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1983년 한국 최초로 폭력피해여성을 위해 놓인 전화기 한 대는 31년이 흐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절실한 동아줄이자 최후의 보루로 역할하고 있다. 23년 전 그 전화기로 시작해 지금까지 한 곳을 지키면서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정춘숙 대표를 만나기 위해 보슬비가 내리는 7월 8일,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전’)를 찾았다.
고래) 독자 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정춘숙이고요, 여기서 22년 1개월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래) 여전에 오신 뒤로는 한 번도 이직하지 않으신 거예요?
네. 한 번도. 1992년 6월 25일에 왔고 1년 정도 쉰 거 빼고는 계속 상근자로 일해 왔어요.
고래) 정말 오래 계셨네요. 여전은 어떤 인연으로 들어오게 되셨어요?
정말 우연하게 오게 됐어요. 소설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의 지인이 여전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분을 통해 여전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사실 그때 저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 가려고 연락을 취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전체 수련회 갔다고..ㅋㅋ 그래서 인연이 따로 있다고 하는가 봐요. 결국 여전에서 면접을 봤고 상담파트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고래) 그 인연이 22년 넘게 이어지고 있군요. 그럼 여성의전화에 오기까지 대표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와 대판 싸운 적이 있어요. 여자는 제사를 못 지낸다는 할머니 말씀에 제가 “여자는 제사 지내면 안 된다고 법에 써있냐”는 명언을 남겼죠. 어릴 때부터 정의, 평등 이런 것에 민감한 사람이었어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의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네가 여자지만 남자와 다른 거 하나도 없다, 남자들이 하는 거 못할 거 하나 없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중고등학교 때도 전횡을 부리는 반장들과 싸우면서 지냈고요. 그런데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저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전공도 국어국문학이었고요. 소설을 쓰려면 세상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운동권 교회였어요. 결국 교회와 학교 모두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대학교 3학년 때는 써클 회장이 됐는데 제가 최초 여성회장이었어요. 그래서 더 고생을 많이 했죠. 구성원 대부분이 남자였고 여자가 회장을 하면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반대도 심했고. 운동권 내에도 차별이 많았죠.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대학시절 운동 아니면 수업 아니면 세미나밖에 하지 않았다는 그는
"자신이 모범이 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졸업하고는 6개월 정도 돈을 모으면서 노동운동 하러 갈 준비를 했어요. 준비라고 하면, 어려운 말을 안 쓰고 쉽게 얘기하기, 면접 준비, 이런 것들이죠. 그렇게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조합도 만들었는데 위장취업한 게 걸려 해고되면서 구속되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폭력을 당했어요. 노동조합 포기하게 하려고 폭력과 회유가 끊이질 않았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폭력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가혹한 시간들이었어요.
광년) 너무 힘들지 않으셨어요? 저 같았으면 못하고 나왔을 것 같아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무서웠고요. 아침마다 출근하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런데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신념이죠. 신념이란 참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안 가고 싶어도 동료를 보면 그 친구 혼자 보낼 수는 없더라고요.
고래) 그렇게 노동운동을 하시다가 여성운동을 하게 되신 계기는요?
여성의전화 오기 직전에 안산 노동교육연구소에서 노동조합 지원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사연으로 그만 두면서 스스로 나름 진보적이고 괜찮은 여성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바뀌었어요. 많이 부족하다는 걸 확인하게 됐죠. 그러면서 제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고 여성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고래) 활동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면요?
앞에 물이 있어서 생각난 건데요. 우리는 자기 물은 자기가 따라 마시는 데 익숙하잖아요. 커피같은 거 누가 타주지 않잖아요. 어느 날은 회원분이 오셨는데 저한테 커피를 타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됐다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사양했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너무나 타주고 싶다는 거예요. 제가 계속 거절을 하니까 나중에는 이 분이 사정을 하는 거예요. 대표님 제가 커피를 타드리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안 되는 일입니까? 이 말을 듣고 제가 굉장히 반성을 했어요. 내가 굉장히 경직됐구나.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이 사람이 커피를 타주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 배려 같은 것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걸 깨달은 기억이 있어요.
고래) 요즘 특별히 하고 계신 고민이나 생각이 궁금합니다.
