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눈부신 날이었다. 지겹게도 잦은 비에 야속했던 여름이 햇살 한 방에 사라져 버린 듯한 오후였다. 평택에서 광화문까지는 반항기 많은 중1 소녀와 엄마가 함께 나들이 하기에 짧은 거리는 결코 아니었다. 엄마와 딸은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연예인을 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게 한 엄마를 따라 나선 딸아이는 가끔 옆자리에서 속삭였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과 대화중이었다. 본인이 무얼 검색했는지 가끔 한 번씩 확인시켜주는 질문정도였다.

“엄마, 김조광수 감독은 성이 김조에요? 남궁이나 선우처럼 두 글자 성인가요?”

'친구사이',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 등 김조광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작품부터 출연한 배우들까지.. 몇 번 귓속말로 물어보다가 엄마보다 훨씬 스마트한 폰과 네*버 검색창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딸아이를 보며 잠시 몇 년전 뉴욕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뉴욕의 추억, 내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게 된 값진 경험의 기회

뉴욕에서의 4년은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가난한 채 의욕만으로 떠난 유학이었지만 문화를 즐기는데 있어서만큼은 부지런함을 무기로 최상으로 즐기고 싶었던 나는 주말만 되면 1.5달러짜리 식빵에다 쨈을 발라 가방에 넣고 아이들과 함께 공원의 무료 퍼포먼스나 퍼레이드, 박물관 무료 관람 정보 등을 빠지지 않고 챙겨 보곤 했다.

지하철에서 문득 떠오른 장면은 뉴욕의 게이 퍼레이드였다. 뉴욕살이 첫 해에 본 게이퍼레이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디에 이렇게 많은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살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분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졌다. 상의를 탈의 하고 원색의 칠로 웃옷을 대신한 사람이 파트너와 함께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색깔로 머리카락을 물들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로 형형색색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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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게이퍼레이드 한 장면 / 사진출처 구글검색

늦깍이 대학원생으로 뉴욕대에 다니며 몇 명의 클레스 메이트들이 자연스럽게 게이임을 밝히며 호모포비아(동성혐오현상)로 인해 자신들이 겪었던 아픈 경험들을 이야기 하던 기억도 났다. 한국에서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은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직업적 특성상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한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그 친구는 "한국에서는 게이들은 자신이 아니기를 강요받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실비아(가명)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내 중심적인 사고 안에 갇혀 다른 소수의 사람이 입게 될 상처는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었다.

뉴욕으로 가기 전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했던지라 결혼 적령기의 선남 선녀를 보면 오지랖 넓게도 결혼은 했냐, 애인은 있냐, 소개팅 시켜줄까 등의 래퍼토리를 전개하던 못말리는 중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센트럴 파크에서 우연히 수업을 같이 듣는 실비아를 만났다. 실비아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만학도였고 브라질에서 온 학생이었다.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하고 똑똑한 친구였다.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고 있던 아이들과 함께 햇살을 즐기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실비아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자기 돗자리에 있던 친구를 불러 와서 소개도 시켜 주었다. 실비아는 그녀를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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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에서 실비아를 만나던 그 눈부신 날에

실비아는 첫 레즈비언 친구였다. 이후로 뉴욕대에서 알게 된 게이친구들이 많아졌지만 실비아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실비아는 같은 브라질 출신 여친이랑 함께 살고 있지만 브라질에서는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오픈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뉴욕이 좋은 이유는 뉴욕에서는 자신의 사랑과 성적 지향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2년 전에 친구의 추천으로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를 보았다. 동성애 관련된 영화를 여러 편 봤지만 이 영화에서 들은 한 마디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 교훈이 되었다. “ 집에서나 교회에서 아멘이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말은 메리 그리피스(Mary Griffith)라는 실존인물이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아들 바비가 동성애임을 알고도 이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동성애를 병인양 고치려 하고 아들을 억압하다가 슬프게도 결국 아들이 철길로 뛰어들어 자살한 스토리의 당사자 엄마였다.

우리는 한 맺힌 메리 그리피스의 후회스런 독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 뱉는 “남자친구 있니?” “예쁜 여자 소개시켜 줄까?” 등등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성적인 지향을 숨겨야만 함께 웃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순간 지옥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아 존중감이 상승하는 시기인 사춘기 때 당연히 이성애자일 거라는 전제하에 던지는 이러한 류의 질문은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겐 '난, 뭐냐, 이런 세상에서 난 별종이고 괴물인가?'라는 소외감이 들 수도 있고 더욱 더 벽장 속에서 웅크리고 나오지 못하게 억압하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만난 참으로 눈부신 하루,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식 소식은 ‘어떤 동성애자에게 지옥 같다던 현장’인 대한민국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동성혐오가 인권침해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애만이 세상의 질서가 아님을 알려내는 계기가 더욱 자주 필요하다.

올해부터는 퀴어 퍼레이드도 열렸다.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일단 퍼레이드나 공연 문화예술의 방식으로 대중들이 자주 접촉하여 동성애를 하나의 존재하는 문화로서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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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조광수-김승환의 결혼, 참으로 눈부신 날이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은 대중들과 함께 하는 예술이었다. 웃음과 해학이 있고 사랑과 감동이 있는 예식이었다. 그곳에 모인 수백 명의 하객들은 진심으로 커플의 앞날을 축복했고 우리나라의 소수자 인권 현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들의 결혼을 반대한다며 무대 위로 뛰어들어 오물을 뿌린 60대 남자 두 명을 제외하면 결혼식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둘 다 턱시도를 입고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이 바꾼 노래가사는 이 사회에 주는 메시지였다. 마지막으로 둘 다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를 차려입고 등장해 환호를 받았다. 남남 결혼식이라 결혼식장에 웨딩드레스 입은 가인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거의 포기하고 왔을 하객들에게 반전의 감동을 주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두 남자는 하루하루 서로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열 가지 정도의 약속을 했다. 사실 이러한 약속이 무대에서 이루어지니 퍼포먼스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 들어보니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켜가고 싶은 커플의 마음이 모두에게 공명되었다.

나는 본인의 명성을 대의를 위해 이렇게 멋지게 소비할 수 있는 김조광수 김승환씨의 배짱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냈다. 축의금은 생계형으로 보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앞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결혼하고 싶어하는 동성애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그 축의금을 모아서 ‘무지개 인권센터’ 건립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이런 행보는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하기 보다 더 쉬워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랜드마크가 되어 줄 것이고 소수자 인권운동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눈부신 하루였다.


글 : 강수정(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