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참 잘했어요♡"
천재는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의 질문에 존재를 건 집요한 질문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여노’) 공동대표를 만나기 위해 6월 25일 수요일 오전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찾았다.
경미) 독자 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여노’) 공동대표 맡고 있는 임윤옥이고요, 나이는 만 51세입니다. 남편도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 하고 있어요. 활동가 부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고등학생, 대학생인 두 딸이 있어요.
화주) 둘째 딸이 고등학생이라 신경을 많이 쓰시겠네요.
하루하루 자본주의 경쟁교육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가에 대한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에요. 내가 활동가라고 해서 “성적 상관없어!”라고 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그렇다고 경쟁교육을 쫓아가자니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안 될뿐더러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수직계열화시켜 대학에 보내는 지금의 교육현실이 너무나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아이의 미래라는 측면과 이념적인 측면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항상 있어요. 나는 활동가이면서도 부모이고 생활인이기 때문에 일상 하나하나를 무 자르듯 할 수 없어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쟁의 내면화 이런 것이 책에나 있는 담론이 아니라 우리 식탁에 와있고 일상 하나하나가 그것과 대결한다는 거예요.
화주) 신자유주의적인 일상과의 대결 속에서 항상 중심을 잡고 살아가시는데 그 중심의 기저에는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셨는지 듣고 싶어요.
이런 걸 간결하게 얘기해야 하는데! ^^
저는 학생 때부터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인간이 제도 속에서 자유롭지 않구나하는 문제의식. 당시의 제도 교육이 사람을 위한 교육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런 고민을 가지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제가 지내던 광주에서 광주항쟁이 일어났어요. 하루는 계엄군이 일시적으로 후퇴해 아버지 손을 잡고 광주도청과 부근을 돌고 있는데 도청 바로 옆에 태극기가 덮인 50여개의 관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어요. 돌아오는 길 여기저기에 주먹밥이 놓여 있고 버스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시민들은 박수를 쳐주는데, 천만 볼트의 전기를 맞은 것 같은 전율이 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뭔가 해방된 것 같은,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몸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그 날이 매우 강력한 체험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학생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운동을 하면서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아마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오빠에 대한 엄마의 큰 기대에 비해 나에 대한 기대는 별로 크지 않음을 알면서 엄마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불쑥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욕구들이 제가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에 메어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확인받고 싶은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요.
제도교육에 대한 문제, 광주항쟁의 경험, 오빠와 나에 대한 엄마의 다른 양육태도, 이런 것들이 제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질문으로 빙빙 돌았어요. 이 질문을 풀어야겠는데 그러려면 제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하지만 이 질문을 풀고 자유롭게 살고 말지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어요. 질문의 답을 풀어야 삶을 다시 계획하고 사람답게 살 수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운동에 뛰어들었죠.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후배들을 양성하다보니까 제 말에 책임을 져야겠는 거예요. 그동안 떠든 것에 책임을 지려면 말한 대로 정말 살아봐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에 가기로 결론내리고 준비와 공부 끝에 부평 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경제적 호황기였기 때문에 기본 잔업이 8시까지였고 10시 반까지나 철야도 빈번했어요. 또 당시 공장에 취업하려면 15세 이상이어야 하는데 그보다 어려서 취업하려는 아이들이 언니 주민등록증으로 들어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4년간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체득했어요.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하고 힘든 생활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이렇게 성실히 산다는 것.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집밖에서는 반장·조장들 때문에, 집안에서는 오빠들 때문에 목소리도 못 내고, 그런데도 너무나 건강한 생활을 하는 거예요. 건강하다는 것은, 쥐꼬리만 한 월급 12만원에서 방세 5만원 내면 쓸 것도 없는데 그걸 쪼개서 엄마 선물 사드리고 쪼개서 저금하고 그렇게 살더라는 거죠. 이 친구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사회라는 생각이 들이었어요. 4년 후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공장에서 더 일할 수 없었고 결혼하면서 여성노동자회로 들어갔어요. 이 경험 속에서 쌓인 것들이 여노로 와서, 일하는 여성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 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어요.
