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경찰청 소속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4월 일방 해고에 항의하며 서대문 로타리에서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비율이 날로 높아지면서 여성노동력이 일회성으로 취급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2005 우먼타임스


[황훈영 기자]국제사회에서 평가받는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늘 꼴찌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6일 발표한 ‘여성의 권리 : 남녀 불평등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이집트와 터키, 파키스탄과 요르단에 이어 최고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세계 58개국 중에서 54위를 기록, 남녀평등지수가 여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국가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수치스런 보고가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 한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꼴찌라는 보고까지 나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은 최근 아태지역 13개국 중 한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5월 유엔개발계획(UNDP)이 보고한 자료에서도 한국의 여성권한척도(GEM)는 68위를 차지했다. 여성권한척도란 여성국회의원 수, 행정관리직·전문기술직 여성비율, 남녀소득차를 기준으로 여성의 정치·경제·정책과정의 참여도를 측정한 지수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OECD 30개국과 28개 신흥시장 국가들을 대상으로 ▲경제활동 참여도 ▲경제활동 기회 ▲정치적 권리 ▲교육적 성취 ▲보건과 복지 등 5개 평가항목에 따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평점은 7점 만점에 3.18을 받았다. 부문별로 보면 보건과 복지가 27위, 경제활동 참여도 34위, 교육활동 성취도 48위, 경제활동 기회 55위로 평가됐으며 정치적 권리는 56위로 평가항목 중 가장 낮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1위부터 3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33위, 일본은 38위를 기록했다. 이같이 북유럽 국가들이 양성평등 성취도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남녀평등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여성의 실질적 지위 향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50% 수준을 이루고 있어 양성평등 시각으로 국가정책이 결정된다는 것.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은 아태지역 13개 국가를 상대로 ▲여성노동참가율 ▲대학교육 정도 ▲관리직 비율 ▲평균이상 소득 등 4개 항목으로 나눠 남녀평등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평점 45.5점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한국은 여성노동참가율과 대학교육 정도에 있어서는 70점대를 기록한 반면, 관리직 비율과 평균소득 측정에서는 꼴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낮은 수치를 받은 것은 대학교육 정도는 높지만, 그 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여성노동력이 비정규직과 경제적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가사노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국(92.3)과 말레이시아(86.2)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고됐다. 말레이시아는 관리직 진출(119.4)에서 여성 고위 경영인이 남성보다 많았고, 태국은 여성의 대학교육 정도가 131.9로 나왔다.

헤드릭 왕 마스터카드 아태 경제고문은 “경제분야에서 여성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뤄질수록 경제성장을 확대시킬 수 있다”면서 “여성의 능력과 재능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만큼 사회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WEF 보고와 관련 지난 18일 성명서를 내고 “우리 나라가 54위라는 부끄러운 수치를 기록한 것은 바로 선진한국을 이루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정치분야에서 여성참여 비율을 높이라는 주문”이라며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2.2%에 불과한 기초의원 여성비율을 50%로 끌어올리기 위해 제도개선은 물론 여성후보 발굴 등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꼴찌 원인은?
‘사무실 꽃’ 인식, 남성 우대 등이 걸림돌

‘얼굴 예쁘고 날씬하며 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여자 영어강사 구함.’

이는 지난 3월 한국여성민우회 평등상담실로 접수된 성차별적인 채용 사례다.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여성의 용모, 결혼 여부 등을 채용조건에 부과해 채용의 기회를 제한하고 배제하는 일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 평등조사 등 글로벌 남녀평등지수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역시 고용의 문턱에서부터 이 같은 성차별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민우회는 “아직도 여성 채용과정에서 사무실의 ‘꽃’으로 바라보거나, ‘남성우대’ 조건을 달아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노동자의 70%가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여성을 비정규직 고용형태로 채용해 불이익을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학력, 경력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직급(직위)에 모집채용 하는 경우 ▲모집 및 채용에 있어서 특정성을 배제하는 경우 ▲직종별로 남녀를 분리 모집하거나 성별로 채용 예정인원을 배정하는 경우 ▲여성에게만 연령, 혼인 등 제한적 조건을 부과하는 경우 ▲면접시 여성에게 성차별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민우회는 오는 6월까지 ‘모집·채용시 성차별 상담집중기간’으로 정하고, 홈페이지와 메일, 전화를 통해 성차별적인 사례를 모집한다.

한편, 여성학·사회학 전공자들의 모임인 차별연구회는 지난 17일 중앙인사위원회가 공무원임용시험 응시자격에서 연령을 제한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고 국가인권위법의 차별조항을 위반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2005년 공무원임용시험 시행계획 공고에서 행정고등고시, 외무고등고시 응시자격을 각각 20세 이상 32세 이하, 20세 이상 30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 7급과 7급 중 외무행정직 응시 자격을 각각 20세 이상 35세 이하, 20세 이상 35세 미만으로, 9급과 9급 중 교정·보호관찰직을 각각 18세 이상 28세 이하, 20세 이상 28세 이하로 규정했다.

차별연구회는 “공무원 연령제한은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인권위의 차별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등이라고 볼 수 없다”며 “공무원 채용시 연령제한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연령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차별연구회의 인권위 진정에 따라 올 초 철도청이 새마을호 여승무원 채용시 나이 및 혼인 여부, 성별 제한을 자체적으로 폐지했다. / 우먼타임스 감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