올해가 대표로 있는 마지막 해에요. 앞으로는 뭘 하고 살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고요. 사실 그런 고민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2월에 허리가 아파서 좀 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을 했지만 복귀한 3월부터는 그런 생각할 틈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고 있죠. 사실 여태까지도 닥치는 대로 살았는데, 인생이 계획한대로 살아지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성운동조직이 20년, 30년씩 유지된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받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 여성운동전체가 인정에 인색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특별히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좀 더 대중적으로 여성운동을, 여성의전화 운동을 할까라는 거예요. 여성의전화는 2000년대부터 이미 어떻게 하면 차세대, 젊은이들과 여성운동을 만들어갈까라는 고민을 늘 했어요, 활동가들도 젊은 활동가들과 같이 하려고 많이 노력했고요. 오래 고민하니까 조금씩 성과가 있는 것 같아요. 올 봄에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데이트 폭력에 관한 20대 여성 대상 강연을 열었는데 선착순 20명으로 기획했다가 60명이 신청하는 바람에 강연규모를 확대했어요. 소식지에 대학생 기자단의 글을 실으면서 대학생들과도 꾸준히 소통하고요. 특히 여성인권영화제에 대학생들이 많이 와요. 자원활동가 100명 정도를 뽑는데 면접이 필요할 정도니까요. 이렇게 앞날을 보고 준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여성의전화가 그 준비를 한 것 같고요,
고래) 노력과 준비가 성과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대단하네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운동도 붐이 있어요. 지역운동 붐이 일어 굉장히 확장되던 시기에 여성의전화도 지역여성운동을 시작했어요. 중요한 건 200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조직에 분란이 있기도 하고 망하기도 흥하기도 했지만 지역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왔죠. 지금은 많이 자리를 잡았어요. 여성운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잖아요. 인식과 의식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프로젝트는 그걸 못 기다리잖아요. 그래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가야 하는 거지요.
고래) 고민하실 시간도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취미생활은 더욱 어려우시겠어요.
취미는 아니지만 제가 2년 전에 몸이 너무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니까 의사가 아쿠아로빅을 하라는 거예요. 제가 의사한테 잘난 척을 좀 했죠, 내가 바쁘고 시간이 없다 이런 얘길 하니까 의사가 하는 말이 지금부터 운동 안하면 몸이 무너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날로 아쿠아로빅을 시작해서 지금도 해요. 가끔 빠지기도 하지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도 건강 꼭 챙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들을 때는 ‘뭐야’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오래 일하고 싶다면, 인간으로서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면 건강해야 되요. 여성의전화는 활동가들에게 체력단력비 2만원을 보조해요. 적지만 ... 그런데도 잘 안 해요. 활동가들은 일하다보면 밤도 새고 아무데서나 자게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집에서 좋은 음식들 있는 대로 다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거 한 번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작년에는 아침마다 체조를 시켜보려고 했어요. 3분만 시간을 내라고 제가 애걸복걸해도 바쁘다고 안하더라고요! 결국 체조는 그만뒀지만 건강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리고 또 후배들에 해주고 싶은 얘기는, 공부하라는 거예요. 저는 나의 한계가 조직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제가 오래 일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어요. 오래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조직에 굉장히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려고 했어요. 후배들에게도 압력을 넣어요. 돈도 안대주면서 대학원가라고 하고.ㅋㅋ 그래서 재작년부터 여성의전화는 활동가 교육을 하고 있어요. 최소 2주에 한 번, 좀 일찍 나와서 두 시간 정도 책도 보고 강의도 듣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신경을 무척 많이 썼어요. 일찍 오게 하는 것부터 맛있는 간식도 챙기는 것까지. 토스트에 잼도 종류별로 준비하고 군고구마, 삶은 달걀, 과일 할 거 없이. 안 오면 난리 나는 거예요 ㅋㅋ 거의 강요를 했죠. 활동가들이 그러더라고요. 강제역량강화라고. (일동 웃음)
광년) 이제 자리 잡은 건가요?
많이 자리 잡았어요. 활동가들도 좋아하고요. 그만큼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발전해야 되요. 활동가가 발전을 안 하면 조직이 발전을 못해요. 세미나에 가는 것도 참 좋아요. 세미나에 가면 혼자 책보고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공부할 수 있거든요. 적어도 관심 있는 분야는 꼭 갔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사람이 일을 하는 조직이잖아요.
그리고 정보에 민감해야 되요. 저는 전체메일로 오는 내용들을 굉장히 민감하게 봐요. 다른 단체들에서 무슨 일 있는지 다 확인해요.
고래) 이야기를 쭉 듣다보니 제가 만나본 분들 중에는 가장 원칙을 중요시하고 또 그 원칙을 지켜오면서 살아오신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맞다고 생각했어요. 정의에 대한 신념, 역사는 변화·발전한다는 믿음.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뭐 하나 시작하면 끝은 보고 마는 성격도 한 몫 했고요. 또 함께 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 주변의 다양한 선배들과 동료로부터 골고루 배우게 된 거 같아요.

그의 눈에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기운이 있다.
그리고 그 긴장은 사람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애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도 꾸준히 지속하는 것도 평소 건강을 챙기는 것도 뱉어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도 20년, 30년씩 이어가기란 더더욱. 그가 자신의 길, 그리고 여성의전화에 대해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또한 다시 10년 후, 20년 후에도 ‘여전’히 가고 있을 그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의 복지증진과 나아가 가정, 직장, 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룩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 땅의 평화와 민주사회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