고래) 이렇게 오시기까지 선택의 갈림길들이 있었을 텐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여행 칼럼니스트. 어릴 적, 집에 세계여행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비행기는 특특특특권층!만 탈 수 있었는데 저자가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는 걸 보면서 나도 이렇게 여행하고 새로운 것들을 보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이 뭘까 라는 질문을 풀려면 방구석에 처박혀서는 답을 알 수 없으니까 다양한 세상, 다양한 삶을 봐야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막연하게 여행하면서 글 쓰는 사람이 돼야지 했네요.^^ 물론 동일한 사회역사적 맥락에 있었다면 또다시 운동을 했을 것 같고, 만약 다른 맥락이 펼쳐진다면 세계여행을 하며 삶의 다양성에 감탄하며 다니고 있지 않을까.
화주) 가장 기억에 남는 여노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IMF 이후 여성빈곤 문제가 심각했을 때 부천여노에서 상담을 했어요, 한 여성노동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죽으려고 땅을 팠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 우리 이러지 말고 힘을 내서 살아요”라고 말했고, 그 길로 뭐라도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부천여노에 방문하신 거였어요. 그 얘기를 듣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이구나, 우리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분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우리의 역할이 무겁다는 느낌과 동시에 꼭 필요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강하게 쳤던 기억이 나요.
고래)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운동하면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으신지요?
활동하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여노 상근활동을 쉬면서 과외를 한 적이 있어요. 남편이 해고투쟁 하던 때라 돈을 벌어야했거든요. 나름 돈도 잘 벌고 운동할 때보다 편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상근으로 복귀할 때 가장 고민이 많았어요. 이대로 소시민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수입은 반으로 줄고 아이들은 방치되는, 불안정한 운동가의 삶을 살 것인가. 두 가지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교육과 소비주의. 이대로 살다보면 나 역시 아이들한테 채찍질을 하게 될 것 같은 거예요. 교육에 대한 긴장감을 놓아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소비주의에 한 번 빠지면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치장하고 보여주기 위한 삶으로 전락해 삶의 본질과 멀어질 것 같았어요. 구매욕과 과시욕으로 삶이 왜곡·변질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래서 결국 아이들이 다시 방치됐...ㅋㅋㅋ
고래) 흐흐흐. 그래서 지금 여노 공동대표까지 하고 계시네요. 여노에서 남은 임기동안이나 개인 임윤옥으로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가드너가 되고 싶어요. 정말 정원을 가꿔보고 싶어요. 박완서 선생님의 ‘세상에 예쁜 것’을 읽으면서 완벽하게 자유인이 된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호미를 들고 내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 이렇게 말하면 제가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비웃지만.^^ 어쨌든! 그렇게 제도나 규율이나 통제에서 완벽히 벗어나있는 나. 우주 안에 자유로운 나. 심지어 삶의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냥 존재 자체로 충만한 나. 그렇게 살아봤으면 해요.
고래)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나요? 여가시간이 있기는 하신지 걱정도 되네요.^^
물론 있죠. 저는 일부러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러지 않으면 숨이 안 쉬어져요. 아주 잠시라도 모든 것에서 벗어나있는 자유로운 나로 있어야 그 다음날을 또 도전할 수 있더라고요.
걷기 좋아해요. 고민이 있으면 우선 나가서 걸어요. 꽃도 보고 그리고 책읽기. 참 좋아해요. 또는 넋 놓고 드라마 영화 보기. 예를 들어 1박2일 꽉차게 워크숍을 하고 왔으면 그 다음엔 머리를 비워내려고 드라마, 영화를 보고 머리가 좀 식어서 다시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책을 읽고, 그러다 고민이 깊어지면 걸으러 나가고.
고래)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계세요?
