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는 모름지기 해악이고, 진보는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구한말 이제마 선생은 당시의 시대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갈길 몰라 헤매는 우리의 심정을 어쩌면 정확하게 간파하고 계실까 놀랍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몰아치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소박한 민중들에게는 언제나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기에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의 고민과 맞닿는 것이라 여겨진다.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보수의 진보화, 진보의 보수화'라는 말로써 혼돈의 20세기말 보수와 개혁, 그리고 여전히 꿋꿋하지만 식상한 진보의 존재방식을 해석하였다. 자유화, 세계화, 개인주의화의 가속화는 기존의 보수에게 시장과 경쟁을 통한 이윤 극대화에 용이한 위로부터의 제도변화를 주장하는 재빠른 속물적 진보주의자(변화를 주장한다는 의미에서)로 만들었고, 이에 맞서는 기존의 진보로 하여금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위로부터의 변화에 반대하는 보수적 존재(변화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로 전락시켜 버렸다. 보수에도 진보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속칭 개혁론자들은 대세로서의 변화를 수용하나 주체적 대응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통제하기 힘든 집단이기주의와 기득권 층의 저항,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도덕성과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제도개혁의 힘을 상실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는 어떠한가?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겁지 않더냐.." '사노라면'의 가사처럼 가난해도 서로 보듬어주면서 행복했다는 과거의 향수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그 옛날의 우리가 이미 아니라며 아쉬워하는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는 오늘, 열정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보이는 대로만 믿기에는 세상은 왜 이리 점점 복잡해지는지... 그래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이 변화시켜야 하는지...
동종(同種)끼리는 갈라서고 이종(異種)간에 서로 결합한다는 오늘의 세상살이. 적과 동지가 분명치 않고 사안에 따라 뒤바뀌는 인간 그리고 사회적 관계. 같은 여성이라도 처지와 입장 그리고 정체성에 따라 주장을 달리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여성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주체적 현실이다. 다양한 만큼 풍부해지나 풍부한 만큼 방향을 모아내기 어려운 운동의 현실 속에서 여성운동은 한 해를 보냈다. 올 한해 여성운동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2002년의 여성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2001년 여성계 10대 뉴스는 올 한해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과 이슈들을 정리해 주고 있다.
여성부의 신설, 모성보호 사회분담화의 전기를 마련한 여성노동관계법의 개정, 호주제 위헌심판 제청,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성매매방지법 입법청원, 반전평화여성운동의 전개, 비정규직 노동자보호법 무산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바빴던 여성단체들의 한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여성이슈로는 간통죄 존폐논쟁, 출산율 1.42%로의 현격한 저하와 노령화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가족정책 변화의 필요성 제기, 사후피임약 허용논란, 여성할당제의 실질화를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논의, 그리고 다양한 육아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사회적 변화에 따른 남녀의 성 역할 재고 및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올해 여성운동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 중의 하나는 모성보호 관련 법개정운동과 간통죄 폐지논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여성 내부의 다양한 입장차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정책적 요구로 모아낼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여성운동의 기본관점 중의 하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룬다'라는 것이며, 이는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재생산노동에 대한 보호를 통해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차이에 대한 여성운동의 과제는 지금까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해 차이가 차별로 귀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에 집중되어 왔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여성들의 관점과 대응이 사회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즉 여성과 남성간에 존재하는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 내부의 차이가 또 다른 차이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간통죄 존폐여부를 둘러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임을 아직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일반의 현실과는 달리 개별 여성 중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여성이 존재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경제적 권리보다 우선 시 되는 여성이 있으며 또 그 반대도 존재한다. 이렇듯 하나의 제도가 여성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며, 질곡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다수결로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일까?
여성관련 노동법 개정운동 또한 법과 제도의 변화가 여성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른 결과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차이를 여성운동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여성운동의 새로운 숙제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여성운동 내부의 차이가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부르조아 여성운동, 급진적 여성운동,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 사회주의 여성운동 등이 차별의 근원과 해결과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왔으며, 이에 따른 여성운동 내부의 갈등과 대립 또한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를 계기로 이념적 대립의 중요성이 무게를 잃으면서 여성운동 또한 이념적 차이와 대립보다는 성 평등을 위한 현실적 과제 해결에 집중해 왔다. 지금까지 이념이 현실을 해석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이 이념을 분화시키면서 여성집단 내부가 개별화되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운동의 각 부문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근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상호 경쟁하고, 오히려 여성운동이 풍부해지면서 여성의 세력화, 주류화에 더욱 기여하게 될 것인가?
