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제1137차 수요집회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주관하였습니다.
직접 준비하고 진행한 실습생들이 쓴 후기입니다.


1137차 수요시위를 다녀와서
조은비
일본 ‘위안부’ 문제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 이후로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위안부’ 할머님들이 별세하셨다는 뉴스를 보면 일본을 욕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실습생으로 활동하면서 수요시위를 주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굉장히 창피했다. ‘위안부’ 문제를 방관하고 있던 내가 이런 시위를 주관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좀 편해졌고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
일본대사관 앞에 갓 도착했을 때는 비가 올 듯 말 듯 날씨가 흐렸다. 빗방울을 맞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곧 이내 해가 중천으로 떴고 체감 온도는 급상승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시간 동안 같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손부채질을 해가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할머님들도 같이 자리를 해주셨다. 할머님들이 고약한 더위에 힘들어하자 옆에 앉은 참가자분이 할머님께 부채질을 해드리기도 했다.
전국 사람들이 모인 만큼 준비한 퍼포먼스와 자유발언도 다양했다. 준비한 노래를 기타연주에 맞춰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직접 준비한 꽃다발을 할머님들께 드리기도 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퍼포먼스는 초등학생 저학년 남자아이가 홀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 아이는 아무런 반주 없이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설익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고였다. 알고 보니 그 노래는 몇 달 뒤 발표될 ‘위안부’ 관련 노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더욱 마음이 짠했다.

수요시위가 끝나고 정리하면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창문은 블라인드가 쳐진 채 있었고 일본대사관 입구에는 의경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의경들 위로는 일장기가 펄럭였다. 그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십년 동안 시위를 해온 할머님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슬픔, 분노를 넘어선 그런 감정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강인한 사람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시위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대상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할머님들의 강인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후대에도 이런 일은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힘든 싸움을 하는 할머님들은 보면 이것이 진정한 여성운동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든 여정을 가시는 할머님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운동가이며 우리의 희망이다.
정대협 ‘위안부’ 수요시위 후기
김소망
7월 30일은 제 1137차 ‘위안부’수요시위가 열린 날이다. 두 번째 참가일이었는데 첫 번째는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훔쳐보기 바빴었다. 1137차 수요시위 당일은 날씨가 흐려졌다 맑았다를 반복했다. 또한, 아침에 구로역에서 제법 크게 화재가 나기도 해서 뒤숭숭한 날이었다. 하지만 일본 대사관 앞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회 도중 갑자기 햇빛이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집회를 진행하며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3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앉아계신 할머니들이었다. 우리도 덥다고 느끼는 여름날 한 시간여 가까이를 뙤약볕아래 앉아 계신 할머니들께서 함께 해주셨다.
제1137차 수요시위를 준비하며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준비해야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머릿속에서 다 엉켜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잘 이끌어주셔서 당황하지 않고 집회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집회에서 사회를 맡게 되었는데 학생회 행사를 여럿 준비하고 진행해 보았음에도 이번 집회처럼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라 재밌었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실수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참석해주신 분들의 몫도 컸다. 혹시 호응을 안 해주실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단상에 올라가보니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호응들을 너무 잘해주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차분하게 집회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상에 올라가서 할머니들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무언가 목 끝까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준비했던 ‘우리가 우산이 되어 할머니들을 감싸드리고 계속 함께 걸어가겠다’라는 뜻을 가진‘노란 나비 우산’퍼포먼스가 할머니들께 잘 전달되기를 바랐다.

수요집회의 참가자들은 일반인도 물론 많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기억에 남은 것은 꼬마 남자아이가 내년에 나올 ‘위안부’관련 영화 OST를 부른 것이었다. 꼬마아이까지 ‘위안부’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것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부터 지금 학생들까지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며 희망적이었다. 최소한 ‘위안부’에 대한 문제가 우리에서 끊기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이었다.
사회적인 문제도 느낄 수 있었는데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의경들이 서 있는 방향이었다. 의경들은 일본대사관 쪽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위현장 쪽을 보고 서 있었다. 그것은 우리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대사관을 보호하겠다는 것처럼 보여서 썩 좋지 않았다. 같은 국민의 역사 문제인데 왜 국가는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감시하는 것인지 무조건 쉬쉬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글을 마치며 더 많은 시민들이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인 ‘위안부’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한다면 할머니들 어깨에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국제 문제로까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할머니들은 물론 시위에 참석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힘이 합쳐진다면 ‘위안부’문제 해결이 촉진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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