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 _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처음' 뵙겠습니다
여성미래센터 1층 바오밥나무 카페에 들어서자 낭랑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교육이든 약속이든 항상 먼저 와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의 허스토리(herstory) 역시 이런 그의 성격과 닮아 있다. 여성운동의 ‘처음’을 함께 했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 원장의 허스토리를 4월 29일 '처음' 만났다.
첫 번째 '처음'
그가 신학대학원 과정에 있던 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여성학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를 거점으로 여성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준비위원회는 커리큘럼을 편성하는 것부터 강사 발탁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이화여대 여성학 과정을 수립하는 기틀을 닦았다. 때는 1977년, 아시아 최초의 여성학 강좌였다.

여성미래센터 1층 바오밥나무 카페에 들어서자 낭랑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교육이든 약속이든 항상 먼저 와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의 허스토리(herstory) 역시 이런 그의 성격과 닮아 있다. 여성운동의 ‘처음’을 함께 했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 원장의 허스토리를 4월 29일 '처음' 만났다.
첫 번째 '처음'
그가 신학대학원 과정에 있던 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여성학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를 거점으로 여성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준비위원회는 커리큘럼을 편성하는 것부터 강사 발탁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이화여대 여성학 과정을 수립하는 기틀을 닦았다. 때는 1977년, 아시아 최초의 여성학 강좌였다.

