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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보도의 가정폭력 피해자 인권침해에 대한 기자회견  ⓒ 김정혜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 인한 가해자 사망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이모씨 사건이 지난 6월 11일 다시 공중파를 탔다. 또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인 최모씨(피고인의 어머니)는 『SBS 뉴스추적』 <"끝나지 않는 비극"-폭력에 무너지는 가정>에서 항소심 재판중인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SBS 뉴스추적』은 최모씨의 인터뷰 장면을 방영하면서 측면 얼굴과 클로즈업 씬을 모자이크처리하지 않고 그냥 내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서울여성의전화는 6월 17일 여성사회교육원에서 "방송보도의 가정폭력피해자 인권침해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서울여성의전화는 『SBS 뉴스추적』으로부터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받고 피해측과 인터뷰 주선을 하면서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변조 등 확실한 신변보호를 다짐받았으나 방송에는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화면이 그대로 나갔다는 것이다. 더구나 본방송 전 광고방송에서는 최씨의 얼굴 전면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SBS 뉴스추적 담당 기자는 서울여성의전화에 보낸 메일과 전화통화에서 "이미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가해자도 사망했기 때문에 보복의 염려가 덜 할 것"이고 "어머님의 눈물을 보여 주는 것이 호소력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고, "선의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피해자측은 이번 방영으로 인해 이 사건을 모르던 친척과 이웃들에게까지 사건이 노출되어 정신적 피해가 큼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는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권리는 피해자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 기자의 '고민'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씨는 가족들과의 논의 끝에 소송을 통해 SBS에 대응하기로 했다.

▲ 사건 대응 홈페이지  ⓒ 김정혜
이 사건의 공동변호를 맡은 이명숙 변호사(여성평화를위한변호사모임)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를 한다고 해도 집 내부 촬영, 소장(訴狀) 촬영 등의 과정에서 신분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며 피해자 신변보호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함을 주지시켰다. 또한 이번 사건과 같이 피해자가 방송에서 이미 드러난 뒤에는 손해배상이나 사과방송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발생한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사전에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공동변호인단 구성의 이유를 밝혔다.

이번 성명은 11개 단체가 연명하였고, 12명의 공동변호인단이 소송을 지원하게 된다. 서울여성의전화는 민,형사상 소송과 더불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검토하고 있으며 사건 홈페이지(http://hotline.jinbo.net)을 통해 서명과 의견을 접수하고, 유사한 피해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 권리침해 사례를 모아 집단소송을 준비할 예정이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SBS 뉴스추적』의 피해자 신변유출 행위를 규탄한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을 유출한 SBS는 자성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SBS 뉴스추적』은 지난 6월 11일 254회 방송 분에서 <"끝나지 않는 비극"-폭력에 무너지는 가정>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고, 얼굴을 그대로 내보냄으로써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였다. 이는 공중파 방송으로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것뿐만 아니라,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8조 2항("이 법에 의한 가정보호사건에 대하여는 행위자, 피해자, 고소인·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주소·성명·연령·직업·용모 기타 이들을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신문등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방송할 수 없다")을 위반한 엄연한 범법행위이다.

이에 본회는 이러한 방송 행태에 분노하면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발표하는 바이다.

1. 사회적 호소력 등을 운운하며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엄연한 인권침해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폭력을 개인문제라고 여기거나,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의 잘못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방송 인터뷰에 응했을 때, 방송사는 피해자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해주어야 하는 사회적, 법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전에 수 차례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SBS는 피해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채 방송하였다. 이로 인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자신들 뿐 아니라 친척들에게 피해가 있을 것을 우려해 밤새 걱정으로 잠이 들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계속 불안해하여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피해자의 눈물로 알리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피해자 보호의 원칙이라는 기본을 간과한 행태라고 할 수 있다.

2. 선정성에 기반한 가정폭력보도를 즉각 중단하라.

SBS 뉴스추적 254회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보도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고층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수 차례 방송했고, 이번 사건 피해자의 가정폭력피해를 보도하면서 경찰의 자극적인 멘트를 그대로 방송하였다. 시청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선정적 보도는 사회적 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려 이는 선정적 장면을 이용하여 시청률을 높이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3. 피해자 신변보호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언론에 의한 피해자의 신변 유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신변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방송사에서 여과 없이 그대로 방영하거나, 가정폭력을 피해서 쉼터에 입소해 있던 내담자의 모습을 그대로 방영한 경우 등, 방송에 의한 피해자의 2차 피해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방송 이후, 방송사의 사과와 손해배상은 이미 신원이 다 공개된 상황에서 피해당사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방송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내규를 제정하고, 방송제작자들을 사전 교육해야 한다. 한편 방송법에는 피해자의 신변사항을 유출한 제작자와 방송사를 엄중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추가되어야 한다.

『SBS 뉴스추적』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비리를 고발하고 사건 뒤에 숨은 실체와 본질을 끝까지 추적 보도"하며, "성역을 인정하지 않는 기자들의 프로그램, 그러면서도 진한 감동이 묻어나는 휴먼터치의 프로그램"이라고 자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본 기획의도와는 달리 피해자의 인권까지도 '성역'화하여 가감 없이 보도함으로서 제2의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본회는 다시 한 번 SBS의 이러한 행태가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음을 밝히며, 아울러 이 사건으로 인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SBS에 있음을 강조한다. 본회는 이러한 방송보도에 의한 피해자가 다시금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SBS는

1. 본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SBS 주요 뉴스, 종합 일간지를 통해 사과하라.
2. 『SBS 뉴스추적』책임자를 징계하라.
3.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2003년 6월 1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미디어워치, 매체비평 우리 스스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서울여성의전화, 언론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상담센터,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상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