갈등해결 방법론에 따르면 갈등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며,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갈등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갈등은 성격에 따라 첫째, 해결될 수 있는 갈등, 둘째, 양립 가능한 갈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 안의 차이와 갈등은 어떤 성격일까? 그 보다는 어떠한 성격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여성운동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 본다. 결국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이므로, 우리들의 의지가 여성운동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보수의 진보화, 진보의 보수화'라는 말로써 혼돈의 20세기말 보수와 개혁, 그리고 여전히 꿋꿋하지만 식상한 진보의 존재방식을 해석하였다. 자유화, 세계화, 개인주의화의 가속화는 기존의 보수에게 시장과 경쟁을 통한 이윤 극대화에 용이한 위로부터의 제도변화를 주장하는 재빠른 속물적 진보주의자(변화를 주장한다는 의미에서)로 만들었고, 이에 맞서는 기존의 진보로 하여금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위로부터의 변화에 반대하는 보수적 존재(변화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로 전락시켜 버렸다. 보수에도 진보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속칭 개혁론자들은 대세로서의 변화를 수용하나 주체적 대응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통제하기 힘든 집단이기주의와 기득권 층의 저항,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도덕성과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제도개혁의 힘을 상실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는 어떠한가?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겁지 않더냐.." '사노라면'의 가사처럼 가난해도 서로 보듬어주면서 행복했다는 과거의 향수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그 옛날의 우리가 이미 아니라며 아쉬워하는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는 오늘, 열정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보이는 대로만 믿기에는 세상은 왜 이리 점점 복잡해지는지... 그래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이 변화시켜야 하는지...
동종(同種)끼리는 갈라서고 이종(異種)간에 서로 결합한다는 오늘의 세상살이. 적과 동지가 분명치 않고 사안에 따라 뒤바뀌는 인간 그리고 사회적 관계. 같은 여성이라도 처지와 입장 그리고 정체성에 따라 주장을 달리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여성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주체적 현실이다. 다양한 만큼 풍부해지나 풍부한 만큼 방향을 모아내기 어려운 운동의 현실 속에서 여성운동은 한 해를 보냈다. 올 한해 여성운동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2002년의 여성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2001년 여성계 10대 뉴스는 올 한해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과 이슈들을 정리해 주고 있다.
여성부의 신설, 모성보호 사회분담화의 전기를 마련한 여성노동관계법의 개정, 호주제 위헌심판 제청,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성매매방지법 입법청원, 반전평화여성운동의 전개, 비정규직 노동자보호법 무산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바빴던 여성단체들의 한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여성이슈로는 간통죄 존폐논쟁, 출산율 1.42%로의 현격한 저하와 노령화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가족정책 변화의 필요성 제기, 사후피임약 허용논란, 여성할당제의 실질화를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논의, 그리고 다양한 육아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사회적 변화에 따른 남녀의 성 역할 재고 및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올해 여성운동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 중의 하나는 모성보호 관련 법개정운동과 간통죄 폐지논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여성 내부의 다양한 입장차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정책적 요구로 모아낼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여성운동의 기본관점 중의 하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룬다'라는 것이며, 이는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재생산노동에 대한 보호를 통해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차이에 대한 여성운동의 과제는 지금까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해 차이가 차별로 귀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에 집중되어 왔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여성들의 관점과 대응이 사회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즉 여성과 남성간에 존재하는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 내부의 차이가 또 다른 차이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간통죄 존폐여부를 둘러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임을 아직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일반의 현실과는 달리 개별 여성 중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여성이 존재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경제적 권리보다 우선 시 되는 여성이 있으며 또 그 반대도 존재한다. 이렇듯 하나의 제도가 여성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며, 질곡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다수결로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일까?
여성관련 노동법 개정운동 또한 법과 제도의 변화가 여성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른 결과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차이를 여성운동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여성운동의 새로운 숙제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여성운동 내부의 차이가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부르조아 여성운동, 급진적 여성운동,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 사회주의 여성운동 등이 차별의 근원과 해결과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왔으며, 이에 따른 여성운동 내부의 갈등과 대립 또한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를 계기로 이념적 대립의 중요성이 무게를 잃으면서 여성운동 또한 이념적 차이와 대립보다는 성 평등을 위한 현실적 과제 해결에 집중해 왔다. 지금까지 이념이 현실을 해석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이 이념을 분화시키면서 여성집단 내부가 개별화되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운동의 각 부문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근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상호 경쟁하고, 오히려 여성운동이 풍부해지면서 여성의 세력화, 주류화에 더욱 기여하게 될 것인가?
갈등해결 방법론에 따르면 갈등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며,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갈등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갈등은 성격에 따라 첫째, 해결될 수 있는 갈등, 둘째, 양립 가능한 갈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 안의 차이와 갈등은 어떤 성격일까? 그 보다는 어떠한 성격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여성운동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 본다. 결국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이므로, 우리들의 의지가 여성운동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