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구요, 자기네 둘이 사는 게 소원이래요. 기가 막히죠? 참 당돌한 년이로구나 했어요. 나이가 서른 셋밖에 안 된 게 저보다 스무살 많은 나한테 그게 할 소리예요?"
남편이 숨겨놓은 여자와 전화통화를 한 직후라며 그이는 목소리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에게 물어보셨습니까? 그 여자와의 관계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볼 게 뭐 있어요? 남자들이란 다 애들이예요. 저질러 놓고 어떻게 감당을 못하는 거지요. 이 남자가 정에 약해요. 그러니까 기집애들이 다 저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저렇게 매달린다니까요."
"그럼 저희 상담소에서 무엇을 도와주길 바라시는지요?"
"이런 기집애들 혼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요새 이런 발칙한 애들 많죠? 돈을 주는 게 제일 쉬울 것 같은데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아니, 사실은 돈도 아까워요. 가정있는 남자한테 꼬리친 년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아야지요, 안 그래요? 그런 게 여성운동 아닌가요?"
마리아와 마돈나, 덕녀와 요녀, 현모양처와 애첩,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 둘 사이를 넘나든다.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나뉜 여자들은 서로서로 미워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세상은 말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그러나 여기서 남자를 빼보자. 그러면 여자들이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자 때문에 여자를 미워하도록 배워왔다. 외도하는 남편대신 그 상대가 되는 여자를 무참히 깔아뭉개도록, 남자 형제와 나를 차별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평생 미워하도록, 내 아들 세대가 권리를 무한대로 누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젊은 여성세대를 싸잡아서 '싸가지 없는 요즘 것들'이라고 비난하도록, 역사에서,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주변현실에서 배워왔다.
남자 때문에 여자를 미워하지 말자. 남자들이 여자를 두 부류로 나눠 놓은 것은 자신들의 필요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시부모봉양과 자녀양육 살림관리 등을 무보수로 하는 현모양처는 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존재이고, 성적인 매력이 있고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애첩은 정서적 만족을 제공한다.
이 둘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남자를 더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남자의 만족도는 이에 비례한다. 대치 상황이 팽팽할수록, 서로가 서로를 미워할수록 남자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분할 지배정책이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어하라고 했던가. 열등감을 가진 존재들에게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네가 쟤보다 조금 낫다'하면 쟤를 우습게 보면서 그 말을 해 준 사람에게 충성을 하게 만들어내는 술수인 것이다. 이런 술책에 휘말려 단결하지 못하면 약자들은 영원한 약자로 남는 수밖에 없다.
상대(부류)의 여자를 미워해서 여성인 나에게 생기는 득은 무엇인가. 없다. 득을 보는 것은 남자이다. 여자들이 상대를 미워하여 단결하지 못하는 동안은 양다리 걸치기가 전혀 위협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여자를 미워하는 것은 선천적일까. 아니다.
제주도 여자들이 나누었다는 대화 한토막.
"오늘밤 아방(애들 아버지, 남편) 보내주까"
"왜요".
"나는 오늘 달거리 햄서"
남자가 여자보다 적은 제주도에서는 남자를 공유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다에서 물질할 때 만나는 직장동료이기도 했다.
여자들이 경제력을 가지고 독립해 있다면 남자를 공유해도 여자들끼리 미워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왕비와 후궁, 부잣집 마나님과 기생첩, 한 남자가 가진 부와 명예와 지위를 나눠 받아야는 '결투'에서 이들은 경쟁자이다. 여성이 어떤 권력과 재산과 지위를 스스로 가질 수 없고, 다만 남자를 통해서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뺏느냐 뺏기느냐의 제로섬 게임에서 여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적으로 구조화된다.
심지어 남자들은 권력의 제로섬 게임에 여자들을 리모컨으로 이용한다. 당쟁이 한창일 때 정파마다 왕에게 '여자'를 상납하고 그 출생을 '왕세자'로 삼기 위해 혈투를 벌였던 것을 보라. 여기서도 남자들은 나서지 않는다. 여자들이 제 자식 왕으로 삼기 위해 무당을 불러 상대여성과 그 소생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도록 일을 꾸민다. 욕은 앞에 나선 여자가 먹는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듀엣은 이런 구조의 가장 고전적인 이름일 뿐이다. 배후의 권력구조는 은폐되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통념만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고 나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비정치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위장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성이여, 그대가 정녕 여성이라면 여성을 미워하지 말자.
그 전에 그 배후에 있는 구조를 꿰뚫어보라. 꼭두각시를 매고 있는 실과 그 실을 조정하고 있는 커튼 위의 손을 꿰뚫어보라.
