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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교수 전임 불가로 시끄럽던 감신대가 초빙교수 재임용 문제로 교수 임용 공정성과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감신대 정문.  ⓒ 2004 김진아
지난 해 말, '부부 전임교수 불가 방침'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김득중·이하 감신대) 논란이 성차별 문제로 확산될 조짐이다.

2년간 초빙교수로 재직해 각각 '여성과 종교', '목회와 심리'를 가르쳐왔던 강남순, 권희순 박사가 초빙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되면서, 학부, 대학원 총여학생회를 비롯한 감리교 여성계는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성차별이다" 대 "성차별 아니다"

지난 해 6월 김득중 총장은 2004년도 교수 임용 문제를 거론하는 보직교수 회의에서 "부부 교수는 전임 교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상이 되는 이들은 강남순·권희순 박사로, 현재 감신대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박충구, 김홍기 교수의 부인이다. 따라서 '학내 부부 전임교수 불가 방침'이 인사 정책으로 책정될 경우 두 박사는 전임 교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박 교수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교수임용에 있어서 성차별적인 기준과 일관되지 않은 인사 정책이 통용된다. 또 부부 교수 임용 금지는 현행법에도 위반되는 성차별"이라는 주장이 담긴 글과 공개질의서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현대기독교사회윤리문제연구소 홈페이지와 감신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리고 교수들에게 수 차례 서신을 보냈다.

이에 김 총장은 박 교수와의 공개서신을 통해 "내 임기 중에 부부교수는 두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밝혔고, 지난 12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부부 전임교수 불가는 학교의 상황을 고려한 정책일 뿐 성차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부부 전임교수 불가 문제는 이미 교수들 내에서 합의된 사항인데 박 교수가 아내를 전임 교수를 만들기 위해 이런 일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공개적으로 밝힌 글을 통해 "부부교수 문제가 이미 합의됐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하며 "교수 임용에 있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부당한 절차는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김 총장과 박 교수의 입장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초빙교수 재임용 탈락, 괘씸죄?

이렇게 대립 구도로 치닫던 학내 부부 전임교수 불가 논쟁이 교수임용 불공정과 성차별 논란으로 교계 내외의 여성계로 확대된 것은 지난 12월 25일, 초빙교수 재임용 결과 발표에서 비롯됐다. 2년간의 계약기간을 끝내고 새롭게 초빙교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재임용에 응시한 강남순, 권희순 박사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새로운 초빙교수를 선발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부부 전임교수 불가' 문제로 논란이 일던 상황에서, 재임용에 응시했던 10명이 모두 재임용되고 유독 강, 권 박사 두 사람만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보복성 인사 조처'가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 이사회와 교원인사위원회에 제출된 강·권 박사와 학생들의 청원서.   ⓒ 2004 김진아
감신대 학부, 대학원의 총여학생회와 대학원 학생회는 지난 2일 감신대 이사회와 교원인사위원회 앞으로 청원서를 보냈다. 강, 권 박사의 재임용의 재심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이 청원서에는 초빙교수 임용 절차에서 두 교수가 탈락되는 과정 중 몇 가지 의혹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초빙교수 임용에서 강 박사가 담당하고 있던 '여성과 종교' 분과가 '여성학'으로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은 여성신학 분야 전공자인 강 박사가 설자리를 없애기 위한 고의적 의도가 아니었냐는 것과, 2004년 여성학 초빙교수로 내정된 사람이 정치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여서 신학대학에서 종교와 여성학을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과목을 가르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권 박사가 가르치던 '목회 상담' 분과는 현재 초빙교수 내정자가 없는 상황인데도 권 박사를 재임용하지 않은 것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강, 권 박사도 지난 해 12월 31일, 초빙교수 임용 과정에 대한 정밀 감사와 재심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낸 상황이다. 강 박사는 인터뷰를 통해 "초빙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두 사람이 배제된 것은 성차별적 행위가 노골화된 하나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부부 교수임용 문제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은 대학 사회 내 뿌리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적 사고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의혹들이 불거지자 감신대 교원인사위원회는 1월 8일, 2004년 초빙교수 임용선발 과정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인사위원회는 "부부 교수 불가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다만 적합한 담당자를 선발했을 뿐, 학력, 경력, 면접 점수 등을 총괄한 공정하고 적법한 절차였다"고 밝혔다.

