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은,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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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접어들고 가장 행복한 일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두 달은 밤엔 밤대로, 낮엔 낮대로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끝내 ‘넉 다운’된 시간이었다. 올 여름이 유독 더웠다는 것은 ‘폭염 24일, 열대야 32일’ 등의 수치나 ‘가장 더운 여름’ 등의 수식어 없이도 체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아파트 한 채에서 세 명의 여성과 함께 하우스 쉐어링을 하고 있다. 집 전체를 통틀어 (전기세 폭탄 걱정에 맘껏 가동할 수도 없었겠지만) 에어컨이 없다. 선풍기 한 대와 닫아본 적 없는 창문으로 여름을 지냈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현관문은 커녕 창문을 활짝 열어두지도 못했을 것이다. 열대야 보다 불안과 공포에 더 밤잠을 설칠 테니까. 낮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초조해하느니 ‘더위 난민’으로 바깥을 전전하는게 더 나았다.

집에서 하기 힘든 일이 또 있었다. 가사노동이다. 기본적인 집안 청소와(특히 창문도 없는 화장실) 빨래 정도는 살기 위해 최소한으로만 해야 했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를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림질과 요리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내 한 몸 건사하면 되는 필자는 집에서 거의 음식을 해먹지 않고 가사노동의 양도 얼마 되지 않지만, 온 식구의 가사노동을 홀로 짊어지는 여성들의 여름은 그래서 더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더위의 기세가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지는 않는 듯하다. 기후변화연구소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한여름 평균 최고기온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다. 반면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 5곳 중 4곳은 가장 더운 1급 지역에 속해 있다. (출처 : 더위 불평등, 강북은 왜 강남3구보다 찜통일까, 한겨레, 2016-08-12)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자가용을 통해 이동하고 집에서 전기세, 가스비 걱정을 덜 하거나 또는 걱정 없이 냉난방을 할 수 있는 사람.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 시원하고 쾌적한 녹지가 있는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 
경제력 있는 이들의 에너지 과잉 소비는 기후변화를 앞당기고, 이러한 이상기온을 피할 수 있는 것도 경제력 있는 이들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재원도 인프라도 부족한 빈곤층은 더 덥고 더 추운 곳에 거주한다. 정부는 ‘폭염대응 종합대책’을 수립·실시하고 지자체는 선풍기를 지원하고 무더위 쉼터를 운영한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전기요금 부담에 선풍기도 틀 수 없는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혹서와 혹한이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은, 당연하지 않다. 불평등한 기후라는 구조의 문제는 개인의 자구책이 아닌 국가의 대응으로 해결해야 한다. 늦더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곧 겨울이 오고 추위와의 전쟁이 시작될 터이다. 신뢰할 수 없는 기상예보가 아닌, 불규칙적으로 발송되는 긴급재난문자가 아닌, 기후재난과 불평등의 해결책을 국가는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기후재난 속에서도 국가의 부재를 목격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여성연합 고래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