그의 이야기는 '말'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목소리, 눈짓, 손짓이 하나되어
유려한 '노래'에 가깝게 들린다.
유려한 '노래'에 가깝게 들린다.
준비위원회 일원이었던 그가 이화여대에서 조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티칭 어시스턴트(teaching assistant)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여성학과 졸업생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일을 지속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여성학과 졸업장 없는 여성학 조교인거야.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된 거지."
충분히 부당하고 억울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그는 당시나 지금이나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확산되기 시작하면 자격을 따지기 마련인거야. 공식화, 체계화되는 과정인 거지. 첫 사람들은 열정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일이 열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이화여대 여성학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명실공히 그는 우리나라 여성학의 ‘최초 기획자’ 중 한 명이다.
두 번째 '처음'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는 그는 진보 여성운동의 모태로 불리는 여성평우회 준비모임에 참여한다. 준비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열렸는데, 하루는 단체명을 정하면서 유엔 산하단체 느낌의 ‘평등과 평화와 발전을 위한 여성회(?)’라는 이름이 제안되었다.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지적했다.
"약자로 하면 ‘평평발’이 되네요. 너무 웃기지 않아요?"
이 문제제기가 공감을 얻어 결국 ‘평등한 여성들의 모임’을 뜻하는 여성평우회로 의결되었다. 이를 두고 “내가 작명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공헌을 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쳤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여성학에 이어 여성운동에서도 역사의 첫 장에 이름을 남겼다.
학생운동과 여성운동 등 “맨날 바쁜(!) 운동권” 사람들만 만나던 그가 85년 스승의 추천으로 독일로 떠나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독일은 정(~~~)말 새로운 사람들이 있더라.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여행할까, 그 얘기를 하루 종일 하고 있는 거야. 거기서 나는 견디고 들을 수밖에 없어. 거기서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무하고도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내 입을 닫는 것, 리스닝(listening)한다는 것이 뭔지 배운 거야."
독일에서 그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살기 위해서는 견디고 듣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의 7년은 내려놓고 느긋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를 성숙시켰다.
세 번째 '처음'
한국에 돌아온 후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을 때 장충동으로 오라는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다. 여성사회교육원과의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단체였고, 구성원도 셋밖에 되지 않아 그가 주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해갔다.
특히 정보화 사회 심포지엄은 당시만 해도 ‘정보화’ 사회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았을 만큼 익숙지 않은 주제였다. 반발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생소한 주제들을 다뤘다. 리더십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그의 안목은 여성운동의 교육 분야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처음을 준비해가던 그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처음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시대흐름을 읽는 그의 능력은 현재의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단에서도 엿보인다.
"우리는 말하자면 여성학과 졸업장 없는 여성학 조교인거야.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된 거지."
충분히 부당하고 억울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그는 당시나 지금이나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확산되기 시작하면 자격을 따지기 마련인거야. 공식화, 체계화되는 과정인 거지. 첫 사람들은 열정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일이 열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이화여대 여성학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명실공히 그는 우리나라 여성학의 ‘최초 기획자’ 중 한 명이다.
두 번째 '처음'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는 그는 진보 여성운동의 모태로 불리는 여성평우회 준비모임에 참여한다. 준비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열렸는데, 하루는 단체명을 정하면서 유엔 산하단체 느낌의 ‘평등과 평화와 발전을 위한 여성회(?)’라는 이름이 제안되었다.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지적했다.
"약자로 하면 ‘평평발’이 되네요. 너무 웃기지 않아요?"
이 문제제기가 공감을 얻어 결국 ‘평등한 여성들의 모임’을 뜻하는 여성평우회로 의결되었다. 이를 두고 “내가 작명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공헌을 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쳤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여성학에 이어 여성운동에서도 역사의 첫 장에 이름을 남겼다.
학생운동과 여성운동 등 “맨날 바쁜(!) 운동권” 사람들만 만나던 그가 85년 스승의 추천으로 독일로 떠나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독일은 정(~~~)말 새로운 사람들이 있더라.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여행할까, 그 얘기를 하루 종일 하고 있는 거야. 거기서 나는 견디고 들을 수밖에 없어. 거기서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무하고도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내 입을 닫는 것, 리스닝(listening)한다는 것이 뭔지 배운 거야."
독일에서 그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살기 위해서는 견디고 듣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의 7년은 내려놓고 느긋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를 성숙시켰다.
세 번째 '처음'
한국에 돌아온 후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을 때 장충동으로 오라는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다. 여성사회교육원과의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단체였고, 구성원도 셋밖에 되지 않아 그가 주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해갔다.
특히 정보화 사회 심포지엄은 당시만 해도 ‘정보화’ 사회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았을 만큼 익숙지 않은 주제였다. 반발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생소한 주제들을 다뤘다. 리더십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그의 안목은 여성운동의 교육 분야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처음을 준비해가던 그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처음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시대흐름을 읽는 그의 능력은 현재의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단에서도 엿보인다.
"지금 여성운동이,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이 정말 나하고 관련한 분노가 있고, 시대적 문제라는 인식이 있나? 그래야 운동할 힘이 생기는데 지금은 그런 열정이 일어나기는 객관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왔지. 우리는 여성학을, 여성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했지만 이제 너희는 평등, 관계지향적이고 관계적 구조, 양자를 두루 살피는 문제로 넘어가는 때인 거야. 그래서 운동을 내가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보태주던 시대는 지난 거 같아. 운동은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운동하기는 더 어려운 시대가 온 것 같아."
가치로운 삶
그는 뭐든지 처음이 쉽고 재미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첫세대였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신나게 운동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 또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자신보다 ‘처음’에 있던 사람, 여성운동 선배들을 꼽았다. 같이 활동하진 않았어도, 결이 달랐어도, 여성운동의 선배들은 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이었다. 여성이 사회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을 만들며 사는 것, 가치를 만들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알려준 이가 선배들이었기에 그는 선배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여성운동가로서 살아온 삶을 가치로운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 내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지만 얻어가는 것에 대해서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야. 고생은 더럽게(?) 했지만 매우 가치로운 삶인 거야.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다른 삶을 선택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아."
그와 대화하는 동안 카페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 왔고 무슨 이야기인지 같이 듣고 싶어 했다. 그의 이야기는 누구나 재밌어하고 관심과 흥미를 끈다. 그것은 비단 그의 시원한 입담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재밌는 이야기는 깊고 넓은 지식의 향연으로 가득 차있다. 누구나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다양한 것을 이해하게 하는데 초석이 된 거 같아. 박사를 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자료를 선별하는 능력 같은 게 생기는 거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가를 짚어내는 능력."
책도 자리가 있고, 읽는 의미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상실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지식의 너비를 확장하는데 다큐멘터리가 좋은 매체라는 힌트를 주기도 했다. (그처럼 만물박사가 되고 싶다면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 손에 책과 다큐를 놓지 말지어다!) 그와 같은 석학들일수록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 되. 뭐든지 많이 알아야 해."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하면서 그는, 이제 여성들의 교육 참여기회는 정말 많고 오히려 남성들의 교육 참여기회가 더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여성주의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그가 여성학을 최초로 기획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뼈있는 말을 하면서도 부드럽고 편하게 들리게 만드는 수십 년 경험, 그리고 끊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지적 긴장이 만든 내공이 있었다.
가치로운 삶
그는 뭐든지 처음이 쉽고 재미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첫세대였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신나게 운동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 또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자신보다 ‘처음’에 있던 사람, 여성운동 선배들을 꼽았다. 같이 활동하진 않았어도, 결이 달랐어도, 여성운동의 선배들은 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이었다. 여성이 사회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을 만들며 사는 것, 가치를 만들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알려준 이가 선배들이었기에 그는 선배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여성운동가로서 살아온 삶을 가치로운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 내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지만 얻어가는 것에 대해서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야. 고생은 더럽게(?) 했지만 매우 가치로운 삶인 거야.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다른 삶을 선택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아."
그와 대화하는 동안 카페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 왔고 무슨 이야기인지 같이 듣고 싶어 했다. 그의 이야기는 누구나 재밌어하고 관심과 흥미를 끈다. 그것은 비단 그의 시원한 입담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재밌는 이야기는 깊고 넓은 지식의 향연으로 가득 차있다. 누구나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다양한 것을 이해하게 하는데 초석이 된 거 같아. 박사를 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자료를 선별하는 능력 같은 게 생기는 거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가를 짚어내는 능력."
책도 자리가 있고, 읽는 의미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상실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지식의 너비를 확장하는데 다큐멘터리가 좋은 매체라는 힌트를 주기도 했다. (그처럼 만물박사가 되고 싶다면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 손에 책과 다큐를 놓지 말지어다!) 그와 같은 석학들일수록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 되. 뭐든지 많이 알아야 해."

어느 날 또 카페에 앉아 있는 그를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날을
기약하며, 기다리며, 기대한다.
기약하며, 기다리며, 기대한다.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하면서 그는, 이제 여성들의 교육 참여기회는 정말 많고 오히려 남성들의 교육 참여기회가 더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여성주의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그가 여성학을 최초로 기획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뼈있는 말을 하면서도 부드럽고 편하게 들리게 만드는 수십 년 경험, 그리고 끊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지적 긴장이 만든 내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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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성연합의 '온콘'은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에서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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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 원장
인터뷰어 : 이루용, 김손경미
기사 작성 : 김손경미
사진 촬영 : 이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