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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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여배우>(1989)란 영화가 있었다. 권력남과 여배우 관계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왕이면 정치권력의 성상납 관행을 밀도 있게 파헤쳤으면 사회비판영화가 될 것을 당시 유행하던 에로물로 흘러간 것이 아쉬운 영화이다.

 

2천년대 연예인들이, 그것도 내노라하는 스타들이 연이어 자살한다. 이은주, 유니, 정다빈, 최진실, 리스트까지 동반한 신인 장자연이 자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 원인이야 정확히 모르지만 여배우가 살아가기 힘든 사회현실은 갈수록 명확해진다. 심지어 미국의 유력 시사지는 최진실의 자살을 두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싱글맘이 살아가기 힘든 성차별 국가란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여배우가 권력남에게 성상납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삐뚤어진 관계이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현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넓게 보면 가부장제가 창궐한 이래 권력남이 수많은 여성을 편력하는 영웅호색 문화가 도도하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여성이 신체자본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야심도 거기 결합한다. 이른바 권력과 성의 함수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행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협박과 폭력을 동반한 가해자로 인해 연예계 성공에 목을 맨 여자들이 피해자가 되면서 인권착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연 리스트는 화약고이다. 언론과 재계, 연예계에서 칼자루를 쥔 권력남들이 연예기획사의 중계로 여배우 성상납을 받는 것은 반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이다.

 

아리따운 여배우가 좋다면, 그래서 그녀들과 사랑을 하고 싶다면 로맨스를 만들고 연애를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귀찮아서일까, 안하무인 권력효과를 과시하고픈 것일까. 상대 여성의 존엄성과 선택권을 무시한 채 폭력으로 성접대를 강요하는 것은 노예적 매매춘행위이다.

 

리스트가 공개되면 사회적 체면을 잃어 버릴 권력남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 검찰과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약속하며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여성부도 성매매 예방교육 실시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사회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거나, 이권과 편의를 대가로 성을 사고파는 일이 없는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언론에서는 물타기가 한창이다. 리스트는 강요에 의해, 즉 매니저간의 갈등이 만들어낸 것이라느니,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밥 한 끼 같이 먹었다느니...가려진 사연이야 어찌됐건 고인의 고통스러운 여배우-접대부의 삶과 억울함을 간직한 죽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고인의 한풀이를 위해 리스트를 밝히라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항간에서 떠돌던 실체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당사자들이 대가를 치뤄야 이런 반인권적 관행이 사라질 것이다.

 

그녀가 남긴 글 중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대목은 이런 것이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라는 대목 말이다. 개인적으로 몇몇 여배우들로부터 성상납 강요로 인한 고통담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녀들에게 “컴잉아웃을 하면 어떻겠느냐? 그 일을 토로하는 글을 쓰면 베스트 셀러가 될 수도 있고, 용감한 여배우로 또 다른 앞날을 열어갈 수 있다”라고 용기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용기가 없어요.. 세상이 무서워요,” 같은 겁먹고 나약한 답이 돌아온다. 여자들이 도와줄 것이다. 사회적 양심세력들도 도와줄 것이다, 라고 용기를 주려 해도 그녀들은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짐작컨대 정숙한 여성론에 세뇌되어, 걸레여자로 보이는데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누가 어떤 여자를 감히 걸레라고 부르는가? 그럼 행주도 있고 순면 타월도 있는 것일까? 그럼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하는 남자는 걸레가 아닌가? 왜 여자만 걸레인가? 이건 잘못된 호칭이고 생각이다. 걸레가 더러움을 씻어주는 물건인데, 왜 그걸 부정적으로 특히 여성의 인격에 치명적인 호칭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 이제 걸레론을 여성신체와 분리시켜야 한다. 이건 걸레의 기능과 여성의 몸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은 여남 간의 깊은 소통. 몸맘의 소통이다. 굳이 성상납이 아니어도 남성쾌락용 성행위로서 여남관계는 추하다.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양성이 평등하게 소통하고 깊게 사랑하는 에로스문화의 본질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에로스와 로맨스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사랑하고픈가? 성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대하고 마음을 열고 하는 깊은 소통으로 몸도 만나는 통합적인 에로스 로맨스를 하도록 에로스-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영화 <더 리더>에서처럼 나이를 넘어, 학력을 넘어 여남이 깊이 만나는 예술적인 에로스 사랑의 비의를 퍼뜨려야 한다.

 

* 본 글은 내일신문 여성주간지 <미즈엔>에서 전재하였습니다.

 

               

 

 

 

 

 

 

 

 

 

                                                                             글 유지나 영화평론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