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시
산 중턱에 '우리'집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기 시작한다. 콧등에는 어느 새 땀방울이 맺히고 장을 봐온 물건을 들고 있는 손아귀에서도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사지도 후들거렸다. 보퉁이를 막바지 계단이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내려두고 등을 돌리고 선다. 아래로는 도시의 화려한 외관이 펼쳐져 있다. 높이 솟아 있는 아파트며 잘 닦여진 도로와 낮고 높은 빌딩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펼쳤던 시선을 집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 그야 말로 닥지닥지 붙은 스레트 지붕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산비탈이 잡힌다. 시멘트를 흙 위에 성의 없이 가져다 바른 골목길은 군데군데 끊어지고 금이 가 있다. 그리고 그 깨어진 틈에서는 원래 이 곳의 주인이었을 잡초들이 키가 삐죽하게 자라있다. 더 산비탈이 가까운 집 근처에는 누가 일구었는지, 거름 냄새가 자욱한 텃밭도 있다. 심어져 있는 것은 고작 호박이나 고추, 상추 정도이지만 울타리를 쳐 놓은 폼은 어엿한 밭뙈기 못지 않다.
이 밭을 지나 계단 끝 바로 두 번째로 끝 집이 우리 집이다. 계단을 오르자 대문 안에서는 개가 쇠사슬 목걸이를 질질 끌면서 발작을 하듯이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밥그릇으로 쓰고 있는 양푼이 요동치듯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며 쨍그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헉헉거리는 짐승 같은 숨소리도 저 덩치 큰 잡종개가 내는 소리다. 개소리에 불가한데도 집으로 다가서는 발걸음은 더뎌지고 숨이 턱 막혀온다. 개는 누런 색이다. 말로는 진돗개의 피가 반쯤 섞였다고 했지만 하는 짓은 완전히 잡종의 수준이다. 털이 어찌나 빠져대는지 마당에 빨래를 널 수도 없다. 많이 먹고 많이 싸대니 냄새도 많이 나고 청소도 하기 힘들지만 이 집에서는 나만 빼고 다 개를 귀여워하고 있다.
대문을 따는 소리가 들리자 개는 더 요동을 치고 씩씩대는 숨소리도 높아만 간다. 문 바로 앞에 굵은 쇠사슬에 메여있는 개는 목이 졸리는 것도 모르고 앞발을 쳐들고 반긴다. 하지만 나는 무섭고 성가실 뿐이다. 얼른 몸을 돌려 대문을 꽝 닫고는 집 안으로 내달렸다. 집이라고 해 봐야 스무 평도 안 된다. 급하게 지은 집이라 방은 쓸모 없이 크고 거실과 주방으로 쓰는 공간은 턱없이 작다. 큰방이 하나, 중간 방이 하나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으며 주방 겸 거실로 쓰는 두 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목욕할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은 집밖에 따로 가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다.
가지고 온 물건을 식탁 위에 던져 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결혼할 그 무렵이 떠오른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이 색다른 마을과 생활에 찌든 듯한 시어머니 될 사람이 너무도 생경했었다. 말이 없는 시어머니와 달리 싹싹한 인사를 건네던 나이든 시누이. 그리고 지금보다는 어린 강아지였던 개. 이 생소한 환경도 사랑이라는 것만을 믿고 쫓아올 만큼 그때는 결혼이라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날짜를 잡고 신혼 살림을 들이면서 약속과는 다르게 큰방은 내어주지 않겠다던 시어머니 말도 꺼림칙함 없이 따랐다. 다닥거리며 붙어 사생활을 보장받을 없는 집안 구조도 따로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
중간 방에 살림을 들여놓으면서 열자 짜리 장롱밖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을 때, 서운한 얼굴을 하긴 했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것이라 나중에라도 그것 때문에 혼수가 적다 말다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시누이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홀로된 시어머니와 같이 산다는 것이 어째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노릇이지만 그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나는 식당에서 일하다가 거기서 자는 날이 많다. 집에 있어 봐야 밤에밖에 더 있나. 너거 시누들도 직장 다닌다꼬 낮에야 집에 있나. 휴일에나 있을끼다. 그러니 밥 채리고 살림하는 거는 너거 둘 묵을거나 하면 댄다."
집 가까운 곳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 말은 정말 그런 것으로 들렸다. 때문에 집에 없는 시누이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만만한 일로 보였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다음 날 밥상을 받은 시어머니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며 둘이 잘 살아보라는 말까지 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았다. 교대로 근무를 나가는 남편의 시간에 맞추어 늦잠을 잤다가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늦게 오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신경 쓰지 않고 일찍 자고 싶으면 일찍 자고 늦게까지 안 자는 날에도 방에서 하고 싶은 소일거리를 하거나 혼자 텔레비전을 보았다. 일요일이 되면 늦잠 자는 시누들이 불편할까 봐, 서둘러 외출을 나가기도 했다. 얼굴 마주칠 일이 없으니 같이 살아도 그다지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이라면 부쩍 자라 가는 개였다. 앞발을 들고 서면 어느 새 사람의 키를 넘어버리는 덩치가 된 개는 내 놓는 일거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먹는 것도 그랬다. 둘이 먹는 음식에 남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사료를 먹이지 않았던 개를 위해 새 밥을 짓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털갈이를 시작하는 때가 되니 얼마나 많은 털이 빠지는지, 마당에는 온통 개털 뭉치가 굴러다니고 빨아 널어놓은 옷에는 누런 개털이 박혀 털어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다 보니 그 뒤치다꺼리를 해 대는 것에도 신물이 나고 개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매여만 지내다 보니 담 밖으로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동네가 떠나가라고 짖어대었다. 한 밤중에는 왜진 곳이라 짖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새벽에는 근처의 텃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의 인기척에 짜증이 날만큼 짖어대곤 했다.
미워하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데, 누구도 개를 어떻게 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고 들면서 귀엽다고 개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입도 떼지 않는 시누이나 시어머니가 특히 개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날은 놀라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어쩐 일인지 개는 더 싫어지고 미워지는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