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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 토론회]

 

 

 

 

#MeToo 운동 '긴급'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전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Me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피해경험 말하기를 지속해왔지만,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간략한 패널 토론 후 자유토론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성폭력을 근절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일시 : 2018년 2월 26일(월) 오후 7시

장소 : 종각역 마이크임팩트 13층 라운지

 

주최 :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프로그램 

사회 :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패널 :

이나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신희주 (감독/ 여성문화예술연합)

연극인

김명숙(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

송란희(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등

 

자유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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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

사회적 변혁운동으로서 #MeToo 운동 읽기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I.

 

차별의 경험이든, 트라우마의 경험이든 문득 스쳐지나가듯이, 그 순간의 위축된 감정이 떠오르고 섬뜩해지듯이 다가온다고 봐요...(중략)...저는 차별경험이 찰나적이고 그 찰나의 감각이 반복된다는 걸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한 적이 있었어요. 차별경험은 가시적이고 만질 수 있고 통계로 잡히는 게 아니니까요. (김일란 감독의 인터뷰 중)

 

이 만져질 수 없는 경험‘들’을 어떻게 제가 재현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오늘 저는 고통스러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고 새기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과의 예상치 못한 조우의 과정에서 저는, 타자들의 이야기의 결을 따라 연결된 나의 경험을 소환하고 뜻밖에 내 안에 깊숙이 각인된 ‘역사’적 기억들을 필연적으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들은, 우리 자신이 그 속에 늘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떠올라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기 때문에 현재 진행형입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유해 나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들의 아픔을 통해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게 됩니다. 문득문득 가시처럼 떠오르는 상처의 감각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미처 돌보지 못한 이들의 흉터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공유된 감정의 몇 가지 줄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한 검사의 인터뷰가 있던 날,

저는 오랜 시간 봉인해 두었던 아팠던 기억과 마주하였습니다.

지금이라면 용기내어 말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여러번 글을 작성하기도 하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만 용서하면 된다 폭로로 더 나아질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글을 적은 파일은 삭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 일상은 이전과 다를 것 없이, 하지만 조금 더 예민해진 채로 여러 날이 지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OOO 대표의 폭로가 나왔습니다.(한 피해자의 글)

 

며칠 전 이윤택 선생님의 성폭력 사건이 밝혀지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있었던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치유된 줄 알았던 전 다시 심장이 뛰고 옴 몸이 뻣뻣하게 저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페이스북에 제가 아는 사람들의 글이 쏟아 졌지만 전 용기가 없어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이윤택 선생님의 기자회견장에 갔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그래서 제가 받은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서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전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특히 성폭행 부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는 말씀에 저는 기자회견장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피해자의 글)

 

서지현 검사의 공개적 고백이 있은 후 한 달여간, SNS와 언론을 달구고 있는 감정의 폭발적 흐름은 사실 많은 이들의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등, 피해자들 옆에, 뒤에 함께 서서 그저 응원하고 지지하고 손잡겠다는 공감의 메시지는, “나도 같은 여자다”라는 선언과 연결되며, “가슴이 터질” 듯, 그래서 “한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이 흐르는” 감정선을 구성합니다. ‘근근이’ 살아남은 자들 간 형성된 공감대는 희생된 자, 사라져 간 자들의 ‘이유’를 묻는 심문 행위로 연결됩니다. 심문의 과정은 “너무 어려서” “그게 뭔지 몰라서” “내 잘못인 줄 알아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묻어 두었던 개인의 경험과 필연적으로 만납니다.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 속으로 자맥질하다 보면,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 내면에 깊이 잠복해 있던 두려움에 대한 예기치 못한 돌출을 경험합니다.

