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병 100년에 즈음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성 호소문
올해는 한일병탄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온 겨레에게 고통과 희생을 안겨준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질서의 중심에 놓여있고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갈등 속에서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경험을 하였음에도 아직까지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하다.
특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대결도 더욱 가열되고 있다. 정치적 위기를 협상과 소통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주변 강대국에 의존해 서로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한 남북은 언제까지 편지 한 장 보낼 수 없고 가족을 만날 수도 없는 이 비정상적인 세월을 지속할 것인가?
우리 여성들은 지금까지 식민지, 분단, 전쟁, 냉전을 경험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민주주의를 성취해 여성의 발전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경험은 평화가 생명이며 또한 가장 기본적인 인류의 염원이자 보편적 인간권리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오늘의 한반도 현실을 통탄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 및 동북아 각국 정부 및 각국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1.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포함하여 지난 시기 일본이 저지른 식민주의와 태평양전쟁의 과오를 인정하고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기를 희망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국제적 무력분쟁에서 여전히 여성폭력은 반복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함께 전쟁 상태에서 체계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해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는 중단되어야 한다.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법률적 책임을 져야하며, 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생존자에게 적절한 배상을 하며, 일본 교과서에 군 ‘위안부’체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포함해야한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하루 속히 시행할 것을 요청한다.
2. 우리는 남북을 포함해 동북아 각국이 군사적 억지력에 기반을 둔 안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화해협력에 근거한 공동안보와 포괄안보를 추구하기를 촉구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평화적 수단이 아닌 군사력 증대와 경제제재를 통한 “힘에 의한 정치”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어떠한 국가도 자신의 군사력에 대한 일방적 신뢰만으로 안보를 성취할 수 없다. 항구적 평화는 상호불신에 입각한 군비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생존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달려있다. 따라서 남북 사이에 상호의존성을 높이기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정치적 협상을 재개할 것을 촉구한다. 안보는 남북이 서로를 위협해서 얻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공동안보와 포괄적인 안보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3. 여성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다.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에서 휴전체제의 불안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는 휴전체제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 상태로 전환하여야 한다.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북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한반도의 근본적 정상화가 불가능하며, 북미관계 정상화 없이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미 사이에 적대관계 해소와 실질적인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이고 평화적인 해결과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한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선(先)비핵화 원칙'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비핵화와 한반도평화체제에 대해 함께 논의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6자회담, 남북회담 및 북미회담 등 정치적 협상을 조속히 개최할 것을 촉구한다.
4. 남한 정부는 남북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통일부의 주장대로 "준비 없이 맞이하는 통일은 시행착오와 혼란,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 준비를 위해 남북 사회․경제․문화 협력은 확대되어야 한다. 남북 사이에 대립이 격화될수록 남북 민간이 만나 상호 신뢰를 쌓아 한반도 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출범 후 남북 민간의 교류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제한적이며 선별적으로 승인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기금 집행률은 2008년 18.1%를 기록한 데 이어 2009년에는 8.6%로 떨어졌다. 여성의 남북교류 경우, 정부가 승인을 유보해 2009년 남북 여성대표자회의를 개최할 수 없었다. 또한 2010년 4월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여성의 만남조차 불허하였다. 통일을 준비하겠다고 통일세 신설을 주장하기 전에 기존에 남북 사이에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남북 사이에 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특히 북한 수해와 식량난을 고려하여 인도적 지원을 시급히 실시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5. 동북아시아 각국 정부는 평화형성을 위한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라.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할 남북회담과 6자회담과 같은 평화와 안보 관련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은 평화형성과정에서 기회, 자원, 존중의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다.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평화․외교․국방 분야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어느 한 성에 의한 편파적이고 불평등한 흐름을 막고 남성과 여성의 관심과 경험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정책의 수준과 과정에 여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의사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남녀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affirmative action)이 필요하며, 정부는 평화협상테이블과 외교․통일․국방정책 결정과정에 여성 참여를 30% 이상 보장해야 한다. 이는 여성들로 하여금 무력갈등과 분쟁상황에서 희생자가 아닌 갈등해결과 평화형성자, 화해자로서 평화과정에 여성을 포함시키도록 요구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325호의 정신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남북, 동북아 여성과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증진할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동북아시아 여성 연대는 긍정적인 공동의 기억을 쌓아 남과 북, 동북아 각국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정체성간의 차이를 뛰어 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여성 연대를 통해 동북아시아 분단을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평화와 상생(相生)의 문화를 창출하는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2010년 8월 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평화를만드는여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