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가는 공간운동 (I)
이야기 하나. Yesterday - 여성평화의집
"공간이란 누군가에 의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여성미래센터의 시작인 '여성평화의집'은 1990년 9월 6일 (가칭) '사회변혁을 위한 여성단체들의 모임'을 조직하여 여성단체들의 사무실 마련을 위한 '여성평화의집' 건립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같은 해 10월 독일 개신교개발원조국(EZE)에 재정지원요청을 하였는데 종교세로 운영되는 보수단체인 EZE는 이 기금을 의미있게 쓰고자 제3세계인 한국의 어느 곳에 지원을 할 때 인권과 민주주의가 더 실현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신뢰 속에 1991년 지원을 약속 받아 '여성평화의집' 건립이 추진되었다.
처음엔 건축을 계획하였으나 지원의 규모가 작아지고 여성단체들이 부담할 수 있는 재정도 적어 신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3년 장충동(장충동1가 38-84)에 4층 건물을 구입하여 지하는 교육장으로 지상은 사무공간으로 설계하고 '일꾼 두레'가 보수공사를 하여 1993년 9월17일 신영복 선생님으로부터 '여성평화의집' 제호를 받아 현판식과 집들이를 했다. 1993년 9월 17일 장충동 여성평화의집 현판식과 집들이 1993년 9월 17일 장충동 여성평화의집 현판식과 집들이 든든한 그리운 얼굴들이 보인다. 여성운동단체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을 구입하여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진 공간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제 모습을 잃어 가면서 성장한 여성운동을 다 담아 내기엔 부족한 공간이 되었다. 이에 2000년 초반에 '여성평화의집'을 매각하기로 의견을 모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으나 바로 성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 당시의 부동산 시세와 각 단체 재정의 어려움으로 계속 추진되지 못한 것이다. 다시금 공간리모델링을 해서 새롭게 만들어 보려고 하였으나 공간을 더 확장할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1층이 지상인 동시에 지하로 계층화 된 지형인지라 건축법상 신축이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2004년 다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공간이전이 추진되었다. 여성미래센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다. 2006년 6월 28일 여성미래센터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 2005년 말 '여성평화의집'을 매입하겠다는 곳이 있어 '여성미래센터 건립추진위원회(2006년)'가 구성되었고 미래센터 건립추진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가진 것이 적은 여성들은 돈이라는 커다란 장애물과 언론의 왜곡 앞에서 한 걸음 한걸음 뒷걸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간은 부족했고 단체는 성장했다. 결국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독자적 이전이 어려운 작은 단체들과 '서대문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다가 2010년 6월 17일 '여성미래센터'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계획보다 서대문에서의 생활은 길어졌다. 고생도, 즐거운 추억도 많았던 서대문 생활을 마무리하며 자료정리와 이사준비 중 / 2010년 초 '여성미래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마땅한 공간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을 다녔다.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 '유한킴벌리'의 씨드머니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모금사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땀 흘린 발품과 여러 도움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에 '여성미래센터'는 이 공간을 통해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매순간 노력하고 있다. 2010년 6월 17일 여성미래센터 개관식 현재 여성미래센터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14개의 여성인권평화환경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공간은 누군가에 의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선배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미래센터'를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힘이 후배들에게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책임지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여성미래센터 해피로그 바로 가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간만들기" 글 : 김은희(여성미래센터)
이렇게 '여성평화의집'은 EZE의 지원과 9개 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기독여민회, 한국보육교사회(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기독살림여성회(아시아여성신학연구원), 여성교회-의 전세금으로 개원하게 되었다. 초기엔 사무국을 두어 운영하다가 나중엔 입주단체에서 임원과 총무(사무국)를 선출하여 공간운동을 만들어 갔다.
빠른 소통과 연대가 이 곳에서 이루어졌으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법과 제도가 이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이렇게 여성운동의 전성기를 꽃피운 공간이 바로 '여성평화의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