 

수 차례 주위에 상담을 했지만 그러게 그 자리에는 왜 갔느냐, 왜 가만히 있었느냐 하는 물음과 질책뿐이었습니다. 교내에서 조 교수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소위 질투를 받을만한 일이었고 유난히 조 교수에게 자주 불려갔던 여학생들은 꽃뱀 취급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저와 다른 피해자들은 소문이 잘 못 날 게 두려워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습니다. 그냥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요. (한 피해자의 글)

 

수많은 선배들과, 이후의 수많은 후배들이 꾹꾹 참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통 속에 참고 있을 겁니다. 더 이상 연기 못하게 될까봐, 잘못 찍히면 다시는 이 세계에 발붙이지 못할까봐 두려워서요. 혹은 아예 꿈을 포기해버리는 일도 더러 있었지요.(한 피해자의 글)

 

피해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렵고, 뒷담화의 먹잇감이 될까 두렵고, ‘잘못 찍혀 조직을 떠날까,’ 커리어를 포기할까 두렵고, 세월이 지나 ‘그 세계를 떠난 후’에도 끔찍한 가해자를 다시 만날까 무섭고, (또) 찾아올지 몰라 두렵고, 보복할지 몰라 밤길을 되돌아보고, 발신인 없는 전화에 심장이 덜컹하고 머리가 쭈삣 서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면, 그 공포는 기실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여기, 늦은 밤길을 지날 때, 낯선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새로 사귄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여전히’ 느끼는 일상의 불안 또한 과거의 그 감각과 ‘몸서리치게’ 얽혀 있지 않은가.

 

어제 이윤택씨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피해자의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 이후, 또 그가 살짝 웃으며 알고 있다는 대답을 내놓은 이후, 김보리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노출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는 쇼크 상태가 오기도 했습니다.....(한 피해자의 글)

 

공유된 두려움의 감각은 한 갈래로는 “지금도 멀쩡한” 가해자, ‘실존적 가해자 남성들’에 대한 공분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한 갈래로는 “미안함”과 죄책감마저 형성합니다. 그때 말하지 못한 나, 중단시키지 못한 나, 사과를 요구하지 못한 나, 다른 이들이 고통을 당할 때 선뜻 손 내밀지 못한 나, 외면한 나, 듣지 않은 나. 우리 모두는 사건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동조한 자이자, 가해자이며, 시스템에 순응한 자이자, 종내는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한 책임을 진 자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식/비공식적으로 피해자를 응원하고 자신의 피해의 경험을 들여다보며 쓰다듬는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발을 응원하면서, 가부장체제에서 기득권적 위치에 있는 남성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성폭력적 사회 속에서 나도 어떤 가해의 일부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 안 된다고 계속 교육받는 것, 도와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것,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살아있는 죽음”이라고 했다. 한국사회가 바로 그것을 강요해 왔다. ‘미투’는 전에도 있었지만 계속 사라지고 지워져 왔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 <황해문화>에 발표된 것은 반년 전이었지만, 그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다. (전지윤의 페이스북)

 

미안한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넘어 결의의 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개별적 경험들이 다른 여성들의 경험을 경유하고 지금껏 축적된 해석 도구를 통해, 구조적 차별의 효과로 인지되기 때문입니다. 개별적 응원과 지지의 감정,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여성들의 경험과의 연결성 인지, 스스로 겪었던 고통에 대한 환기와 커밍아웃, 무지와 무책임에 대한 자각과 죄책감 발생, 변화를 위한 다짐으로 나가게 되는 이 서사구조는 “마치 각본화된 것처럼,” 지난 ‘강남역 살인사건’ 때와 유사합니다(한국여성민우회, 2016).

 

II.

 

