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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기를 너무 살려주는 것이 아닌가?..... 국가가 나서서 여성우대를 하다니'
수도권에 사는 어느 남성 시민이 나에게 전화해온 내용이다.
특정 이해관계가 적은 일로 관공서에 전화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아마 그분은 나름대로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전화한 것일 게고 그때 마침 내 책상의 전화벨이 울린 것이다.
보통 이런 류의 전화는 과거에는 한풀이를 겸해 쌍욕을 퍼 붇는게 예의(?)였으나 요즘 전화태도는 진지하다. 토론회의 발표자처럼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높은 톤과 낮은 톤을 적절히 구사하며 주장을 편다. 또 과거 같으면 일방통행적으로 쏴붙이거나 전화받는 측에서 혹시 한마디라도 반박하면 그것을 빌미로 톤이 더 높아지는데 반해, 요즘은 이쪽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할말을 다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분만이 아니라 많은 남성분들은 내가 여성정책부서에 있다고 말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참았던 말을 쏟아 낸다. 다분히 감정적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빈정되기도 하여 속이 뒤틀린다.
'어제의 통계가 오늘 다르다'할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여성분야의 발전은 괄목하다. 최근의 일을 보면,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는 여성부가 신설되었고, 지루한 논란 끝에 출산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늘렸고, 육아휴직 중에 월 20만원의 임금이 지급되며, 입사동기면서 능력과 자질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여성을 승진에서 배제시키는 경우는 간접차별에 해당되어 제재를 받게 된다.
또 군가산점 폐지여파로 여성들의 공직진출이 늘어나고, 지방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을 늘려 여자 몫으로 할당하자는 입법 움직임도 있다.
여성계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주장이고, 결과반영이 더디거나 수정된 점에 대해 안타까워 할 것이나 일부 남성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온통 '여자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흐름을 잡고 있는 여권운동의 큰 기준과 트랜드는 무엇일까?
그 핵심은 역시 '성에 있어서의 글로벌 스탠더드' 때문일 것이다.
각 나라의 전통적인 다양한 문화는 기름과 물처럼 분리되려는 원심력을 보이는 반면, 법과 관련된 제도는 강한 구심력에 의해 통일화되거나 획일화되어 보편성을 추구하려 한다는 점이다.
몇년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으로 신토불이만 주장하던 우리 농산물은 경쟁력을 잃은 반면, 다른 산업분야는 득을 보았고, IMF 환난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내정간섭을 받아 기사회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와 일맥 상통할 것이다.
성, 특히 여성문제도 당해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거미줄처럼 연계되어 있어 한 국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쳐지거나 따르지 않는 경우 국제적인 비난과 권고가 쏟아지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어쩌면 남성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젠더혁명(Gender, 사회적 성)도 세계적인 원칙을 따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말한다.
국제간에는 많은 협약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 주범(?) 이라면 1979년 12월 UN총회에서 채택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으로 이 분야의 바이블이다.
우리나라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을 1984년 12월에 비준하여 국내 여타법률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이 협약은 유엔 설립이래 채택된 남녀평등과 여성차별에 관한 기본원칙을 집대성 규정하고 있으며 어떤 국제문서보다도 구체적이고 모든 영역과 부문을 포괄하여 '여성의 권리장전'이라고도 불린다.
정기적으로 각국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남녀평등관련법과 정책을 보편화·통일화시키는 첨병역할을 하는 셈이다.
몇 년전 우리나라는 IMF를 겪었지만 성장의 꿈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소득 3만불의 꿈이다. 누구든 내 호주머니로 지금보다 3배수준의 소득이 들어온다고 상상한다면 가슴이 팔딱팔딱 뛸 노릇이다.
한편으로는 그 정도의 소득을 보유한 선진국을 보면 대부분 맞벌이 형태로 소득을 유지하고 있어 이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와 함께 국가적인 선택도 좁을 수밖에 없고 출산, 보육, 모성, 노인모시기와 같은 가정친화적인 사회시스템이 맞벌이 기준으로 바뀌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한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는 남성과 여성이 한정된 몫을 나누어 뺏어 가지는 ZERO-SUM 게임보다는 모두에게 이득(WIN-WIN)이 되도록 '몫의 확장'을 통해 相生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