<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보나> 여노가 돌봄노동에 대한 많은 일을 하는데 어느덧 너무 관리자가 되어있어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로 보리라는 생각으로 읽었어요. 책장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꽂혀있네요. 여성노동의 착취가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합되는지 보여주는 논문이고요. 가방에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저자 앙드레 고르가 노동운동을 하다가 생태운동을 하게 된 사람이라는 점이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고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기도 해서 보고 있어요. 제 독서법은 한 권을 완독하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을 동시에 필요에 따라 읽어요. 
(그는 발제자가 아니라 진행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주) 제목들만 봐도 뭐하나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없네요. ><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대표님의 엄청난 경험들, 확고한 신념들에 기반한 운동. 저도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고 멋지게 살고 싶어서 여성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나 굳은 신념을 가지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건 정말 다름이지 부족이 아니에요. 화주씨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잖아요. 절대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어요. 맥락이 다르니까요. 제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여성운동을 했을지 안했을지도 알 수 없어요. 제가 그 시절 광주에만 있지 않았어도, 그때 아버지 손을 잡고 걷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 거죠. 비교할 수 없는 다름인 거예요. 제 딸이 한 번은 “엄마 나는 운동권은 아니야, 근데 운동에 동조는 해.” 이러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그렇구나.”라고 존중할 따름이지 “너도 운동가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삶은 개별적이고 고유하고 일회적이기 때문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거예요. ‘자기 앞의 생’이잖아요, 지금 젊은 활동가들이 살아온 맥락, 그들이 받은 학교교육, 살아온 경험은 선배 활동가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아요. 선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내 역할에 정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부끄럽지 않은지 물어보세요. 그래서 내가 뭔가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면, 그저 하면 되는 거예요. 자책하지도 말고 작아지지도 말고, 그냥 하면 되요. 그렇게 해서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거죠.
고래)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한 말씀!
하나는 두려움 없이 질문하라는 거예요. 타협을 하더라도 정말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어야 한다는 거죠.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쉬지 않고 스마트폰을 하는 학생의 사례가 나와요. 자기 문제로 충분히 침잠해 들어가지 못하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죠. 제목 그대로 고독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문제와 직면할 내면적 힘을 기를 수가 없어요. 그건 안돼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순간이 어떤 시기인지 알아야 해요. 지금 살고 있는 스물여덟 봄은 단 한 번뿐이에요. 그 다음엔 스물아홉 봄이잖아요. 내가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는지 내다보면서 이 시기에 경험할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뭔가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세요. 이런 깊이 있는 질문을 얼마나 던지고 있나요?
두 번째는, 네 문제를 널리 알려라! 두려움 없이 질문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라면 그 질문이 꼬리를 물고 혼란스러울 때는 내 문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요. 자신의 선택은 다 나름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자기 안에만 있으면 마음의 회로 속에 갇혀 빙빙 돌아요. 이럴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쿨한 척 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아요. 남과 관계를 맺을 때도 여지를 주지 않고요. 여지가 없는 관계는 공허하고 내면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 없게 되요.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살면 훨씬 더 인생을 풍부하고 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후회가 없는 것 같아요. 20대의 고민들, 사회가 던지는 질문을 놓치지 않고 부단히 싸우고 타협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저는 지금의 저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하고 찍어주고 싶어요. 충분히 했으니까요.
화주) 이게 진정으로 쿨한 건데요?
그래요, 인생 뭐 없어~ 사고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생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태어난 자로서의 운명과도 같은 것. 존재를 걸어요. 존재를 걸어야 답이 나와요. 
그는 다양성이란 새로움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내내 추구해온 자유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라는 찬란하지만 무겁고, 황홀하지만 아득한 바다를 왕성한 호기심으로 수영하는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의 손과 지혜가 미치는 곳에 무한한 생명력이, 일하는 여성의 힘찬 함성이 있는 곳에 눈부신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기치아래 1987년 설립, 일하는 여성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노동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