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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여성연합 인턴활동가 한별

 

  2월 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제 126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주관했습니다. 저는 여연의 인턴 활동가로서 평화로에 함께 섰습니다. 당사자 할머니들도 못 나오셨을 만큼 참으로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분들이 참석해 만들어주신 덕에 외롭진 않았던 1268번 째 수요일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회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야 그동안 존재만 알고 있던 수요시위 현장에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역대 성명서들도 그제야 읽어보았으며, 보충수업을 하듯 유튜브에서 검색해 본 동영상으로 어렴풋이 현장의 분위기를 익혔습니다. 그동안의 불참에 대해서는 나름의 이유들이 준비돼 있지만, 방금도 저 단어를 변명이라 쓸 지 이유라 쓸지 잠시 고민한 것을 보면 마냥 떳떳한 마음은 아니긴 했나봅니다. 준비 과정 내내 뭔가 모자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연단에 서는 순간이 최대한 늦게 오길 빌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겠지요.
 

  참가자 A가 아닌, 주관 단체 인턴 활동가로서, 성명서 낭독자로서 느낀 수요시위는 준비과정에서 느낀 수요시위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여전히 갸우뚱한 지점도 있었으며, 1268회, 26년이라는 시간 앞에선 새삼 무게감을 느꼈고, 40명이라는 숫자에선 조급함을 느꼈습니다. 다만, 요 몇 번의 참가로는 제 감상을 완성하기엔 모자랐기에 벌써부터 너무 많은 문장을 완성해 두진 않겠습니다. 익명의 참가자 a로서 곧 또 들르겠다는 말로 짧은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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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여성연합 인턴활동가 현찬

 

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는 수요시위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ㅡ 지극히 저의 관점에서ㅡ 문제들에 나름 첨예한 관심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학생으로 정체화 해왔습니다. 이번 제1268차의 수요시위에 앞서, 사전에 해당시위 파악을 목적으로 두 번 정도 참석을 했던 것이 저와 수요시위의 첫 조우였습니다. 논문과 책들로 구성된 언어 온실에서만 살아온 제게 시위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시위를 참관하는 와중에도, 그 곳으로부터 배운 지식과 관점들이 끊임없이 비집고 나왔습니다. 가령 "민족이란 개념과 그것이 배태하는 경계와 차이가 운동을 촉진하는 유일한 동력일까?"와 같은 물음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의문과 의구심을 안고 사회의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제1268차 수요시위를 시작 하겠습니다'라는 사회 멘트가 그런 의구심과 생각들을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해당시위의 사회자로서' 여성연합 대표님들의 인사말, 정대협의 경과보고, 자유발언들을 지켜보면서부터 1268회 차라는 무게감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탄핵집회의 촛불은 곧 꺼질 것이라던 어느 위선자의 말이 무색하게, 수요시위는 수십 명에서 시작된 집회가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명의 집회로 성장하며 26년째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 거쳐 가고, 원하고, 바라는 지점의 문제해결이 왜 제게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는지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이상으로 제1268차 수요시위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위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위를 끝맺는 저의 멘트는 어쩌면, 제가 썼지만, 마치 저를 향해 이 오랜 시위가 던지는 말 같았습니다. 유학 비자를 위해 처음으로 광화문에 들렀던 약 6년 전 미국 대사관은 시위장소인 평화로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때도 이 시위는 저와 건물 두어 개를 사이로 두고 틀림없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제게 첫 조우는 마냥 낯설었던 수요시위는 이제 광화문이란 공간에 함께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훗날에 다시 수요시위를 한 번 더 참가할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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