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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 비전논의를 진행하며 어느 활동가의 쉽지만 어려운 글 - 

손 철사.jpg

<여성연합 활동가들이 만든 각자의 손 철사 아트. 이 손이 개인의 삶과 세상의 쓰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을 것이다. @여성연합>


내가 속한 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이 어느덧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고 이 시기를 기념하여 ‘여성운동을 잘하기 위해(또는 여성운동의 확장을 위해)’ <비전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리고 나는 여성연합에서 활동한지 내년이면 만으로 딱 10년이 된다. 2007년 6월 여성연합 활동을 시작한 나에게 먼저 활동한 선배가 말하길 “네가 제일 불쌍해. 차라리 상황 어려워지고 들어온 누구는 힘든 상황이라도 인지하고 왔지, 너는 운동이 한창 잘 나가던 끝에 들어와서 성과나 혜택을 누린 것도 아니면서 과제만 짐처럼 맡았잖아.” (정확히 이런 문구는 아니었지만 이런 의미의 말이었다. 이후 여성연합의 활동을 외부에 소개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여성연합은) ~ 그랬다고 합니다”라는 말을 종종 썼던 것 같다. 여성연합에서의 나의 운동 경험과 여성연합이 성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너무 달라서 이 차이를 줄여서 내 것으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여성연합’에서 내가 담당하는 일은 그 일대로, ‘여성연합 이름으로’ 연대해서 풀어나가는 일은 그 일대로 ‘여성연합의’ 운동은 의미 있고 즐거웠다. 법제도나 정책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의견들을 모아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분명 그 시도는 작은 참여와 변화를 만들어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일 중에서도 운동인 이유, 수많은 운동 중에서도 여성운동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깨달음도 있었고, 어느 해인가 사무실 활동가들이 나와 한둘 만 빼놓고 우루루 퇴사했을 때도 ‘남겨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남은’이라는 프레임을 갖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그 과정과 노력들 속에서 늘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조직’에서 계속 활동하는가? 소위 말하는 여성연합을 대표하는 주요활동 담당도 아니요(여성연합의 주요활동분야는 나의 전문분야나 주된 관심사와 불일치하다.) 정치사회와 운동사회 전반이 나의 주관심사도 아니며 개인적으로 끈기가 있는 성격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페미니즘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면 연합체보다는 개별단체나 네트워크가 생각과 행동을 펼치기에 좀 더 나을 것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금․기획 업무를 보다 잘하고 싶다면 이 분야의 전문단위로 가면 더 일을 잘한텐데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시한번, 나는 왜 이 조직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지?      

 

그러던 중 재작년 여름,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일이 생겼다. 상반기 사무처 평가 때 한 신입활동가가 여성연합의 주요 운동방식인 ‘현안대응’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답한 것이다. “전 ○○의 문제제기를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제 생각엔 50%는 같이 논의해서 개선해나갈 수 있겠지만 나머지 50%는 여성연합이라면 ‘어.쩔.수.없.다’고 생각해요.”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니! 흔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쩔 수 있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운동 아니던가! ○○의 문제제기는 불과 몇 년 전 나의 문제제기였을 수도 있는데 한 조직에 오래 있다 보니 조직의 정체성을 핑계로 나도 관성에 젖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런 모습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때부터 내 활동의 고민은 활동가, 즉 사람에게로 더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이런 조직의 형태로 운동하는 것이 과연 활동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87년 선배들이 그 시대의 상황과 활동가들의 욕구에 맞게 세운 현 조직의 틀이 2016년에도 여전히 같은 의미로 존재할 수 있을까? ‘여성연합의 모모씨’가 아닌 ‘모모씨가 활동하는 여성연합’으로서 생각을 바꿔볼 순 없을까? 지금의 대표들이 20대에 경험한 민주화운동, 사무처장들이 20대에 경험한 학생운동과 현 활동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20대의 운동은 분명 다르며 운동을 보는 시민과 사회의 상황도 다른데 기존의 운동방식과 조직 틀이 익숙해 변화의 실질적인 행동엔 게으르지 않았나 이것 또한 기득권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을 나를 포함해 기존 조직의 어느 정도 연차 이상 활동가들은 늘 해야 할 것이다.       

 

‘세대론’으로 보자면 30년에 한 번씩 세대가 바뀐다고 한다(이것도 좀 바뀌어야 될 통계인 것 같지만). 여성연합 30년 비전논의의 ‘30년’이 주는 의미가 그래서도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지난 30년 동안 여성연합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준 영향들은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30년의 사회와 개인의 삶을 위해서는 이제 그만 기존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단계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할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2004년 ‘여성운동 전망 찾기’부터 시작되어 10년이 넘게 여성연합의 비전논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어떤 이에게는 10년 간 반복된 문구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지금의 고민들이 활동의 실체인 활동가 한 명 한 명에게 의미있는 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 이 맘 때 나와 여성연합은 어떤 모습으로 운동하고 있을지 아직은 뿌연 안개 속인 것만 같지만 조직의 형태에 관계없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사실 그게 진짜 비전이지 않은가.

 

 

여성연합 모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