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평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군인과 순덕, 눈보라 치는 오름 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군인은 총을 들었고 총 끝은 보따리를 안은 순덕을 향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 영화 <지슬> 포스터)


선댄스 영화제 특별상, 이스탄불 영화제 인권부문 수상에 빛나는 독립영화 <지슬>의 흥행몰이가 심상치 않다.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답게 지난 4월 3일을 맞아 관객 7만을 돌파한 이 영화는 개봉 5주차를 맞아 상영관을 14개로 확대하고, 독립영화로는 4년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다.


위 그림은 훌륭한 미쟝센으로 극찬을 받은 독립영화 <지슬>의 포스터 사진이다. 눈보라 치는 오름 한복판에서 보따리를 안은 여자와 그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일까. 또 이후의 스토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못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림이다.


4.3 사건은 여전히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이다. 미군정 치하에서 ‘해안선 5km 밖의 모든 사람들은 폭도로 간주한다’는 소개령이 떨어지고, 오름으로 곶자왈로 소란을 피해 숨어든 제주의 민중들이 빨갱이로 몰려 희생을 당했다. 희생자만 3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할 뿐, 아직도 4.3의 희생자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못했고, 진상조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슬>은 미군정의 소개령 속에 펼쳐지는 한 동네 사람들과 미군정 치하에서 이미 전쟁광으로 변한 군인들, 이제 막 징집된 어린 군인들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이들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지슬’ 제주말로 감자이다. 지슬은 곶자왈로 숨어든 민중에게는 피난 중의 소중한 식량으로, 전쟁광이 된 군인들에겐 발에 채이는 자갈과 매한가지로, 빨갱이를 끝내 쏘지 못하고 굶고 있는 어린 군인에겐 결코 받아들 수 없는 자존심으로 표현된다.


결국, 군인은 순덕이를 쏘지 못한 것이다. 생포(?)된 순덕은 전쟁광으로 변한 군인들에 의해 밤새도록 짓밟히고 만다. 전쟁광으로 변한 군인들은 이미 인두겁을 쓴 괴물에 다름없다. 이미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미처 피난하지 못한 노인들을 거침없이 죽이고 불태운다. 주인을 잃고 굶고 있던 돼지를 삶는다.


한밤 중, 순덕을 쏘지 못한 어린 군인들은 탈영시도 중에 순덕을 풀어주려다 순덕에 의해 죽고 순덕 역시, 전쟁광 군인들에 의해 죽는다. 전쟁광 군인의 목욕물을 끓이거나 주인 잃은 돼지가 삶겨지던 커다란 솥 안에서 전쟁광 군인 역시 죽음을 맞는다. 아들내외의 피난길에 함께하지 못한 노파는 불타오르는 집안에서 죽음을 맞으면서도 지슬을 품는다. 잘 구워진 지슬은 곶자왈 피난민들에게 마지막 끼니가 된다.


‘저 소녀가 빨갱이 폭도입니까?’ 끝내 총을 쏘지 못한 군인이 상사인 전쟁광 군인에게 묻는다. <지슬>은 소위 ‘편’을 가르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다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무엇 때문에 이 난리가 벌어지는지 모르는 민중들에게 미군정은 일제식민지 시대와 다를 것이 없고, 군인들은 전쟁광이 되거나 또 다른 민중이 되거나이다.


최근 한반도에서는 남한의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에 맞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카드가 제시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강대국의 전문가들로부터 한반도 전쟁가능성이 얼마나 농후한지에 대한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인 남과 북의 국민들의 실제 삶과 관계없이 전쟁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명분이 내걸리든 전쟁이 벌어지면 남과 북의 국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마치 이제 막 상장한 기업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마치 체스게임의 말처럼 다뤄지고 있는 이 불편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쟁은 아주 작은 계기를 통해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바삐 살아가느라 전쟁의 끔찍함과 참혹함에 대해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순덕이를 만든 것은 전쟁 그 자체이다.

글 : 배네(한국여성단체연합)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