 인정을 해주는 문화다.
마더센터 내부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은 모두 보수를 주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1980년대만 해도 매우 혁명적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은 “주부들이 나라 돈을 받아 앉아서 커피나 마실 거냐”며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 성과가 이제 독일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라욱스 씨처럼 국가의 생계비 보조를 받고 사회복지사의 돌봄을 받던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들이 집 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던 일들을 공식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엄마들이 여성운동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마더센터의 운영 철학은 ‘마더센터를 세우는 네 가지 기둥’이라고 불리며 건물 공간 곳곳에, 또 모든 프로그램과 만남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마더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안티나 씨는 “마더센터에는 ‘예민한 안테나’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언제나 옆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곳은 저에게 가족이 되어주었어요. 진짜 가족은 독일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오히려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는 마더센터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게 좋았고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많은 여성들을 데려와 체험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마더센터에서 의사결정 참여자로 역량을 쌓은 주민들은 지역 사회에 이슈를 제기하고 지방정부 정책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풀뿌리 여성들의 성인지적 관점이 공공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도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어떤가? 여전히 프로그램 중심이고,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나뉘어져 대상화되어 있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을 때 이용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프로그램 중심의 운영은 사람들을 소원하게 한다. 마더센터의 경험과 철학이 우리 지역운동에 던지는 메시지다.
박신연숙(서울여성의전화 지역조직국장)
* 이 기사는 우먼타임스에서 전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