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02.04.17 조회 수 4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9월 11일의 미국 테러 사건은 21세기의 새 국면을 알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픽션세계에서 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정도로 이는 전 세계인이 가졌던 인습적인 사고의 허점을 찌른 사건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점 조직 국제테러 네트워크가 세계 최강의 국가 심장부를 강타할 수 있었던 사건은 사이버세계를 통한 가상의 국가와 그것이 지니는 위력을 과시하였다. 근대 이래의 국가개념이 다시 토론되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9. 11 테러와 아프간전쟁은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의 심성을 키우지 않는다면, 21세기는 그야말로 '전쟁과 고난의 시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의 결과와 의미를 성찰할 시점에 이르렀고, 특히 전쟁이 여성과 연루되는 방식을 고찰하고, 이런 위기 앞에서 여성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1. 전쟁의 성별화된 영향: 피해자 여성

성별(젠더, gender)와 전쟁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습적인 견해는 남성은 전쟁을 만들어내고, 여성은 평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 민족이나 사회집단을 대변하는 남성은 다른 집단의 남성과 싸우고, 여성은 이런 전투의 바깥에 있으면서, 남성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런 점에서 전쟁의 남성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성학자나 실증적인 연구들은 전쟁이 여성 및 남성과 맺는 관련성에 대한 기존의 가설에 도전하고 있다. 전쟁은 여성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전쟁 만들기는 여성의 참여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군사적 혹은 안보와 관련된 결정에 어떤 발언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먼저 전쟁이 여성에 끼치는 영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여성은 여러 방식으로 전쟁에서 고통을 겪는다. 죽음, 성적 악용과 고문,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집과 공동체를 잃어버린다. 흔히 여성은 군에 종사하지 않으므로 여성은 전쟁에서 적게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효율적인 전쟁 제조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상자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폴 케네디(Paul Kenndy)와 잉고머 호칠러(Ingomar Hauchler)는 설득력 있게 전쟁의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전쟁에서 죽은 자는 1억4천만 명인데, 이는 1500년이래 전쟁으로 죽은 자의 2/3에 이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기술이 발전할수록 민간인 희생자는 증가하고 있고, 전면전(total war) 전략은 전쟁의 목표로서 전투요원과 민간인 사이의 구별을 종식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재난의 50%는 민간인이었으며, 1980년대는 그 비율이 80%로 증가하였고, 1990년에 이르면 그것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민간인 피해자의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Turpin: 801)

뿐 만 아니라 이런 죽음은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1960년대 이래 대부분의 전쟁은 개발도상국, 특히 아시아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군사적 개입은 주로 이전의 제국주의 국가들, 예를 들면 미국, 영국 그리고 나서 소련/러시아, 벨기에에 의해 유발되었다. 뿐 만 아니라 미국과 소련은 주된 무기 공급처였다. 따라서 젠더 라는 렌즈를 통해 전쟁을 분석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젠더, 계급, 인종 그리고 민족사이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을 분석해야 한다. 바로 이런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여성에서 여성은 전쟁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존재이다.

1) 전쟁 피난민으로서의 여성

여성은 전쟁에 의해 쉽게 뿌리 뽑혀진다. 전쟁은 총체적인 경험이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정체성을 파괴한다. 노동장소, 재산,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을 잃게 된다. 이 전쟁 피난민의 4/5는 여성이거나 어린 소녀인데, 이들은 추가적으로 피난과정에서 성폭력을 경험한다. 1992년 말까지 4600만 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는데, 약 3600만 명이 여성과 소녀이다. 전쟁에서 죽이는 것이나 죽는 것도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이 죽음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선발하여 죽일 경우 일차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남성이고, 포로로 잡히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것도 남성이기가 쉽다. 집단무덤에서 발견되는 시신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은 가족과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뒤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피난민 여성들은 어린이와 노약자를 돌보아야 하고, 음식을 찾고,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결국 여성은 확대가족 네트워크의 부양자가 되어야 하고, 의사 결정권은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2)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

ㄱ. 강간
전쟁시에 여성은 적군에 의해 쉽게 강간의 대상이 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전시에 일어난 성폭력 중 가장 끔찍한 사건은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에 의한 체계적인 강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르완다나 1981년의 방글라데시에서의 전시 강간도 잔혹한 사건의 하나였다. 그러나 문제점은 강간 그 자체에 못지 않게 강간을 받아 들리는 사회적 태도이다. 1995년 비인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NGO포럼에서 제네바헌장이 강간을 '명예에 반하는 범죄(a crime against honor)'로 규정하고 있는 사실이 비판되었는데, 이는 강간이 인간에 가하는 고문 방식으로서보다는 남성과 공동체의 명예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Yuval-Davis: 307) 강간당한 여성의 경우 전쟁의 성별화된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강간 사실이 알려지자 마자, 이 여성들은 주변 사람들의 존중심을 잃게 되고 살아 있는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의 지원도 상실하게 된다.