그렇다면 왜 이들은 지금 ‘새삼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혹은 미국의 #MeToo운동과 비교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의 여성운동이 왜 조용한지’ 공격할 때마다, 한국 진보여성운동의 도도한 역사, 반성폭력 운동의 지난한 세월부터 먼저 살펴보시라고 제안합니다. 길게는 일제 강점기부터,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더 최근에는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진 관습들에 의문을 던지며 차별적 구조에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국의 여성운동의 역사를 보면,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으로 인한 부침이 있었으되 단절과 생성이란 이분법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서구의 여성운동에서 WAVE라는 용어가 파장, 파동, 물결, 파도의 다중적 의미를 지니듯, 한국의 경우도 잠복과 돌출, 후퇴와 전진, 흩어짐과 뭉침, 진지전과 전면전 등을 통해 파장을 일으키고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미국 허리우드발 #MeToo 운동과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고백이 이번 미투운동의 도화선 혹은 변곡점이 될 수는 있으되 원인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운동은 당대 ‘집단 여성’들의 긴급한 요구, 그 요구가 들리는 특수한 맥락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가부장 가족체제의 끝자락, 저출산 시대의 신호탄을 울리며 남아선호사상으로 가장 극심한 성비불균형 시대에 탄생(1990년 셋째 아이 성비, 여아 100명당 남아 193명, 1993년 206.6로 정점에 탄생), 자본주의에 의해 침식되고 있으되 잔존하고 있는 모순적인 가부장 체제, 신자유주의 사회의 역설 체현(개인 간 경쟁 문화, 개인이라는 주체 개념의 성장,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민감성 증진,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피해자, 본격적 비혼 세대 등), 도구적 가족주의의 역설 체현(가족계급 형성으로 가족 내 딸아들 차별의 상대적 감소), 세상에서 가장 빨리 타인들과 접속할 수 있는 능력(디지털네이티브 세대, Statista, 2016), 9년 간의 보수정권과 사회전반의 보수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공유된 심문되지 못한 죽음에 대한 책임, 소진되지 않고 잠재화되었던 상실감과 애도의 욕망, 역차별 및 남성혐오 논란, ‘이미 성취된 성평등’이라는 ‘착시현상’, 진보여성운동의 성장으로 제도적 차별이라는 가시적 장애물이 제거된 듯하나, 여전한 여성혐오적 문화, 성차별적 사회 전반에 대한 잠재된 분노. 사실 ‘2015 강남역 살인사건’은 이러한 배경 속에 축적된 감정들을 촉발한 계기가 되었고(이나영, 2016), 이후 촛불시민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시민들은 오랜 기득권, 반민주, 부패 세력이자 식민지 ‘백성 마인드’를 갇힌 ‘보수 세력’에 저항하며, 계급부정의 이외에 다른 영역에 무감한 ‘진보 세력’들과도 쟁투해 왔습니다. 이 세력들이 진영을 넘나들며 형성한 팔로센트릭한 남성문화(성별+학벌+혈연+지연에 기반)를 날카롭게 비판해 왔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진영논리(예: 홍준표 vs. 민주당 인사들, 혹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김어준 vs. 금태섭, 금태섭 vs. ‘지니’들)는 그래서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III.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의 이 뜨거운 ‘미투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연쇄 폭로전’을 넘어서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성폭력을 성별권력 관계의 문제, 구조적 성차별의 단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별 문제가 아니라,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라니요? 나쁜 손버릇, 성추문, 악마 같은 가해자의 악행, 특정 조직의 문제라니요?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합니다.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gender) 자체가 위계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남성만 인간인 사회에서, 여전히 남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지만(남성은 호명되지 않음, 문제 발생 시 특정인의 잘못으로 개별화), 여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여기자, 여검사, 여의사, 여교수, 여배우, 여대생, 여성노동자로만 호명됨. 문제발생시 ‘여성 집단,’ 여성성의 문제로 과잉일반화).

그러므로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흠결의 문제로 축소하는 악마화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위장된 안도감’을 제공하고 문제의 일시적인 봉합을 꾀할 뿐입니다. 특수한 피해자의 문제로 축소해 ‘피해자의 자격’을 질문하고, 사생활을 캐고 신상털이를 하며 인격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심화시킵니다. 적반하장식 책임전가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넘쳐 남는 현실은, 가장 오래된 적폐가 성차별적 구조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metoo의 불길 앞에 차마 직면하지 못하고 가해자만 악마로 만들거나, 심지어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믿거나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요. 과도하게 몰입해서 #나도가해자다에만 빠져들면 구조악을 드러내고 격파하는 힘이 모이지 않고, 그렇다고 #가해자 악마화에 몰입한들, 그리하여 내가 도덕적임을 증명한들(사실은 누구에게 증명하는 건지?) 달라지는 게 없죠. 심지어 피해자이자 방관자 가해자가 되면 피해자로 나서면 안 된다는 #피해자 자격론까지 나오는 판이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찢어지면서 탓, 탓 질을 하는 사이, 그렇게 소모되는 사이, 왜 그런 일이 생겼나라는 좀 더 큰 질문은 흘러나갑니다. (노혜경의 페이스북)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일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관료제 위계 체제와 시장 질서 속에서-보통의 일상 과정에서-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런저런 생각과 반응에서 야기된 결과물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부정의”를 구조적 억압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억압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주요 제도들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기 때문에 지배자나 독재자 일인 축출 등으로 구조적 부정의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1990[2017], 107-108). 이후 영은 다른 책에서(2011[2013]) “정의를 위한 공유된 책임은 정치적 책임”이라 주장하면서(246), 구조적 억압의 과정과 결과-부정의-에 책임 있는 우리 모두는 법적 책임에선 자유로울지 모르나, 정치적 책임에선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정치적 책임의 과제를 1) 구조적 균열을 드러내는 것, 2) 피해자의 적극적 요구, 3) 제3자의 역할, 4) 국가나 국제기구의 역할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의를 빌어 이번 #MeToo 사태에 대한 우리의 과제를 짚어보려 합니다.

