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홈리스 생활을 정리하고 누나네 집에서 얹혀 산지 약 두 달 정도가 되어 간다. 누나네 집으로 삶의 거점을 옮긴 후,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두 명의 조카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큰 아이가 여자이고 둘째가 남자인 이 녀석들은 조만간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이 될 예정이다. 물론 “요즘 애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라며 거의 자포자기의 경지에 이르신 어머니의 말씀처럼, 상당한 내공을 가진 말썽꾸러기들이다.
특히 둘째인 "태루"는 어렸을 때부터 거의 “웬만해서 막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녀석이다. 녀석은 이미 7살 때 “어른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고달프고,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힘들어.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기가 좋아!”라며 자본주의의 과다노동과 노동거부 사상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친구 5명을 조직하여 학교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함으로써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탈학교” 운동을 몸소 실천하기도 하였다. 물론 녀석에 대한 에피소드는 책을 한 권 출판해서 베스트셀러를 노려 볼만할 정도로 무궁 무진하다. 그런 태루가 최근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삼촌, 나 고민이 있어”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뭔데?”
“군대는 꼭 가야하나?”
“(당황한 표정으로) 뭐라고?”
“걱정이야. 나 군대 가기 싫은데....”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군대를 갈 녀석이 갑자기 군대 걱정이라니... 거기다 병역거부 선언이라니... 하지만 태루의 사연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전쟁과 관련된 군대에는 반드시 가야한다고 말한다... 특히 선생님 이야기처럼 북한 아이들이 힘이 세고 무섭다면 나는 더욱 더 군대가 가기가 두렵다.”
잠시 어이없는 미소와 함께 나와 태루는 결국 “폭력은 나쁜 것이고, 전쟁과 군대는 언젠가 없어져야 할 곳이며, 군대에 가기 싫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군대와 전쟁이 없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도출하였다. 물론 내 생각을 녀석의 언어로 전환하느라 이미 내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태루와의 군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녀석의 이야기들이 자꾸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똘이 장군” 수준(빨갱이는 무시무시하고 나쁜 존재라는 식)의 내용이나 가르치고 있고, 그러한 어른들의 이중성 속에서 10년 후에나 군대문제를 고민해야 할 조카가 이미 병역거부를 선언한 현실이 너무나 역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최근 참가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어린 시설 세상이 가르쳐 준대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총과 폭력을 거부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야하는 이 현실을 태루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미 채 10년 정도의 인생 경험만으로도 “어른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며 현실 사회의 이중성과 모순을 깨달아 버린 태루에게 어떻게 어른의 일원으로서 변명을 해야 하나.
나는 결심한다. 더 이상 현실을 어른들의 알리바이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군대는 필요하지만 내 자식만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는 반대하지만 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병역거부 운동은 중요하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함께 할 수 없다”는 따위의 어른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중성과 어리석음이 결국 우리의 일상 전체에 걸쳐 군사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허락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른들의 비겁함은 다시 아이들에게 자신의 비겁함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합리화된다. 비겁함을 전수시키는 과정 그리고 악순환 !!
10년 후. 태루가 살인기술을 조직적으로 전수시켜주는, 남근중심의 가부장제를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집단주의의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파괴하는 군대 대신,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이원재 /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정책실장
특히 둘째인 "태루"는 어렸을 때부터 거의 “웬만해서 막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녀석이다. 녀석은 이미 7살 때 “어른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고달프고,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힘들어.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기가 좋아!”라며 자본주의의 과다노동과 노동거부 사상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친구 5명을 조직하여 학교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함으로써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탈학교” 운동을 몸소 실천하기도 하였다. 물론 녀석에 대한 에피소드는 책을 한 권 출판해서 베스트셀러를 노려 볼만할 정도로 무궁 무진하다. 그런 태루가 최근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삼촌, 나 고민이 있어”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뭔데?”
“군대는 꼭 가야하나?”
“(당황한 표정으로) 뭐라고?”
“걱정이야. 나 군대 가기 싫은데....”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군대를 갈 녀석이 갑자기 군대 걱정이라니... 거기다 병역거부 선언이라니... 하지만 태루의 사연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전쟁과 관련된 군대에는 반드시 가야한다고 말한다... 특히 선생님 이야기처럼 북한 아이들이 힘이 세고 무섭다면 나는 더욱 더 군대가 가기가 두렵다.”
잠시 어이없는 미소와 함께 나와 태루는 결국 “폭력은 나쁜 것이고, 전쟁과 군대는 언젠가 없어져야 할 곳이며, 군대에 가기 싫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군대와 전쟁이 없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도출하였다. 물론 내 생각을 녀석의 언어로 전환하느라 이미 내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태루와의 군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녀석의 이야기들이 자꾸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똘이 장군” 수준(빨갱이는 무시무시하고 나쁜 존재라는 식)의 내용이나 가르치고 있고, 그러한 어른들의 이중성 속에서 10년 후에나 군대문제를 고민해야 할 조카가 이미 병역거부를 선언한 현실이 너무나 역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최근 참가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어린 시설 세상이 가르쳐 준대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총과 폭력을 거부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야하는 이 현실을 태루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미 채 10년 정도의 인생 경험만으로도 “어른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며 현실 사회의 이중성과 모순을 깨달아 버린 태루에게 어떻게 어른의 일원으로서 변명을 해야 하나.
나는 결심한다. 더 이상 현실을 어른들의 알리바이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군대는 필요하지만 내 자식만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는 반대하지만 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병역거부 운동은 중요하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함께 할 수 없다”는 따위의 어른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중성과 어리석음이 결국 우리의 일상 전체에 걸쳐 군사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허락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른들의 비겁함은 다시 아이들에게 자신의 비겁함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합리화된다. 비겁함을 전수시키는 과정 그리고 악순환 !!
10년 후. 태루가 살인기술을 조직적으로 전수시켜주는, 남근중심의 가부장제를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집단주의의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파괴하는 군대 대신,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이원재 /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