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보건복지부의 ‘실수요자 중심의 보육지원체계 전면개편(안)’에 대한 의견]

보건복지부는 보육책임을 가정에게 전가하는

‘보육지원체계 전면개편(안)’을 즉각 철회하라.

120924_보육지원체계_전면개편안_의견서.hwp


올해 초, 급조된 0-2세 무상보육 실시 이후 사회적 지탄을 받아 온 보건복지부가 드디어 개편안을 발표했다. ‘실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보육지원체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개편안은 1) 소득계층과 무관한 0~2세 무상보육을 소득하위 70%로 축소하고 2) 0~2세 차상위계층까지 지원하던 양육수당을 소득하위 70%까지 양육보조금으로 지원, 가정양육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누구나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보육을 축소하고 오히려 보육에 대한 책임을 가정에게 전가하는 시대착오적인 개편안 임을 지적하면서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1
. ‘보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대통령, 하지만 0-2세 무상보육은 시행 1년만에 후퇴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논의에 대해 시종일관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 오던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2012년 정부예산 수립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부담 여건을 반영하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무상보육을 추진함에 따라 시행 4개월 만에 좌초 위기에 놓였을 때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추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한시름 놓았지만, 이번 발표를 통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갑작스레 0-2세 무상보육을 시작했던 1년 전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보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큰소리치던 경제대통령이 투자를 회피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지속가능성,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보육정책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함에도 고작 1년 만에 후퇴하는 것은 그 정책이 얼마나 무계획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개편안 마련 이유를 ‘0-2세 보육료를 전 계층에 지원하면서 맞벌이 부모 등 실 수요층이 어린이집을 이용하기 어렵고 재정누수 등의 비효율, 시설보육과 가정양육간 부모의 고려 미흡 등 0-2세 무상보육으로 인한 문제점을 개선’이라고 밝혔다.


2. 보육서비스 실수요자인 맞벌이를 제외하는 실수요자 무시정책


그러나, 이미 보육료 전액을 지원받으며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의 상당수는 20만원을 어린이집에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 수요자인 맞벌이 부부가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개편안은 홑벌이부부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조금 많은 다수의 30대 맞벌이 부부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보육서비스의 목적은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아동을 사회가 안전하게 돌보기 위한 것이다.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있는데, 가구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맞벌이 부부가 배제되는 것은 이번 개편안 역시 급조된 정책이라는 점을 증명해 준다.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실 수요자는 과연 누구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3. 기본보육료를 바우처로 지원하면서 어린이집 관리감독 불가능, 보육서비스 결과는 전부 부모 책임


게다가, 현행 0-2세아가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 시설에 지원하는 기본보육료를 부모의 바우처 카드로 입금하면, 정부는 무슨 근거로 어린이집을 관리감독하고, 평가인증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민간과 가정어린이집으로 편중된 보육서비스 공급구조 개선없이 부모에게 보육료를 직접 지원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부모가 선택해서 다니는 어린이집이니 그 어린이집의 보육서비스 질이 낮더라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 된다. 개편안에는 시설 평가인증 제도를 강화하여 보육서비스 품질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어린이집에 기본보육료를 지원하는 지금도 민간어린이집은 정부의 관리감독을 재산권 침해 운운하면서 거부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부모들도 어린이집 운영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정부가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부모와 아동에게 복불복을 권하는 형국이다.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평가인증을 강화할 것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4. 좋은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선택권은 오히려 제약


이렇다 보니, 부모들이 희망하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은 ‘선택권’은 도리어 제약받게 된다. 정부는 재정지원을 이유로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하면서 양질의 보육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러한 책임조차 회피하고 있으므로 결국 부모는 양질의 보육서비스 이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제 보육정책은 기본보육료가 도입되던 2006년 이전 시기로 후퇴했다.


5. 가정양육 권고, 가정양육을 못하는 부모는 무책임한 것인가?


정부는 이번 개편안이 ‘영아의 가정양육을 유도하고, 실 수요층 보육지원 강화, 소득수준별 지원의 공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고 실수요자에 맞게 서비스를 공급하도록 개편한 것으로 향후 보육정책의 기본틀로 자리잡게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영아의 가정양육을 권고하는 것이 정부 시책이라는 점은 다시 한번 이번 개편안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OECD 권고안을 인용하면서 0-2세는 가정에서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외국에서 영아의 가정양육 비율이 높은 것은 우리사회와 달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일․생활 양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모가 직접 돌보는 비중이 높은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조차 사용할 수 없어 퇴직하고,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결국, 가정양육을 권고하는 것은 부모 중 누군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양육자는 급여 수준이 낮은 여성이 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같은 정부 내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경력단절 예방하겠다는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부처와 여성에게 아이를 돌보라고 요구하는 부처가 있는 셈이다. 또한, 정부가 나서서 가정양육을 권고하는 것은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강화시키고, 일하는 엄마의 자책감을 더욱 조장하는 것이다. 정부는 가정양육 권고 운운하지 말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인프라 구축방안부터 추진해야 한다.

정부예산 중 보육예산은 매년 상승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보육예산안을 분석해 보면 부모에게 지원되는 비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보육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재정지원만 확대하면서 국공립어린이집 등 인프라 확충을 등한시하여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부모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반면교사하지 않고 보육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보육정책에 대한 제언을 지속적으로 해 온 여성연합은 잔여임기를 87일 남겨놓은 오늘까지 보육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에 분노한다.

정부는 하루빨리 비취업모, 맞벌이 부부 누구에게도 신뢰받지 못 할 이번 개편안을 철회하고,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보육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국가 본연의 책무에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



2012. 9. 24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