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틀.jpg

 

 

 

[선언문] “<형법 269조> 낙태죄를 폐지하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이하며”

 

 

형법 269조 1항.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953년, 피임법도 제대로 없던 시절부터 여성의 낙태는 범죄로 규정되고 낙태한 여성은 범죄자가 되었다. 하지만 국가는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강제 불임을 지시하고, 강제 낙태를 허용하고, 가족계획 정책을 통해 30년간 여성에게 안전하지 못한 피임 장치를 보급하였으며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지원해왔다. 인구가 많을 때는 낙태죄를 무시하고 낙태와 가족계획을 강요하다가, 인구가 필요해지자 낙태죄의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선다.

 

2018년 9월 29일 낙태죄는 여전히 존재하며, 또한 사문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사만 처벌하는 법의 특성을 악용하여 협박 수단이 되고 있다. 연인 관계에서 이별을 통보하였을 때, 연인이나 배우자의 폭력을 고발하였을 때, 이혼을 할 때, 낙태죄는 여성을 징벌하고 응징하기 위해서 악용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재생산 권리이다. 하지만 지금은 낙태죄로 인해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 속에 있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 실현되지 않고 있다. 개인의 결정, 여성의 판단은 그 사회의 사회구조적인 조건들 안에서 이뤄진다. 장애, 질병, 연령, 경제적 상황, 지역적 조건, 혼인 여부, 교육 수준, 가족상태, 국적, 이주상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회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여성만 독박 처벌하는 기만적인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여성과 태어날 아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일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임신중지를 범죄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행위는 인공임신중절을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위험한 시술을 부추기는 방법일 뿐이다. 여성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지 않고, 방치하며, 심지어 처벌하겠다는 국가에서 누가 미래를 꿈꾸겠는가. 사회적 낙인 없이 비혼부/모가 될 수 있는 권리, 결혼유무, 성적지향,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의무이다. 이러한 권리들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전세계의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국가가 특정한 생명을 선별하고, 개인의 재생산 권리를 제약하고, 그래서 경제개발에 도움이 되는 인구만을 늘리겠다는 끔찍한 사고방식으로 자행된 수많은 국가 폭력이 존재한다. 과거 정부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강제로 단종 및 낙태 시술을 행한 바 있다. 국가에 의해 낙태를 강요받는 현실은 비단 특정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개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비일비재하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는 장애인의 생명이 침해되는 상황을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조장했다. 낙태죄는 국가주도의 출산 통제, 인구 관리를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인권의 기초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폭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장애인이 없는 국가, 가난한 가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를 위해 박정희가 만든 모자보건법은 바로 이 시점에도 여전히 남아 우리의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의 인구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안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머무르지 않겠다. 임신중절에 대한 합법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 우리는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처벌 대신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 제도에 맞서 저항하는 날이다.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 폐지하라.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하라. 국가는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를 제공하라. 진정 생명을 그토록 소중히 여긴다면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과 태어날 아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일이 국가와 사회의 의무임을 각성하라. <형법 269조> 낙태죄를 폐지하라.

 

 

퍼포먼스4.jpg

 

퍼포면스5.jpg

 

퍼포먼스2-1.jpg

 

퍼포먼스1.jpg

 

퍼포먼스3.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1962 [성명]선거제도 개혁 배제한 밀실 야합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묵살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강력히 규탄한다 file 2018.12.07
1961 [기자회견] 미투법안 발의안만 쏟아내고, 처리는 나 몰라라? 임기 내내 직무유기, 국회 규탄 기자회견 file 2018.11.29
1960 [성명] 이것은 지위를 악용한 명백한 성폭력이자, 성소수자 혐오범죄다 - 해군간부 2명에 의한 성폭력 사건 2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며 file 2018.11.21
1959 [논평]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환영한다 file 2018.11.21
1958 [성명] 5.18민중항쟁 과정 중 국가에 의한 성폭력‧성고문,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 사죄하라! file 2018.11.02
1957 [연대기자회견] 삼성/한화 금융계열사의 채용성차별 은폐 규탄한다! 기업은 채용 단계별 성비를 공개하라! 정부는 기업의 범법행위에 대해 강력 조치하고 궁극적인 성차별 시정 제도 마련하라! file 2018.10.31
1956 ‘누구도 소외·배제되지 않는’ 글로벌 SDGs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한 K-SDGs 수립 체계의 전면적 재구조화를 강력히 촉구 file 2018.10.30
1955 [공동성명]유치원.어린이집 비리,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 file 2018.10.17
1954 [성명] 디지털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지 말고, 국회는 관련 법안 조속히 통과시켜라! file 2018.10.12
1953 [성명]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라.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약속을 이행하고 보육을 반드시 포함하라 . file 2018.10.11
Board Pagination 1 ... 62 63 64 65 ... 260
/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