 

첫째, 피해자의 요구와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절대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에 각인된 아픔을 헤치며 갖은 위험을 무릎쓰고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취당하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권력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의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겪는 특정 고통이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발생한 부정의라는 것을 드러내고, 그 과정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 힘을 가진 사람이 실제 과정을 바꾸어 내야 한다는 도덕적 요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48).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신의 지난 세월, 축적된 피해자성을 들여다보되 피해자라는 폐쇄적 격자구조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의 고통을 드러내고, 타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만으로 연대를 유지하고 구조적 변화를 도모하긴 역부족입니다. 절대적 다름을 전제한 타인과의 연대가 불가능하듯, 피해(자)의 동질성에 기반한 공감과 연대 또한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과거에 오랫동안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동일시하며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당위는 현실에서 상대와 나의 차이를 확인하는 좌절로 이어졌어요. 돌이켜보면, 그건 실패가 예정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오만한 태도였어요. (<공동정범> 김일란 감독의 인터뷰 중)

 

피해의 경험은 나를 무기력한 피해자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한 제도를 바꾸고자 정당하고 정의로운 투쟁의 대열에 서게 하는 주체 (재)구성의 주요한 동력입니다. 유사한’ 경험을 폭로하고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고, 그 과정에 다시 내가 상처 입는 도돌이표가 아니라, 나의 피해 경험이 우리 사회 속에 어떻게 위치지어져 왔는지 고민하면서 사회구조와 연결지을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체로 재구성됩니다(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

둘째, 특정 사안의 제3자이자 동조자, 방관자인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한 자신의 가해자성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고, 구조적 부정의의 (재)생산 회로를 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권력을 소유한 (특권계층의) 행위자는 구조가 현상 유지되는 데서 이익을 얻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조가 변화하는 데서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영, 2013: 247)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합니다. 의료, 보건, 안전, 교육, 과학 체계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남성들의 이익에 영합해 왔으며, 이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계속 드러내야 합니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특히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권력과 이익을 둘러싼 투쟁에 참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공적인 논쟁을 지속적으로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248). 이는 대안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인식론적 기반이 되며, 개인적 문제의식을 묶어, 차별적 구조 변혁을 위한 집단적 운동으로 성장시킬 동력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미세한 차이의 결들을 생산해 낸 구조를 인지하고, 그 구조들을 생산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하고 혜택을 입은 우리들의 정치적 책임을 환기할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차별적 언어들과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차별, 추행, 희롱, 폭력 등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도성’과 상관없이 다양한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에 의해서 또는 '타자' 들에 의하여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은 그러한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던가 또는 '몰랐다'고 해서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추행, 희롱, 폭력, 차별 등에 대한 이해는 한 번의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육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지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선 사회의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인지도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을 그러한 행위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에 대한 이해는 지속적으로 예민화되고,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포함한 교육기관, 기업, 종교기관 등 다양한 공공기관들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지속교육’을 필수적으로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지금의 “미투 운동”은 장기적으로는 근원적 변혁을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을 마련하는 ‘사회적 변혁운동’으로 자리잡기 힘들다고 나는 본다. (강남순의 페이스북)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 운동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을 체현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변혁적인 움직임입니다. 비합리적, 비이성적, 반인권적 남성들을 ‘인간화’하지 않으면 공멸하겠다는 자각,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적극적인 남성 개조가 필요하다는 혁명적 정신의 발로입니다. 페미니즘 교육 필수화에 대한 요구가 ‘남성인간만들기 장기 프로젝트’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서 내가 확인한 것은 재능 있고 의욕적이던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서 문단과 업계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반강제적인 탈출을 감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여성들은 실제로 죽었고 또, 사회적으로 천천히 죽어갔다. (양민영, 2018년 2월 12일)