그대가 여성을 미워하기를 그치는 순간 그대는 그 실과 손을 비로소 볼 수 있으리.
남편이 숨겨놓은 여자와 전화통화를 한 직후라며 그이는 목소리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에게 물어보셨습니까? 그 여자와의 관계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볼 게 뭐 있어요? 남자들이란 다 애들이예요. 저질러 놓고 어떻게 감당을 못하는 거지요. 이 남자가 정에 약해요. 그러니까 기집애들이 다 저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저렇게 매달린다니까요."
"그럼 저희 상담소에서 무엇을 도와주길 바라시는지요?"
"이런 기집애들 혼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요새 이런 발칙한 애들 많죠? 돈을 주는 게 제일 쉬울 것 같은데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아니, 사실은 돈도 아까워요. 가정있는 남자한테 꼬리친 년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아야지요, 안 그래요? 그런 게 여성운동 아닌가요?"
마리아와 마돈나, 덕녀와 요녀, 현모양처와 애첩,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 둘 사이를 넘나든다.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나뉜 여자들은 서로서로 미워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세상은 말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그러나 여기서 남자를 빼보자. 그러면 여자들이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자 때문에 여자를 미워하도록 배워왔다. 외도하는 남편대신 그 상대가 되는 여자를 무참히 깔아뭉개도록, 남자 형제와 나를 차별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평생 미워하도록, 내 아들 세대가 권리를 무한대로 누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젊은 여성세대를 싸잡아서 '싸가지 없는 요즘 것들'이라고 비난하도록, 역사에서,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주변현실에서 배워왔다.
남자 때문에 여자를 미워하지 말자. 남자들이 여자를 두 부류로 나눠 놓은 것은 자신들의 필요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시부모봉양과 자녀양육 살림관리 등을 무보수로 하는 현모양처는 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존재이고, 성적인 매력이 있고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애첩은 정서적 만족을 제공한다.
이 둘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남자를 더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남자의 만족도는 이에 비례한다. 대치 상황이 팽팽할수록, 서로가 서로를 미워할수록 남자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분할 지배정책이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어하라고 했던가. 열등감을 가진 존재들에게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네가 쟤보다 조금 낫다'하면 쟤를 우습게 보면서 그 말을 해 준 사람에게 충성을 하게 만들어내는 술수인 것이다. 이런 술책에 휘말려 단결하지 못하면 약자들은 영원한 약자로 남는 수밖에 없다.
상대(부류)의 여자를 미워해서 여성인 나에게 생기는 득은 무엇인가. 없다. 득을 보는 것은 남자이다. 여자들이 상대를 미워하여 단결하지 못하는 동안은 양다리 걸치기가 전혀 위협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여자를 미워하는 것은 선천적일까. 아니다.
제주도 여자들이 나누었다는 대화 한토막.
"오늘밤 아방(애들 아버지, 남편) 보내주까"
"왜요".
"나는 오늘 달거리 햄서"
남자가 여자보다 적은 제주도에서는 남자를 공유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다에서 물질할 때 만나는 직장동료이기도 했다.
여자들이 경제력을 가지고 독립해 있다면 남자를 공유해도 여자들끼리 미워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왕비와 후궁, 부잣집 마나님과 기생첩, 한 남자가 가진 부와 명예와 지위를 나눠 받아야는 '결투'에서 이들은 경쟁자이다. 여성이 어떤 권력과 재산과 지위를 스스로 가질 수 없고, 다만 남자를 통해서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뺏느냐 뺏기느냐의 제로섬 게임에서 여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적으로 구조화된다.
심지어 남자들은 권력의 제로섬 게임에 여자들을 리모컨으로 이용한다. 당쟁이 한창일 때 정파마다 왕에게 '여자'를 상납하고 그 출생을 '왕세자'로 삼기 위해 혈투를 벌였던 것을 보라. 여기서도 남자들은 나서지 않는다. 여자들이 제 자식 왕으로 삼기 위해 무당을 불러 상대여성과 그 소생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도록 일을 꾸민다. 욕은 앞에 나선 여자가 먹는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듀엣은 이런 구조의 가장 고전적인 이름일 뿐이다. 배후의 권력구조는 은폐되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통념만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고 나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비정치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위장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성이여, 그대가 정녕 여성이라면 여성을 미워하지 말자.
그 전에 그 배후에 있는 구조를 꿰뚫어보라. 꼭두각시를 매고 있는 실과 그 실을 조정하고 있는 커튼 위의 손을 꿰뚫어보라.
그대가 여성을 미워하기를 그치는 순간 그대는 그 실과 손을 비로소 볼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