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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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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대낮 종로 한복판에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불과 몇 년 전 ‘있잖아...... 나, 낙태했어.’라며 속삭이듯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에 던져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낙태’는 입에 담기 어려운, 입에 올리면 안 되는 주제였다. 무수한 여성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경험. 그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무엇이 우리들의 경험을 삭제하는가? 왜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소하게 취급되는가?’라고 여성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SNS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임신중단 경험에 대한 공개적인 말하기와 질문이 시작되었고 2016년 10월 29일 광장에서도 이러한 말하기와 질문은 이어졌다.

 

이런 말하기와 질문은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명하며 의사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데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한국은 형법에 낙태죄를 두어 낙태를 한 여성과 의료인 등을 처벌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예외적인 사유를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명시하여 처벌을 면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번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이 ‘내년에 신생아 2만 명 더 늘리겠다’는 저출산 보완대책을 확정한 국가정책조정회의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표면적인 정책 논의에는 없었지만 갑자기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 항목이 추가됐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의료인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임신중절수술을 막으면 그 만큼 신생아 수가 늘어난다고 생각한 걸까? 참 우습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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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낙태죄 폐지’ 흐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질문하는 것이 ‘한국에서 낙태가 죄로 처벌됐었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 때 인구조절을 위해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낙태’가 권장됐던 것을 알고 있고, 비록 사회적으로 유통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할머니, 엄마,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맥락 아래에서 여성들이 임신중단을 ‘결정’하고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라고 말한다. 

 

‘낙태죄’는 여성들이 임신중단을 결정하게 되기까지 존재하는 무수한 삶의 맥락과 현실적 조건들은 삭제시킨 채 단지 여성을 ‘범죄자’로, '부도덕한 선택'을 한 ‘이기적인 여성’으로, ‘무책임하고 문란한’ 여성으로 위치시키며 여성에 대한 낙인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개인, 여성에게 전가한다. ‘낙태죄’는 예외적인 허용 사유를 통해 국가가 인정하는 생명, 국민의 기준을 승인함으로써 기준에 맞지 않는 생명, 국민의 기본권은 무시하거나 배제한다. ‘낙태죄’는 공익으로서의 태아의 생명과 사익으로서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구도 속에서 여성의 문제는 사소한 일, 사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여성을 끊임없이 공사이분법 체계 안에 가두는 성차별 구조를 은폐한다. ‘낙태죄’는 높은 수술비용, 안전하지 않은 의료 환경에의 노출 등 여성의 안전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낙태죄’는 원하지 않는 관계 유지 요구와 보복, 금전요구 등 남성의 협박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여성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진짜,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낙태’는 여성인권의 문제이자 건강권의 문제로 인식된다. 1979년 UN 34차 총회에서 선포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법적 조항들이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폐지할 것을 권고했고,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권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2011년에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한국 형법 조항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낙태를 합법화한 다른 나라들보다 임신중절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한국에서 낙태율이 왜 더 높은지 그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 보는 시선 속에서 ‘법’을 무기삼아 여성의 몸을 통제⦁규율하려는 ‘낙태죄’로는 그토록 해결하고 싶어 하는 저출산 현상을 바꾸지 못할뿐더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형법의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결정이 부담이나 낙인이 되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성적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적 조건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10월 29일 집회에 참가한 한 여성의 말이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호주제 폐지를 통해 평등한 기반을 마련했다면 이 시대 페미니스트의 과제는 낙태죄 폐지다.”
그녀들과 함께 어깨걸고 낙태죄 폐지를 향해 아자 아자~~!
 

김민문정(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칼럼_낙태_김민문정_2016110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