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촛불의 힘을 믿는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 ||
사람들에게 6월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난 6월이 늘 함성으로 기억돼. 민주화의 함성 그리고 월드컵 응원의 함성. 그런데 그 함성 속에 피끓는 함성이 또 하나 있었어.
| ▲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 !! ⓒ 한국여성단체연합 | ||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안녕, 나 미선이야. 작년에 그만 미끄러져서 내년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단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집중해서 공부가 잘 안 돼. 그래서 바람도 쐴 겸 청계천에 잠시 나왔어. 그런데, 너희들은 무슨 일로 이 곳에 모였니? 너희가 들고 있는 사진 속의 아이가, 혹시 나와 내 친구 효순이인 거야? 왜? ...
| ▲ 그렇구나, 이미 난 너희들과 같은 시공간의 사람이 아니구나. ⓒ 한국여성단체연합 | ||
그렇구나, 내 목소리가 너희에게 들리지 않겠구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겠구나.
5년 전 그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 ... 떠올리다가도 너무 끔찍해서 다시 내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아버리게 되는 그 날, 나는 이미 너희들과 같은 시공간의 생명이 아니게 되었구나.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는 일도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며 집으로 가는 일도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빠와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일도 이제는 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어. 미군의 전쟁연습 때문에...
| ▲ 너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내가 기도할게. ⓒ 한국여성단체연합 | ||
고맙다 친구들아.
이제는 소수가 된 의식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감사해.
입장은 다르지만 모두 한결같은 마음에 감사해.
5년 전 외침 그대로 청계천의 함성이 전쟁이 필요없는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해.
| ▲ 고맙다, 친구들아. ⓒ 한국여성단체연합 | ||
세상에 정의는 반드시 살아 있고 나는 촛불의 힘을 믿어.
어깨펴자, 우리의 노래로 꽃을 피우자!
그리고 부디 ... 우리를 잊지 말아줘. 우리 죽음의 의미를 잊지 말아줘.
| ▲ 부디, 우리를 잊지 말아줘. ⓒ 한국여성단체연합 | ||
미선이 효순이 추모 5주기 참석, 나에게는 스스로와 꼭 지켜내야 할 약속이었다.
2002년 늦가을의 거리, 지금의 남편과 막 연애를 시작하던 때였다. 우리는 각각의 손에 촛불을 들고 서로의 두 손을 잡았다.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이미 하늘에 간 불쌍한 두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은 인간인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 이후 더 이상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가 상처받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울지 않기를 분노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해 나는 엄마를 모시고 애인이었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많은 시간을 광화문에서 보냈다. 광화문은 나의 마음의 거리였다. 진실의 힘이 나를 종종 그 거리로 이끌었다.
2002년에서 03년으로 향하던 마지막 날의 밤도 나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혔고 2003년 미선이 효순이 1주기 때도 시청 앞에서 큰 소리로 미선이를 살려내라고 효순이를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살을 부비고 지낸 친구녀석이 냉정하게 말한다. "너를 비롯 지금 모인 이 사람들, 이 거리, 이 함성, 이 촛불 ... 내년에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모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나 할까?"
이후에도 나의 마음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거리는 가득찼다. 함성도 높았다. 하지만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억울한 한미관계를 향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그 해결방안을 지혜롭게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몸 한 구석이 자꾸 아프다. 약으로도 주사로도 치료되지 않는 병이 나에게 있나보다. 불합리한 한미관계가 해결되지 않는한 나의 병도 낫지 않겠지. 오늘도 마음의 거리에서 함성을 외쳐본다. 이 함성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나갈 지가 우리 산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