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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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전향적인 성희롱 판단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권순일)이 교원소청심사위원회결정취소 사건(2017두74702)에서 성희롱에 대한 전향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은 모 대학의 교수가 소속 학과 여학생들을 수 차례 성희롱 한 이유로 징계해임된 후 이에 불복하여 제기한 소송이다. 1심 재판부는 교수의 성희롱을 인정하여 원고인 교수가 패소하였으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거나, 피해사실을 즉기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가 제3자의 문제제기 등을 계기로 신고를 하거나 또는 피해사실 신고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성희롱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희롱에 대한 전향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며 성희롱을 부정한 2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판단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선,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도 적시했다. 또한 성희롱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는 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판단해야 함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법원이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하여야 한다며 피해자의 시각에서 상황을 판단해야 함을 명확히 짚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성희롱에 대한 전향적인 기준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뿌리깊은 성차별과 공고한 가부장제가 살아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성희롱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는 남성중심적이고 가해자 중심적으로 해석되어 왔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왜곡된 인식을 양산해왔다. 법원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그동안 무수히 많은 가해자 중심적인 판결로 비판받아 왔다. 피해자의 맥락과 시각을 삭제한 판결들은 피해자 구제를 요원하게 했고, 성폭력에 대한 법의 심판 즉, 사법부에 대한 여성들의 불신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이 성희롱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성폭력 범죄 판결에 있어 주요한 판단 기준이자 근거로 작용하여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 보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러한 대법원의 변화가 성폭력 근절을 향한 의미있는 진전이자 뿌리깊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개혁을 요구하는 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의 씨앗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8년 4월 13일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