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개 같은 날...(3)

여성연합 2002.11.11 조회 수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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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



다가가 보니 남편의 허벅지는 개에게 물어 뜯겼는지 바지가 찢어져 있었다. 찢겨진 옷 사이로 굵고 깊게 패인 송곳니 자국이 보이고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충격과 아픔으로 더 깊게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빗자루로 맞던 개가 급기야 남편을 물었던가 보았다.

그제서야 잠이 깬 시어머니가 와락 소리를 지르며 남편에게로 달려간다.
"뭐꼬. 개한테 물맀나? 아이고 우짜노."
시어머니는 허둥거리며 우짜노를 연발로 쏟아내며 허둥대고 있었다. 찢어진 옷을 들추며 상처의 크기를 확인하고는 자지러지게 소리도 지른다. 그 와중에도 시누이는 방문을 열고 내다보지도 않는다.
주위를 확인하다가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머하노? 어서 약 갖꼬 온나. 아이구 이 피 바라."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약을 찾아 가지고 온다. 소독약을 꺼내고 상처에 바르는 색깔이 있는 약도 꺼낸다.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다 필요 없을 것 같아 다시 집어넣었다. 소독약을 들이붓는 시어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허벅지에는 개의 굵고 긴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아귀의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송곳니 자국 주변이 벌써 보라색으로 멍들고 있었다. 깊게 패인 상처에서는 피가 조금씩 야금거리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시어머니도 놀란 듯이 보였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픔과 충격으로 노랗게 질려 가는 남편을 보면서 피 묻은 내 팬티도 아직 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라도 잃을 만큼 과장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했지만 너무 덤덤한 마음이 들었다. 이 순간에도 나의 머릿속에는 '이제는 저 개가 팔려가겠지.'하는 생각만 맴돌았다.

"안되겠다. 퍼뜩 병원에 가자. 택시. 그래 택시를 불러바라."
"숙아. 숙아 좀 인나바라. 아직도 자고 있나."

내가 옆에 있는데도 시어머니는 시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 그제서야 시누이가 기운 빠진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온다. 역시 시누이도 과장된 연기를 포기한 것일까. 덤덤한 얼굴로 전화를 하고 있다.

"네. 네. 그 산비탈 근처인데요. 네. 큰길 쪽으로 차 한 대 보내주세요."
시누이가 전화를 끊자 말자 시어머니는 남편을 부축하고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팔에 기댄 남편은 나를 돌아보고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했지만, 시어머니는 내 쪽으로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마당에 나서자 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고 줄을 한껏 당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을 잠시 혼자 세워두고 시어머니가 빗자루를 들었다. 개의 등에 정통으로 들어맞는 빗자루. 개는 죽을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지 집안으로 피한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매질은 그칠 줄 모르고 개는 숨소리까지 죽이고 가만히 피해 있었다.

"엄마 그만해라. 오빠 병원에 가야지."
시누이가 시어머니의 팔을 멈춘다. 거친 숨을 고르며 시어머니는 아들의 팔을 잡아끌고 대문을 나섰다. 대문 밖을 배웅하던 시누이는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대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개를 불러내어 어루만진다.

"왜 그랬니."
개는 귀를 팍 뒤로 젖힌 채 시누이 앞에 엎드려 있다. 꼬리를 살살 흔들다가 슬픈 눈으로 시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개는 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건장한 아저씨가 와서 개를 끌고 가는데 개는 뒤돌아보고 또 보며 가지 않으려고 힘껏 버티었다. 그러다가 몽둥이 세례를 받고서야 포기하고 길을 갔다.

개를 팔아버리기로 결정하는 날, 시어머니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차마 반대도 못하고 돌아앉아 있었다. 시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섭섭한 척도 하지 않았고 시원한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개를 파는 것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남편의 상처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대단치 않은 것이었지만, 남편은 웬 일인지 강력하게 개를 키울 수 없음을, 함께 살 수 없음을 주장했다. 시어머니나 시누이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개가 떠나고 남편은 개집 청소를 했다. 빠져 있는 누런 털과 집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오물을 깨끗하게 떨어내었다. 그리고는 개집을 부셨다. 잘게 부신 것들을 산 쪽으로 끌고 가서 버렸다. 그리고 마당을 다시 한 번 쓸고 물 청소를 했다. 개 한 마리였지만 그 부속물과 오물의 양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화단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털과 또 어디선가 기어 나올지 모르는 오물은 하루 청소로 다 솎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개집이 있던 장소에는 이제 검고 습한 네모난 자국만 남았다. 개집의 크기만큼의 검고 습한 자국. 개가 발을 딛던 벽에는 검은 그림자만 남았고 더 이상 양은 그릇이 짤랑거리는 소리도 헉헉거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미워하는 개가 없어졌건만, 나는 시원하지도 않고 답답함이 풀리지도 않았다. 팔려간 개는 자유를 얻었을까. 죽음보다 더 깊은 답답함에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대문 안에서 남편이 나의 그런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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