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도 계절을 탄다

by 여성연합 posted Nov 0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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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겨울의 전령인 양 진료실의 창문을 두드리던 날, 지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백화점 판매 사원 P양. 어느날 갑자기 거울 속에 드러난 자신의 늘어진 피부를 보고 놀라서 내게 달려왔다고 했다.

맥을 보니 기가 하나도 없었고, 몸 속 영양 성분인 진액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였다. 2년간 직장인과 야간 대학생 노릇을 병행하다보니 힘겨운 생활로 인하여 그녀의 얼굴엔 피로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몸의 모든 기능이 저하됨은 물론 피부 상태 또한 몹시 건조했고, 나이에 맞지 않게 벌써 눈가에 잔주름이 잡혀있었다.

“백화점에서 일하면 춥고 더운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살겠네요?”

그녀에게 일단 몸의 기운을 살리고 진액을 보강하는 한약 처방과 함께 한방에스테틱의 노화방지프로그램을 처방하면서, 그녀의 생활환경 점검차 물었다.

“예. 난방이 워낙 잘 되니까 하루 종일 따뜻하죠. 서서 일하는 건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또 여름에는 냉방이 아주 잘 되고요.”

그녀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그녀가 일하는 환경이야말로 그녀의 지나치게 건조한 피부를 낳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 피부가 안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계절을 무시한 생활 환경이다. 여름에는 적당히 흘리는 땀만큼 피부에 좋은 보약이 없고, 겨울에는 적당히 추위를 견뎌내는 것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 그런데 이런 보약들을 무시하고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은 너무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 바로 문제다. 지나친 냉, 난방은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고 모공까지 커지게 한다. 이런 생활환경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결과적으로는 축 처진 피부, 나이보다 더 노화된 피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여름에 더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겨울엔 너무 춥게 지내다 동상 걸릴 위험이 있고요. 냉방과 난방이 왜 피부에 나쁜 건가요?”

P양은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나무를 가지고 한 번 생각해봐요. 일년 내내 더운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몸집이 큰 반면에 나이테 간격이 큰 편이에요. 나이테 간격이 큰 만큼 실하지 못하다는 얘기죠. 반면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자란 나무들은 나이테 간격이 좁아요. 그만큼 한 해 한 해 자라나는 밀도가 치밀하고 견고하다는 얘기죠. 이런 나무로 가구를 만들면 단단하고 오래 간다는 사실, 아세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계절의 기운을 다 몸으로 체험하면서 살기 때문에 야무지고 튼튼한 편이다. 들판에서 자란 나무가 비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고 단단하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냉방과 난방에 둘러싸여 기후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런 생활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당장 피부부터 약해진다. 생각해보라. 우리 피부의 땀구멍은 더울 때는 열어주고 추울 때는 조여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덥고 추운 계절을 자연스럽게 이겨냄으로써 이런 기능이 단련되는 것인데, 그 기회를 우리가 박탈해버리는 셈 아닌가?

비단 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추위나 더위를 심하게 타고 감기에도 잘 걸린다. 바로 기후 체험을 통한 단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후 변화를 자연스럽게 겪으며 살아왔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치열하게 뜨거운 여름, 수확의 계절 가을, 혹한의 겨울.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생(生: 태어남), 장(長: 자라남), 화(化: 변화함), 수(收: 거두어드림), 장(藏: 저장함, 혹은 죽음)’의 순환 원리가 바로 계절 속에 다 녹아들어있다. 되도록 계절의 기운에 맞게 생활하되 현대를 사는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계절이 여름과 겨울이다. 봄, 가을에는 대기가 건조하니 만큼 보습에 적당히 신경쓰면 되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지나친 냉방, 난방을 멀리해야 한다.

따뜻한 사무실이나 집 안에만 있다보면 피부의 모공 수축 기능이 떨어진다. 모공이 넓어진다는 것은 피부가 노화 되었다는 증거. 적당히 추운 날씨를 즐겨라. 단, 너무 오랜 시간 추운 곳에 있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피부가 더 나빠질 수 있으니 유의해야한다.

그녀의 건조하고 늘어진 피부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건조한 곳에서 일하니까 수시로 물을 마시면 좋아요. 몸 안에 수분 공급을 해주면 피부 건조에도 당연히 좋답니다. 그리고 화장할 때 수분 크림을 많이 발라주고 퇴근 후에는 보습 크림을 듬뿍 바르고 자는 게 좋아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잠을 충분히 자도록 하세요. 피부 건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잠이 바로 보약이랍니다.”

이제 피부도 계절에 맞춰 더울 땐 덥게, 추울 땐 춥게 살자. 우리 피부 스스로 단련되어 쉽게 지치거나 늘어지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하는 비법.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맞추는 것이 피부의 노화를 방지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