더불어 '여성과 종교'가 여성학 과목으로 전환된 것은 더 넓은 영역에서의 학문으로 전환한 것이며 여성학에 더 적합한 박사를 선발했다면서, 권 박사의 경우는 교원 신규임용 심사표에서 80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 자격이 미달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교원인사위원회의 공식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보복적 인사 조처'에 관한 의혹을 깨끗이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인사위원회 중 한 교수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번 초빙교수 임용에서 두 교수가 제외된 것은 보복적 인사 조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교수 임용 문제를 둘러싸고 학내를 시끄럽게 했던 것이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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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성차별 문제"...교계 내외 여성계 움직인다

뚜렷한 입장 차이만큼이나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도 차이를 보였다.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최형민(28·가명)씨는 "이 문제는 교수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 성차별 문제로 보기보다 교수들의 권력 다툼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02학번의 한 여학생은 "만약 정치적 싸움이라 해도 왜 여성만 그 사이에서 희생자가 되야 하나"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 문제로 학생들은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와 대학원 총여학생회 홈페이지 등의 게시판에는 매일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순영(한강감리교회) 목사는 "내면적으로는 그런 알력다툼의 긴장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부 교수 문제를 비롯해 초빙 교수 임용 탈락 과정에도 분명한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며 그렇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학 내 성차별적 문제가 비단 감신대의 경우만은 아닐텐데 혹여 특정한 학내의 문제로만 치부될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대학원 총여학생회를 비롯한 감리교 여성단체와 목회자들은 지난 6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성차별 바로잡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발족하고 활동에 돌입했다. 공대위는 앞으로 감리회전국여교역자회와 여동문회 등 8개 단체가 연합한 감리교여성연대 등의 교계 여성단체를 비롯한 일반 여성단체들과의 연대를 계획하는 한편, 기자회견과 피켓 시위 등 적극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의 유춘자 원장은 "우선은 강, 권 교수의 초빙교수 재임용을 위해 활동하겠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이 문제는 한국 교회와 대학 내의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30%를 차지하고 있는 감신의 여학생들의 미래와 직결돼 있는 사안이며, 크게는 한국 전체의 여성들의 입지와도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서강대 종교학과의 김성례 교수는 "과도기적으로 여성할당제가 시행되는 것처럼 대학사회 안에서 여성교수의 비율이 높아져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권력관계나 밥그릇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성평등적인 사고와 교육을 위해서이며 평등한 대학공동체를 위해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라면서 "이 문제는 단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되며 교수 사회 내의 여성교수 차별 문제와 더불어 종교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성적 불평등의 시각,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 등과 연관해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감신대의 초빙교수 임용은 앞으로 감리교 이사회의 인준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2월에 열릴 것으로 알려진 이사회에서 만약 내정된 초빙교수 임용 결과를 인준하지 않고 재심을 받아들인다면 새롭게 재심위원회를 구성해 초빙교수 임용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이사회 결과를 기점으로 부부 전임교수 문제에서 초빙교수 임용 절차에 대한 불공정성과 성차별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문제는 더욱 많은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초빙교수 재임용 탈락한 강남순 박사
"결혼은 사적 영역, 학자의 길은 공적 영역"
강남순 박사

부부 전임교수 임용 불가, 그리고 초빙교수 재임용 탈락이라는 일련의 문제를 겪으면서 지쳤을 법도 한데, 인터뷰에 응하는 강남순 박사는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강 박사는 "안팎으로 나를 비판하는 이야기와 지지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남편인 박충구 교수가 강 박사 문제에 나서서 문제제기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강 박사는 "내가 남편을 바람막이 삼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부부가 언제나 같은 의견, 하나의 집합체로 보는 시각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리고 남편 또한 한 사람의 학자적 양심에 의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부부 전임교수 불가 발언에 대해서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기인한 성차별적 발상"이라고 못박았다. "학교 내에서 부부 전임교수를 반대하는 분들의 논지는 한 집안에 두 개의 파이를 줄 수 없다는 거였다. 한 마디로 의사결정권을 한 집안에서 갖게 되면 권력 불균형이 생긴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은 나 개인을 독립적 인격으로 보지 않고 남편에게 귀속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결혼은 나의 사적 영역의 일일뿐이다. 그리고 교수는 공적 영역의 일이다. 그런데 왜 내가 학자로서 가는 길에 사적 영역의 일이 개입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강 박사는 초빙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이 보복적 인사조처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예전부터 계속돼 오던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이 노골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교원인사위원들이 내 놓고 있는 입장은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강 박사는 최근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난 문제가 그리 놀랄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최근 "여자가 기저귀차고 강단에 올라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한 교단 총회장의 발언처럼, 그저 한국 남성과 기독교 안에 깔려있던 가부장적 의식과 남성중심주의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대학 내 교수사회의 성차별 구조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라면서, 이 사건을 접하는 이들이 부디 '교수간의 밥그릇 싸움'이나 '교수직 하나를 얻기 위한 근시안적 문제로 이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교수 사회에도 성차별 구조가 만연하다고 지적하면서 저조한 여교수의 비율이나 학내에서의 승진문제, 보직교수에 임용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의사결정권에 있어서도 남성에게 편중돼 있다고 덧붙였다.

강 박사는 이사회의 재임용 과정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문제가 한국 교회에서, 그리고 대학 사회에서, 또 여성계에서 어떤 의미로건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결과가 어떠하든 말이다. 나는 재임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 일을 풀어나가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를 갖는다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책위를 꾸리고 함께 참여하려는 여성들도 나의 교수직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안다. 중요한 건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인거다." / 김진아 기자
▲ 방학 중인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로 학교 게시판에는 연일 대자보가 붙고 있다.  ⓒ 2004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