 

양민영(2018)의 “사회적 타살”이라는 개념은 실존적 살인을 넘어 여성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주변화하는 일상적이되 제도화된 행위,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이해하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불인정과 무시의 문제가 어떻게 불평등한 재분배의 문제로 연결되는지, 성폭력의 문제가 어떻게 노동시장의 성차별과 연결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러한 통찰은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중층적 차별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구조적 과정을 보다 공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주요 행위자입니다. 부정의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존재감은 비로소 나타날 것입니다. (예: 미국의 EEOC, 손해배상제도 등.....)

그러나 정부의 “규칙과 관행은 부정의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보다 부정의를 생산하거나 영속화하려는 권력자나 과정”에 더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시도는 종종 “부분적으로 실패하거나 전적으로 실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영, 2013: 250-251).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정부에게 전적인 결정권을 주어서도, 전적으로 기대어서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구조적 과정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투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균형을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투쟁의 결과를 반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정부에 공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소리 높여 비판하고, 쟁점을 조직하고, 분노를 표출하며, 연대하여 변화를 위한 공적인 압력을 끊임없이 행사해야 합니다.

 

IV.

 

여성들은 사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무지함으로 ‘면피’하려 하거나, 심지어 ‘물타기’ 등 진영논리로 끌고 가려했던 모든 이들의 갖은 시도를 돌파하면서 생존자에서 증언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자격을 묻던 이들에게 가해자의 보편성을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아픔을 헤집고 직시하며 생을 걸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전면화함으로써 기존의 선/악,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을 타파하고 성평등이 부재한 민주주의라는 언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나라가 아니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성’들의 시대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여자가 열등하고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라던, 그래서 ‘몸뚱이’에 불과한 도구적 존재라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대여성집단사기사건’은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고 동맹할 것입니다. 과거를 식민화하고 현재를 착취하고 미래마저 약탈하고 있는 팔루스 연대의 해체를 위해, 그래서 다음 세대의 ‘우리’들이 조금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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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와 #ㅇㅇ계_내_성폭력 연결 짓기

 

 

 

 

 

 

신희주(감독/여성문화예술연합)

 

 

 

 

 

 

