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시
떼를 걸러 밥을 주거나, 주더라도 밍밍한 물에 라면 스프를 풀고 고춧가루를 팍 친 다음에 밥만 주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개는 밥 그릇 자체를 엎어버리곤 했다. 마당에 널부러진 하얀 밥알들을 치우는 수고는 또 내 몫이 되었고, 그 짜증에 개집에 물을 뿌리거나 빗자루로 때리기도 했다.
이런 개와의 신경전을 시어머니가 알았을까, 어느 날부턴가 개밥은 시어머니의 식당에서 날라져오기 시작했다. 동태찌개도 있었고 손님이 남기고 간 생선이 한 두 점 젓가락질 당한 채로 밥과 비벼져 오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집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도로변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다.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이라 작은 식당이었지만 손님이 끊어지는 날이 없었고 수입도 짭짤한 편이었다. 결혼하고 살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시어머니는 밑반찬을 가져다 먹으라고 했었다. 그래서 자주 드나들면서 반찬을 가져다 먹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아래시누가 눈을 뾰족하게 해서는 '언제까지 반찬을 가져다 먹을 것이냐'고 불만을 내뱉기 시작하면서 반찬 가져다 먹는 것도 그만두게 되었었다.
처음에는 요리 책도 보면서 멸치도 볶고, 감자도 볶았었다. 국도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것을 끓였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시누이들이 먹는 것은 내가 만든 반찬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시어머니에게 반찬을 가져오고 찌개를 가져와서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든 것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나 몰래 반찬과 어떤 때는 밥까지 가져다 먹고 있었다.
그 뿐인가. 목욕탕 청소를 마치고 들어오면 큰 시누가 다시 청소를 했다. 장을 봐서 냉장고를 정리해 두고 나면 다시 나가서 냉장고 청소를 하고 정리도 했다. 그것도 시어머니가 늦게 나가는 일요일에 꼭 그랬다. 사실 이런 것들도 같이 사는 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기지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은 분란 끝에 시어머니가 시누이에게 일 시키고 나 자신은 편하게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런 일도 말썽이 될 수 있는 일임을 알았다.
이런 생활 속에서 개밥까지 날라져 오자 정말 참기 힘든 모욕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장을 봐온 것은 별것이 없다. 그것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아랫배가 묵직해 오면서 찝찔한 무언가가 흐른다. 피였다. 결혼을 하자마자 생긴 아이였는데, 이제 사 개월 남짓 되었는데 하혈을 한 것이다. 팬티에 살짝 묻을 정도로 나오고 말긴 했지만 걱정도 되고 어쩐지 서럽기도 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결혼을 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임신한 것을 알았다. 기뻐하리라 믿었던 남편은 덤덤했고 시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알고는 몸을 반쯤 돌려 앉으며 조심하라는 말을 했었다. 뛸 듯이 기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져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영양제를 사다주는 사람도 없었다. 친정 동생이 아직 배도 부르지 않았는데 임신복이라며 선물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임신에 대한 표현은 그저 평범을 웃도는 과장된 연기일 뿐인가. 스스로의 처지와 알고 있는 것과의 차이로 계속 울적함만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내비친 피 몇 방울로 더 정신 없이 저녁이 가고 있었다. 늘 하던 것처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청소도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고 둘이서 멍하니 텔레비전도 보았다. 시어머니는 여전하게 현관문을 소리나게 열고 들어와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시누이도 열두시가 넘어갈 듯 말 듯 하는 시간에 정확하게 돌아왔다.
"피가 났었어."
"피? 왜?"
"모르지. 그냥 조금 나고 말았어. 아무래도 길이 너무 가파른가 봐."
"조심하고 다녀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냐?"
"내일 상태 봐서 ..."
내가 덤덤하게 얘기해서 일까. 남편도 너무 덤덤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슴에서 치미는 알 수 없는 열기에 나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다. 옆방에서는 시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와 뒤척이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누이는 아직도 자지 않는지 조그맣게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짖고 있었다. 누가 온 것일까. 누가 지나갔을까. 사슬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가 몸을 솟구쳐 짖는지 개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까지 들린다. 헉헉대는 숨소리와 낮게 그르릉거리는 소리도 냈다가 다시 미친 듯 발작적으로 짖고 있었다. 애써 눈을 감아보지만 소리에 따라 그 모습까지 그려지고 있었다. 자꾸만 몸이 뒤척여진다. 짜증이 나긴 하지만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일어나기가 귀찮아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남편인데, 아무래도 잠이 깬 것 같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도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며 누어만 있다.
"개 좀 어떻게 해 봐."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말이 나오고 말았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이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다. 말 없이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개의 사슬이 쩔그럭거리며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와 하는 몸짓이겠지. 꼬리까지 살랑거리고 있을 것이다.
둔탁한, 개집을 때리는 소리와 그 보다 조금 덜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개는 조용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적을 둔탁한 소리가 대신 채우고 있었다. 쩔그럭거리는 사슬 끄는 소리와 빗나가서 엉뚱한 곳을 때린 듯한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저 납작 엎드려 맞아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개가 안쓰러워진다. 개와 남편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시어머니가 깰 것 같은 불안함, 그리고 깨고 나면 좋은 소리를 듣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나고 말았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둔탁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서는데 머리를 산발한 채 막 방문을 열고 나오는 시어머니와 딱 마주쳤다.
"뭐꼬?"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짜증의 빛이 역력하다. 새벽잠을 깨운 소리와 뭔지 모를 불만으로 눈이 세모로 찢어진다. 난처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약 좀 가져와 봐라."
남편은 들어오다 내 얼굴을 보자 주저앉고 만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 불을 붙이는데 가만히 보니 허벅지 쪽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