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10.02.18 조회 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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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13일. 오늘로써 수요시위가 900회를 맞이하였다. 1992년 1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수요시위를 한번도 참석한 적 없었던 나는 약간의 미안한 마음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대한민국의 한 여성으로서, 대한민국 여성운동의 한 주축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일하고 있는 인턴으로서의 사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일본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 이번 900차 수요시위를 위해 준비한 피켓 ⓒ 한국여성단체연합

 

▲ 이번 900차 수요시위를 위해 준비한 피켓 ⓒ 한국여성단체연합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남성시위자들의 모습과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 적잖이 놀랐다. 여대생으로서 항상 양성평등과 젠더문제에 관하여 토론하고, 영문학과 국제기구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국제화, 글로벌화를 운운하며 한국은 더 이상 한국인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소리 높여 주장했던 나인데, 나도 모르게 이런 시위는 한국인 여성만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아 새삼 부끄러워졌다.

 

▲ 제90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연대발언 중인 남윤인순 여성연합 상임대표 ⓒ 한국여성단체연합

 

 하지만 그런 반성도 잠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로 시선이 갔다. 영하 15도에 이르는 추위에도 사람들의 표정에선 일본으로부터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사죄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겠노라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모인 사람들의 표정만큼이나 다양하게 꾸며진 피켓들도 자신을 봐달라며 고개를 치켜들고 일본대사관을 향해 뭔가를 외치는 것 같았다. 지난 이틀 동안 만든 우리의 피켓은 그에 비하면 너무 작게 느껴졌지만 당당하게 그 대열에 자리잡고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 ⓒ 한국여성단체연합
처음엔 구호를 외치려는 소리가 목까지 차 올랐지만 선뜻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한국의 위안부문제에 아무 관련이 없는 듯이 보였던 한 외국인 여성 자원활동가의 연설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900차까지 이어지는 이 수요시위는 비단 일제강점기하의 한국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전쟁과 그 상황에 놓인 전 세계 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는 그녀의 힘있으면서도 간결한 그 연설은 목까지 차 올랐던 나의 구호를 입 밖으로 속 시원히 외치게 해 주었다. 나의 구호가 일본대사에게 들려 그들의 마음까지 돌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또 내 손에 들린 작은 피켓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겨 전국으로 퍼지길 기대하며 있는 힘껏 외쳤다.

 

 시위가 끝나고 우리는 마치 시위 중에 잊었던 추위를 그제서야 느낀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향한 곳은 삼청동의 한 수제비집. 얼었던 몸을 녹여주는 따끈한 수제비 국물과 파전 그리고 반주로 마시는 동동주의 달콤한 맛이란! 점심을 배부르게 끝내고도 뭔가가 아쉬운 다섯 여자들의 입은 통나무 향이 은은히 풍기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발길을 이끌었다. 진한커피 한잔과 달콤한 와플을 먹으며, 조금 엉뚱하지만 이게 바로 여성단체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문제들을 꿰뚫는 통찰력과 그런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추진력, 리더십을 지님과 동시에 부드러움과 섬세함, 소소한 행복 등 여성단체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

 

글 박지연(한국여성단체연합 인턴활동가 /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