안녕하세요. 저는 여성문화예술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희주라고 합니다. 우선 시작하기 앞서 지금 용기있는 목소리로 고발을 이어가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여성은 저 뿐만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으며, 지지의 목소리가 온‧오프라인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세상의 절반인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를 고발하는 우리들은 절대 혼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여성문화예술연합은 2016년 10월에 시작된 ‘#ㅇㅇ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생긴 9개 조직의 연대체로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정책과 제도로서 해결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여러가지 활동을 해왔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발 이후 주요 언론에서는 한국의 미투 운동이 난생 처음이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도했지만, 바로 1년 전에 문화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여성 신진 작가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던 모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해고되었으며,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고양예술고등학교 실기교사로 근무했던 당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던 배용제 시인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연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남배우 A 성폭력 사건'의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2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언제나 늘 유구하게 존재해왔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 다시는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며칠 전인 2월 2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계 전 분야에 걸친 실태조사 실시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내 신고 센터 설립, 성폭력 의혹이 있는 예술인의 보직 임용을 막고 지원 배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문체부가 여성문화예술연합과의 지난 1년 간 정책 논의 과정에서 미온적이었고 타부처로 떠넘기려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번 발표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책을 책임질 소관 부처라는 것을 공표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문체부가 발표한 정책은 작년 2017년 2월 저희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문체부에 이미 전달했던 정책 제안서의 일부입니다. 1년 동안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저희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연극계의 심각한 연쇄적이고 집단적인 성범죄가 알려지고 나서야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체부는 “지난 2월에 여성단체와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성폭력 실태 임시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지난 1년 간 저희의 항의에 대해 문체부는 ‘소 귀에 경 읽기’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임시 실태조사 같은 경우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 연락을 전혀 받지 않다가,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고 나서야 어렵게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는 2017년 10월에 실시되었던 ‘예술분야 성폭력 실태 시범조사'의 조사 문항에 대한 자문, 문항 수정 등의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아직까지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문체부가 지난 1년 간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지금 미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피해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체부의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대책이 장기적인 접근의 대책일 뿐이지 지금 당장 시급한 연극계 성폭력이나 캠퍼스의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폐쇄적인 극단 혹은 캠퍼스에서 일어났던 집단적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연이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 사회가 과연 이 목소리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온라인에서는 집단적인 2차 가해가 빈번하고, 언론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받아쓰기만 하며 가해 행위를 불필요하게 묘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을 파악하여 당장 필요한 긴급 지원을 하고, 사건을 목록화하고 사건 별 공소시효를 따져 수사 기관에 사건을 접수하고, 보복성 고소에 대비하고, 성범죄를 묵인하고 방조했던 주변인들을 조사하여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는 등의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에 저희 여성문화예술연합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성명서를 통해 요구하신 진상조사위원회를 포괄하는 문체부 대책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이번에 알려진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들이 커다란 문화 권력을 수십 년간 행사해온 유명인이고, 집단적인 묵인과 방조, 협력이 연쇄적인 성범죄가 가능하게 했으므로 수사기관과 별개로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책과 제도의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현재 권인숙씨가 위원장으로 위촉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온라인이나 기사로 고발된 사건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건을 심층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조사를 통해 파악한 개별 사건을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단기적, 장기적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2016년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실명으로 고발한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명예훼손 및 모욕 등의 보복성 고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고소가 끝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당시의 고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모두 그러한 보복성 고소 때문입니다. 현재 고발 중인 피해자들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복성 고소로 인해 고통받는 일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이 함께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여성문화예술연합 또한 지난 경험을 발판삼아 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형사 처벌 폐지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강간문화를 부시는 이 거대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적극적인 협력을 표명해야할 것입니다. 수많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던 이윤택은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찬조 연설을 했었습니다. 이윤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닙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탁현민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도록 용인되는 것, 성폭력 전력에도 불구하고 손한민씨가 임명된 것,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공작이라고 떠드는 홍준표, 김어준이 여전히 사회 권력층인 것. 이런 것들이 더해지고 더해져, 이윤택과 같은 남성이 여성들을 손쉽게 착취하고도 여전히 사회의 존경을 받는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이 거대한 강간문화를 타파하고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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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운동 이후,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일하는 세상을 향해

 

 

 

 

 

 

김명숙(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

 

 

 

 

 

 

- 최근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한 폭로를 계기로 문화예술계, 교육계 등 다방면에서 ‘#ME TOO' 운동이 벌어지고 있음. 이전에도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성희롱, 성폭력 생존자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으며, 이들의 용기와 목소리가 현재 거대한 울림이 되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

- 이러한 전환의 시기,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통해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고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볼 것임.

 

 

○ <평등의전화> 직장 내 성희롱 상담 사례를 통해 본 여성노동자의 현실

 

- <평등의전화>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임. 2013년 236건에서 2017년 692건으로 약 3배 증가함.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건수

(단위: 건)

 

2013

2014

2015

2016

2017

직장 내 성희롱

236

416

508

454

692

(출처: 해당 년도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

 

-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바로 상담한 경우 보다 참고 견디다 한계에 이르러 상담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음. ‘짤릴까봐 두려워서’, ‘취직하기 어려운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라’, ‘경력이 짧아 이직이 어려워’,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말하기 힘들어’, ‘내 나이에 어디가서 이 월급 받을 수 있을까 싶어’, ‘남편이 아파 내가 일해야 하는데, 얘기하면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 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거나 ‘오히려 나한테 피해가 올까봐’ 등의 이유를 들고 있음.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 하였을 경우,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보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큼.

