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

▲ 여성노동영화제 포스터  ⓒ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만을 모은 영화제가 열린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전국 9개 지역(서울, 인천, 부천, 안산, 전북, 광주, 대구, 마산창원, 부산)에서 여성노동영화제를 개최한다. 서울지역은 떼아뜨르 추에서 3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진행하며 차별과 빈곤을 넘어라는 주제로 총 5개 섹션의 27편의 국내외영화가 소개된다.

첫 번째 섹션, [세계화, 차별과 빈곤의 굴레]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이 경험해야하는 불안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들은 제3세계를 겨냥하는 초국적 자본이 값싼 인건비를 목표로 여성들을 집중 고용하는 산업에 투자하고 있고 여기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호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 주목한다. 세계화 이후 여성의 노동은 더욱 주변화되고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 속에 고통 받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인도영화 [Jarimari]는 뭄바이 국제공항 주변에 위치한 슬럼가 자리마리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보다 싼 인건비를 찾아 방글라데시나 중국으로 이동한 자본 때문에 이들이 이제까지 일했던 의류공장의 일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노동은 비공식 부문으로 흘러들어가 이전보다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뎌야만한다. 그나마 일자리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빈곤이란 누적된 경제상황이 드러난 결과라는 생각과는 달리, 빈곤층들은 부를 생산하고 지속시키는 과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정당하고 공평하게 번영과 안녕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섹션 [여성으로, 노동자로 살아가기] 에서는 여성으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땅에서 여성과 노동자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기는 너무나 힘겹다. 취직시의 외모차별, 직장내 성희롱ㆍ폭언폭행, 보호받지 못하는 모성보호. 모성보호관련법 개정으로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화, 직장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잇는 지원조치가 법적으로 마련되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과도한 업무에 배치되어 스스로 퇴직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소금]은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갖기 두려운 현실, 임신한 여성 중 50%에 가까운 여성들이 유산을 경험한 철도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의 과제는 모성보호비용의 전액 사회부담화와 국공립 보육시설 및 방과후 시설의 확대이다.

세 번째 섹션은 [비정규직, 70%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580만명 중 비정규직은 70%이다. 2003년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 222만원에 비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82만원에 불과하다. 불안한 일자리, 낮은 임금에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3권마저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영화 [법과 법사이의 여성들]은 놀랄만큼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코오무 린쇼쿠는 일본의 공무임시직을 일컫는 말이다. 정규직을 고용해야할 자리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채워 넣고 정부기관에서는 싼 값에 이들을 시간제로 고용하고 마음대로 해고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매해 같은 월급, 출산휴가 시에는 바로 해고,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노동자의 편의상 퇴직하기 때문이라면서 퇴직금의 40%삭감. 이들은 단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다. 이들을 보호할 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나라의 상황도 이러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빨리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임시직 제한 및 고용에 따른 차별규제, 고용형태를 이유로 하는 차별금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보장 조치 등이 시급하다.

네 번째 섹션은 [그러나, 일어서라]이다. 모든 차별에 맞서 평등을, 온갖 불의에 맞서 정의를. 힘겹게 일어선, 그러나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영화 [눈물꽃]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고 그 담장 안의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난 적조차 거의 없는 수출자유지역에서 데모라고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12명의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을 담고 있다. 처음 해본 투쟁, 12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웃기도 한다. 때로는 소외받은 ”우리들의 이야기, 그 숨은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다섯 번째 섹션은 [옛날 영화를 보다]이다. 군부독재시절 상영금지조치로 인해 성당이나 교회 등에 삼삼오오 모여 낡은 영사기를 돌려가며 숨죽여 보던 영화 노동운동가의 이야기 [노마레이]와 1954년에 만들어졌지만 195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영화, 남편대신 파업을 주도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아내들의 여성의식과 생생한 노동자 가족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지의 소금]이 준비되어 있다.

최근 많은 영화제들이 있어 왔지만 여성노동자의 문제만을 다룬 영화제는 없었다. 이번 영화제는 3.8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 내어 그 목소리를 높인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과제에 대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풍성한 장이 되길 바래본다.
(서울상영 : 떼아뜨르 추, 3월 2일~6일, 입장료 3천원, www.38wome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