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성평등 민주주의 포럼> 광장의 여성들과 민주정치의 진화
〇 일시 : 2025년 5월 26일(월) 14:00~17:00
〇 장소 :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B2)
〇 주최 :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
〇 후원 :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〇 취지 및 배경 : 2024년 겨울,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광장이 열렸습니다. 그곳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모인 이들은 여성 시민들이었습니다. 광장은 저항의 공간을 넘어,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쓰는 실천의 장이 되었습니다. 분노와 절망을 넘어, 여성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직접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은 여성 주권자의 실천과 감각이 민주정치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살펴보고, ‘‘참여·평등·돌봄과연대·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평등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고자 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〇 사회 : 배은경 한국여성학회장
1. 발표
∙ ‘광장’은 끝났는가?: 다시 묻는 민주주의와 페미니즘 정치의 지평 |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엄혜진 교수는 윤석열 퇴진 촉구 광장을 기점으로, 이른바 '계엄 광장' 이후의 민주주의 회복과 복원이 과연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를 근본적으로 물었다. 민주주의 회복 및 복원 과정에서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주의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오히려 여성들이 주도한 광장 정치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이번 광장에서는 기존 정치가 하찮게 여겨온 ‘투쟁, 돌봄, 연대’가 주요한 정치적 가치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여성들이 몸으로 실천하며 축적한 젠더화된 정치 경험의 발현이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말벌 동지’, ‘남태령’ 등에서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는 연대의 정치로 확장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광장정치가 늘 존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예외적 사건’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완성을 향한 여성들의 열망이야말로 지금의 정치 구조를 전환시킬 중요한 동력임을 강조했다.
2. 패널
∙ 평등 (발표 :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비상행동 상황실 행사기획팀 활동가)
광장을 ‘평등집회’로 기획하고, 광장의 구조와 메시지가 성평등의 정치 공간으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를 살펴봤다.
임선희 사무처장은 비상행동이 기획한 ‘평등집회’를 중심으로, 광장을 성평등한 정치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소개했다.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한 비상행동 상황실은 ‘평등한 집회를 위한 약속문’을 제안하고 차별금지, 인권 보장, 발언 기회의 형평성 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사회자가 약속문을 낭독하고, 시민 발언을 사전 확인함으로써 평등한 발언 환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시민 설문에서도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은 시민이 31%에 달할 만큼, 이 실천은 집회 현장의 문화와 구조 자체를 성평등한 민주주의로의 방향으로 전환시킨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나아가 성별에 따라 달리 경험되는 집회 공간을 성찰하고, 여성이 정치 주체로 설 수 있는 물리적·상징적 기반을 재구성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간의 평등 기준을 새롭게 설정한 의미 있는 사례로 제시되었다.
∙ 참여 (발표 : 박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비상행동 상황실 시민참여팀 활동가)
광장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발화한 경험을 중심으로, 시민성의 변화와 정치적 감각의 확장을 살펴봤다.
박희원 활동가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광장의 문화와 실천을 통해, 참여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조명했다. 여성들은 ‘응원봉’, ‘키세스’, ‘남태령’ 등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상징을 통해 정체성을 발화했고, 이는 기존 정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던 다층적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참여는 단일한 정치성이 아닌, 다양한 삶의 조건과 감정을 반영한 ‘다다름’의 정치였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인한 분노, 평등 수칙으로부터의 안도감, ‘파면 이후의 세상’을 향한 상상 등은 각자의 동기로 작동하며 광장에 나서게 한 동력이 되었다. 여성들은 단순한 참여자를 넘어 발화의 주체로 나섰고, 이는 시민성이 재구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타인의 존재를 듣고 환대하는 과정 속에서 광장은 다양한 주체들의 교차와 연대를 실험하는 민주주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농민, 전장연 활동가, 팔레스타인 여성, 부당해고 노동자 등 다양한 이들의 정체성과 투쟁이 서로 교차하며, 광장은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펼쳐냈다.
∙ 돌봄과 연대 (발표 : 김소라 제주대 사회학과 강사)
자발적 실천이 돌봄과 연대로, 연대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과정. 광장에서 드러난 새로운 민주주의의 기반을 ‘돌봄과 연대의 정치’로 의미화했다.
김소라 강사는 광장에 모인 여성들이 실천한 돌봄과 연대의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의 감각이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었는지를 조명했다. 청소, 간식 나눔, 감정노동 등 일상적인 돌봄 행위는 단순한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으로 작동했으며, 이를 통해 ‘정치’의 범주가 감정과 관계, 실천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염려는 기존의 정치적 요구와는 다른 차원의 돌봄 감각으로, 민주주의를 감정과 관계 속에서 새롭게 경험하도록 했다. 남태령 현장에서 추운 날씨에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람이 많을수록 덜 폭력적일 것이라는 믿음 같은 감정적 염려가 농민의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돌아보게 했으며, 이러한 감정이 신뢰로 이어져 폭넓은 연대의 조건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이처럼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염려에서 비롯된 돌봄은 공공성과 윤리성을 갖춘 ‘돌봄의 정치’로 자리 잡았고,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연대와 돌봄이 광장의 ‘일시성’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일상의 정치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덧붙였다.
∙ 지역 (발표 : 최나현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강사)
서울 중심을 넘어, 부산 등 지역 여성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다층적 민주주의와 시민 주체의 확장 가능성을 조명했다.
최나현 강사는 광장의 정치가 ‘서울 중심성’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지역 여성 시민들의 실천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다층성과 정치 주체의 다양성을 확장했는지를 조명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참여와 실천이 왜소화되고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에서 많은 시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서울 집회 참여’를 통해서만 느끼고, 자신의 지역 집회 참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역 여성들이 자신의 참여를 의미화하려면, ‘부산 활동가’ 혹은 ‘TK의 딸’처럼 상징적 정체성을 지녀야만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서면 집회에서 ‘무지개존’을 만든 사례, ‘부산퀴어행동’ 조직, ‘갱상도 말벌’처럼 SNS 기반으로 조직된 청년 여성·퀴어들의 실천 등이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정치 행위로 나타났다. 비수도권 여성운동이 자원은 빈약하지만 그만큼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행동 역량을 축적하고 있으며, 이들은 광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운동이 충분히 포용하지 못했던 이들을 포함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와 운동 진영에 이들을 받아낼 ‘틈’과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3. 질의 응답 및 전체 토론
질의응답과 전체 토론에서는 조기 대선과 남성 중심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 돌봄과 배려의 가치를 어떻게 민주주의와 시민성의 핵심으로 재위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또한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교차적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경험한 배제와 이를 드러낼 수 있었던 광장의 가능성, 지역운동의 특수성과 주체의 다양성, 그리고 광장 내에서조차 발생한 갈등과 긴장 속에서 연대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2030 남성의 참여 부족과 극우 정치에 대한 경향, 돌봄의 권리로서의 재구성, 다양한 존재들이 말하고 환대받는 광장의 힘에 대한 성찰이 이어졌다.
이번 포럼은 온/오프라인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 시민들이 주도한 광장 정치의 실천이 단발적 저항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과 성평등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과정이었음을 다양한 논의를 통해 확인하는 자리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성평등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들을 조망하고, 여성들이 중심이 된 광장의 경험이 민주주의에 남긴 의미와 파장을 다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한편, 오는 6월에도 [제2차 성평등 민주주의 포럼]이 이어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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