 

-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피해자에 나쁜 소문, 피해자 유발론, 꽃뱀이라는 낙인,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폭언 또는 폭행, 업무상 불이익, 피해자에 대한 징계나 해고 등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조치를 경험한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불이익조치 경험 여부

 

2015

2016

2017

빈도(건)

%

빈도(건)

%

빈도(건)

%

155

34.0

166

42.5

227

63.2

아니오

301

66.0

225

57.5

132

36.8

(출처: 해당 년도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

 

- 상담사례 중에도 직장 내 성희롱 건을 사업장 내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상담이 상당함.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거나 ‘개인 간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 취급을 하고 ‘쉬쉬 하며 넘어가려’ 하며 ‘너를 아껴서 그랬을 것’이라는 등 피해자가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 하는 순간부터 ‘작은 일에 예민하다’는 비판을 받고, 가해자를 감싸는 반면 피해자는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골치덩이’로 취급됨.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을 심각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음.

 

-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노동자의 평등권과 존엄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근로능력을 저하시키고, 불안, 스트레스, 분노, 자책, 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함.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

 

- ERC(Ethics Resource Center)의 연구에 따르면, 신고를 할 경우 보복행위를 받게 될 것이라는 노동자의 믿음은 그 직장 내에서의 잘못된 행위(‘법 또는 조직의 윤리적 기준에 위배되는 일체의 행위’로 차별, 성희롱, 안전규정 위반행위, 절도, 거짓말, 사적 이익추구 등)에 대한 신고율 뿐 아니라 잘못된 행위 자체의 발생률까지도 좌우한다고 한다. 즉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때, 성희롱 행위자가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면 그 조직 내에서 성희롱은 구성원들에게 용인되는, 더 이상 불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결국 성희롱 자체의 발생율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된다는 고리가 형성되며, 이는 성희롱 신고만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 신고, 일체의 노동권 행사 등 모든 종류의 권리 행사 및 문제제기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남. 이러한 사업장은 결국 불합리한 운영으로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고 경쟁력도 상실할 뿐임.

 

○ 직장 내 성희롱 방조에서 근절 대책 마련으로

 

-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사건은 2012년 249건에서 2016년 55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으나 검찰 기소 건은 해마다 1~4건, 지난 5년간 9건에 불과함. 시정조치도 대부분 행정종결(진정취하 또는 시정완료)임.

 

 

- 직장 내 성희롱 진정 건이 증가함에도 직장 내 성희롱 관련하여 지도점검한 사업장 수는 1,132건에서 535건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하였고, 적발 사업장 수 또한 감소하였음. 결국 고용노동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무관심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관계 부처의 변화가 급선무임.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와 불이익조치 금지, 성차별적 조직문화 개선 등 관련 업무에 대한 철저한 이행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고 근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함.

 

-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경찰, 검찰 조사 과정에 참여하는 각각의 담당자들은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가해자 관점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하여 피해자를 더욱 힘겹게 하고 있음. 이들이 직장 내 성희롱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이 필요함.

 

- 또한 개별 사업장에 직장 내 성희롱 해결을 위한 규정 및 담당기구 마련을 강제하고, 피해자 관점으로 사건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담당자에 대한 관련 교육을 강제해야 함. 이러한 여력이 없는 소규모 기업을 위해 국가차원의 무료상담과 조정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야 함.

 

○ 범정부 차원의 성희롱, 성폭력 대응체계 구축

 

- 현재, 성희롱 관련 소관 업무는 고용노동부(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여성가족부(양성평등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나뉘어 수행(양성평등기본법의 적용범위가 ‘국가기관 등’으로 이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각급학교로 한정되기 때문에 민간 부문은 거의 전적으로 고용노동부 소관임)되나 유기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음. 따라서 공공 및 민간 부문 모두를 포괄하는 범정부 차원의 성희롱, 성폭력 대응체계(기구)를 마련하여 체계적인 대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

 

-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문제제기 하면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를 협박하고 사건을 무마시키는데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있어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