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촛불광장에 더 많은 문제제기와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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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은 망하기 직전이 되었다.
모든 것은 이화여대의 달팽이 민주주의의 승리에서 시작되어, 버려진 태블릿 PC속 파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는 동인이 되었다. 다행히 마지막 희망인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의 바다를 이루며 세월호 사건 때 ‘침몰’한 대한민국을 건져 올리는 중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지난 대선 때 박근혜의 참모습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고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지금까지 공모한 새누리당, 재벌, 언론, 법조계는 등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는지,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상황은 박근혜와 최순실, 그 부역자들의 잘못과 더불어 더 뿌리 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청산하지 못했던 전근대성의 그림자와 맞닥뜨린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 시기 경제성장을 위해 ‘정신과 마음’은 경부고속도로에 묻어야만 했다. 사회전반에 걸쳐 만연한 가부장적 문화는 군대문화와 결합되었으며 이제는 ‘꼰대’로 명명되며 우리의 일상은 물론이고 무의식 깊은 심연에까지 자리하고 있다. 법과 규칙, 정의는 문서상으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은 지켜야 하지만, 나와 나의 주변은 ‘예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 많은 사람의 협조와 공모, 집행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근대성은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위계에 근거한 관계 맺기는 초면에도 나이를 묻고 학교와 학번을 물어 서열을 정한다. 서열의 위에 위치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말과 행동을 해도 되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반대로 서열의 아래에 위치지워지면 불합리를 감수해야만 한다. 학교나 고향 등을 매개로 하는 집단은 강력한 공동체성과 함께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이 집단의 폐쇄성은 끌어주고 봐주며 집단 속의 은폐된 것들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이러한 게이트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전근대성의 가장 핵심에는 권력과 이 권력에 의한 배제와 특권 행사가 있다. 때문에 여성, 이주, 장애, 성소수자 등에 대한 관심이 없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수자의 불편함은 물론 차별적 문화와 구조를 느끼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눈과 귀가 있으나 차별을 볼 수 없고 알아차릴 수 없다. 더욱이 차별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상처입음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울 수 있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도 그들의 특권이다. 차별을 이야기 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예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된다.
‘지금 광장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이고 박근혜 탄핵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DJ. DOC의 수취인분명은 일부 여성단체가 문제제기해서 무대에 서지 못하게 했다’, ‘광화문에서 성추행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극히 일부의 일이다, 이 문제보다 탄핵이 중요하다’, ‘박근혜는 ○○년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나는 박근혜에게 미스 박, ○○년 이라고 하는데 찬성한다. 그래서 내가 ○○년이 된다면 기꺼이 ○○년이 되겠다’. 이상은 촛불광장에서 벌어진 성차별과 여성혐오 논란에 대한 댓글과 의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여성’이여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딸이어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는 박근혜가 ‘전근대성’에 기반하여 대통령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원수의 역할을 ‘연기’했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고,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비판하는 광장의 말들 중 일부는 ‘여성’임을 욕하고 비난한다. 이러한 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논점을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여성혐오’를 실천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로이 만드는 지금 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능하게 했던 예외, 특권, 불합리, 무책임, 불법, 부끄러움 없음과 광장에서의 꼰대 짓, 위계폭력, 성폭력, 전근대성, 소수자 혐오 등이 아닐까.
민주주의의 광장은 누군가의 독점적 무대가 아니며 시민은 이성애, 남성만이 아니다. 차별을 제기하는 인권감수성, 젠더인식에 눈뜰 때 광장은 ‘비통하고 화난 사람들’이 모였으나 이 국면이 끝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 마음’(『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파머, 김찬호 옮김.. p21)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시민혁명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도 나라를 바꾸는 페미니스트들은 광장에 나선다.
 
남은주(대구여성회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