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논평]


낙태죄 폐지를 향한 청와대의 전향적 입장표명을 환영한다

 

청와대가 어제(26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친절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원’에 답변하였다. 청와대는 현행 낙태죄 관련 법제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해가기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입법부의 노력을 요청했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낙태죄 폐지를 향한 진일보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온 우리 여성들은 이러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환영한다.

 

먼저 답변에 나선 청와대 조국민정수석이 낙태 용어 자체가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임신중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낙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에서 매우 적절한 대처이다. 형법상의 낙태는 불법성이 전제된 범죄의 개념이므로,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의에 있어 임신중절 혹은 임신중단과 같이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적절하다. 여성계는 낙태를 대체할 용어로 모자보건법 상의 임신중절이 아닌 임신중단으로 사용해왔다.

 

청와대는 임신중단에 관한 법제에 관하여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임신중절은 처벌”되고 있으나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으며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는 문제에 공감했다. 또한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실도 정확히 지적했다.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소와 처벌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더라도 여성들의 생명과 삶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도 직시했다. 이러한 법제의 문제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를 향한 진전된 논의의 문을 연 것이다. 형법 상 낙태죄 폐지를 비롯한 법규 개폐 논의가 신속하게 진전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임신중절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잘 지적하였다.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미혼이라서', 그리고 '사회 경제적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선택하며,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을 위협받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은 인사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임신한 여성일 수밖에 없다”며 “임신한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태아의 생명권과 충돌하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임신중단을 둘러싼 우리 사회 논의가 “태아의 생명권”을 넘어서야 한다. 임신중단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생명권, 재생산권, 건강권, 삶에 대한 통제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임신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맥락을 인정해야 한다.

 

청와대는 답변을 통해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였다. ① 현실파악을 위한 2018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 실시, ②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을 통한 사회적 확산, ③ 입법부 차원의 논의 ④정부 차원의 임신중단 관련 보완대책 등이 그것이다.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점이 있다. 먼저 형법 상 낙태죄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태조사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사 목적과 대상 선정부터 조사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실태조사는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뤄지고 있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임신중단으로 인해 여성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가 잘 파악될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빠른 시일 내 현실적인 후속 대책이 발표되기를 기대한다.

 

헌법재판소의 형법 상 낙태죄에 관한 위헌 법률 심판사건은 아직 심리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언제 심리를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검토 일정은 어떤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임신중절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은 현재적이므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심리 개시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여성의 현실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적 균형점은 낙태죄의 피해 당사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현행의 법규와 사회적 현실을 바라볼 때 찾아지는 것이다.

 

입법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법률 심판과 별도로 현행의 법규를 어떤 내용으로 개선해야 할지 선제적인 검토와 논의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가 답변에서 제안한 임신중단 사유(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경우,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양육이 불가능한 상태) 외에도 여성들이 임신을 중단하게 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현행의 모자보건법에 허용사유를 추가하는 방식보다는 전면적으로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차원의 임신중절 관련 대책도 보완이 필요하다. “청소년 피임 교육을 보다 체계화”한다는 정부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현행 성교육표준안부터 전면 재검토하여야 한다. 여성단체들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으로 가득 찬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이 청소년 성교육에 부적절하다는 점을 수차례 지적해왔다. 피임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성을 바라보는 정책적 관점부터 점검해야 하며, 교육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의 유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2018년부터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전문 상담을 시범 실시하는 방안의 구체 내용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및 지자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여야 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모·부성권 보호 및 태아의 건강보장 등 적절한 출산·육아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가 피임이나 임신중절에 관한 상담을 하게 될 경우,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과 관련한 후속대책도 다방면에서 강구되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이고 경제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라는 사회적 낙인은 오롯이 여성 개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장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에 대한 정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청와대가 제시하고 있는 대책들은 당장 시행 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이 대책들이 마련되는 기간 동안 여성들은 여전히 청와대가 답변한 대로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자연유산유도약의 합법적 국내 수입, 유통 등의 방안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여성만 오롯이 책임지는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재생산에 관한 권리의 보장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여성단체들도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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