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 Women21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나 특징, 각국의 소식, 재외 한국인들의 사는 이야기 등을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글을 통해 부정기적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편집자주>.

더위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익히 알고 있지만 무척 덥습니다. 하지만 40도를 오르내리는 낮 기온에 비해 해가 지면 지낼만합니다. 이곳은 여름이 건기라서 거의 비가 오지 않으니 낮에도 그늘에 있으면 그런대로 시원합니다. 다만 무더운 날씨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렇게 더운데도 문 고리에서 정전기를 느껴야 하는 게 아직 낯설 뿐입니다.

이곳과 한국 사이에는 4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덕분에 인천 공항에서 5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이곳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9시, 실제로 걸린 시간은 7시간이 넘는데 현실 속에서는 3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셈입니다. 다행히 이곳이 한국보다 서쪽이니까 생활하는 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이곳 타슈켄트는 구 소연방 시절 연방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에프에 이어 연방 내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지금은 중앙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도시라는군요. 지하철, 버스, 트람바이(옛 서울의 전차와 유사), 트랄레이부스(전기를 이용해 다니는 버스)가 이곳의 주요 교통 수단입니다.

요금을 말하면 아마 다들 놀라실 겁니다. 이곳 돈으로 40숨, 원화로 환산을 해도 아마 50원이 채 안될 겁니다. 택시는 시내 전 구역 600숨 정도. 특이한 것은 영업용 택시가 따로 있긴 하지만, 방향만 맞으면 자가용이라도 요금을 내고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몇해 전 대우가 대대적으로 이곳에 투자를 했던 관계로 시내에는 대우차가 참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에로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던 넥시아, 그리고 미니 봉고 다마스, 티코까지….

이곳에서는 티코로 택시 영업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9월 1일에는 마티즈도 출시된다고 합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한국 차가 가장 많은 곳이 이곳 타슈켄트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독립 후 우즈벡의 자본주의 경제 모델은 원래 터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즈벡과 한국이 국교를 맺고 이곳의 까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씨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발전 모델을 한국형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우가 이곳에 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구요. 재미있는, 아니 어쩌면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곳의 까리모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한국의 박정희라는 군요.

1991년 9월 1일, 소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올 9월 1일이면 독립 10주년이 됩니다. 독립 후 줄곧 이곳의 대통령은 이슬람 '까리모프'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연방 시절에는 우즈벡 공산당의 서기장이었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공산당을 탈당하였습니다. 이후 우즈벡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수로 취임한 후 간선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고, 55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 총선 이후, 다시 간선을 거쳐 현재 2005년까지 임기를 확보해 놓고 있답니다.

민족주의를 국가 주도형 발전의 주동력으로 삼을 때 필요한 것이 민족 영웅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독립 후 우즈벡에서 가장 크게 부상한 영웅은 '아미르 띠무르'일 겁니다.

그는 15세기 이곳 우즈벡이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할 당시 정복 전쟁 영웅으로서, 우즈벡의 알렉산더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독립 이전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우즈벡인에게 들었습니다. 물론 소 연방 하에서 개개 민족의 영웅이 부각될 여지는 그만큼 적었던 거겠지요.

지금 타슈켄트의 중심가에는 아미르 띠무르라는 이름을 가진 큰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 중앙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띠무르의 동상이 있구요.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 지금 띠무르 동상이 있는 그 자리에 1964년까지는 스탈린의 동상이 같은 크기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91년에 독립할 때까지 칼 맑스의 동상이 있었고, 독립 후 띠무르의 동상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까리모프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리를 차지할 다음 타자는 까리모프가 될 거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소 연방 해체, 그리고 독립 10년, 우즈벡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이곳에서 표면적으로 볼 때 우즈벡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연방체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들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막심 고리끼라는 동네 이름과 뿌쉬킨 거리.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현재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정치가 사라져도 예술은 다른 의미로 존재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 아직은 낯설기만 한 뿌쉬킨 거리를 지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