ㄴ. 매춘
전시 매춘은 경제적으로 강요되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강제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군부는 동·남아시아에 10-20만 명의 여성들을 동원하여 체계적으로 매춘을 강요하였다. 인로(Cynthia Enloe)가 지적하는 대로 매춘은 매춘여성과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기지 주변에 매춘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전체 제도의 문제이다. 즉 여기에는 남편과 애인, 술집 주인과 포주, 지역 보건담당 관리, 지역경찰, 나아가서는 지역 군대, 국군, 외국군 모두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군부는 성병 방지를 위한 정기검진을 통해 매춘여성의 삶을 통제한다. 또한 2차대전 시기에 미군 기지와 연결되는 매춘업소에는 백인과 유색인종 남성이 드나드는 입구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매춘과 인종문제가 연루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군사기지가 세워지는 곳에서 군대는 거대한 자본의 유입을 제공하고, 지역 정부는 성을 사고자 하는 군인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다른 수단을 지니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을 끌어들인다. 필리핀에서도 미군이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부림치던 어린 농촌소녀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일단 이 여성들은 순결을 잃었다는 것만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영원히 매춘세계로 내던져진다.

3) 전시 가정폭력

여성구타는 평화시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최근의 조사는 전시에 여성을 향한 가정폭력이 증대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에서의 성별화된 폭력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래서 가정에서부터 국제사회에 이르는 권력의 성별화된 작동방식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 벨그라드에서의 가정폭력에 대한 조사는 전시에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폭력이나 민족성이 서로 다른 부부사이에서 아내구타는 증대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성들의 알코흘 소비와 강간도 늘어났다.
그렇다면 왜 전시에 가정에서 여성구타와 강간이 증대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첫째로, 전시에 다량의 무기가 사회로 흘러 들어오고, 이는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최근의 범죄 연구나 안보연구는 무기의 존재 자체가 폭력 사용의 개연성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둘째로, 군인이나 재향군인들이 그들의 전쟁터에서의 경험에 의해 영향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절하고, 신경질적이고, 비관용적이고 그리고 공격적이다. 셋째로, 국가가 만들어내는 선전이 갈등의 해결수단으로 폭력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타 민족이나 인종집단에 대한 증오감의 선전은 쉽게 폭력의 증대를 초래한다.

4) 전쟁, 환경파괴 그리고 여성

사회 경제적 인프라 구조 외에도 전쟁은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이는 식량 생산자이자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은 여성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여성들은 주된 식량 생산자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여성은 식량의 80%를 생산한다. 여성은 연료를 모으고, 물을 구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전쟁이 경작을 방해하면, 여성의 과제 수행은 더욱 힘들어진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내전을 통해 경작지의 80%가 파괴되고 토지의 77%가 황폐화되었다.(Turpin: 805) 베트남에서 미군이 했던 것처럼 군대는 융단폭격을 자행하고, 이는 농민여성이 땔감을 모으는 작업, 농사를 짓는 일을 더 힘들게 만든다. 이에 못지 않게 식수원의 감염도 여성에게는 큰 난관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어린이 사망의 34.6%는 운반가능한 물 부족에서 오는 질병 때문이었다. 여성은 하루에 몇 시간을 걸어서 식수원을 구해야 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식수 확보에 소비하는 여성의 노력은 배가된다. 마찬가지로 걸프전쟁동안 이라크군이나 연합군은 자연자원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였다. 이라크는 기름을 바다로 퍼부었고, 미국은 화학과 핵 시설을 파괴하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은 성별화된 방식으로 전쟁의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5) 여성에 끼치는 군사비의 영향

전쟁이 가져오는 파괴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비에 사용될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이 무기구매를 위해 지출된다. 군사비는 세계가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의 5%를 차지하고, 이는 2차대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대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교육비의 3배이고, 주택비의 15배이다. 비커(Jeanne Vickers)는 군대의 병사 일인당 지급되는 비용은 취학 아동에 지급되는 것의 30배라고 말한다. 미국이 연구와 개발에 지출하는 비용 중에서 단지 1%가 환경보전을 위해 사용되는데 비해, 64%가 군대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군사비 지출이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위산업에 일하는 대다수의 여성은 저임의, 일관생산방식(assembly line)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런 노동은 미국의 경우 주로 유색 여성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전쟁과 그 휴유증을 논할 때, 성별화된 그리고 계급에 기초한 경험이 무엇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녀사이에는 전쟁의 경험만이 다양한 것은 아니다. 여성성의 군사주의적인 이미지-여성은 집에 남아 좋은 아내나 어머니가 되거나 혹은 여성들은 자원해서 방위산업에 자원하는 것-는 남성성의 군사주의적 이미지를 위해서 대단히 필요하다. 그리고 전쟁은 항상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형상화되고, 그래서 전투에 참여한 남성들은 '그들의 아내가 화덕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자신들의 귀환을 기다린다는 사실'에 의해 위로받거나 고무되어진다.

2. 군인으로서의 여성

여성은 평화주의자 혹은 전쟁 반대자로 정형화되지만, 여성들 역시도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고, 군대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자 시도한다. 최근의 여러 갈등과정, 예를 들면 걸프전쟁, 르완다에서의 대량학살,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등에도 여성은 참여하였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방위산업이나 무기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통해 전쟁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또한 여성은 군대 내에서 하위 직종을 맡으면서, 군대 내의 '여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은 항상 군대생활의 통합된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으로서 여성이 군대생활에 진입하는 것은 항상 편견과 남성적 공포를 낳는다. 군에 종사하는 여성의 압도적인 다수는 민간 노동시장에서와 마찬가지의 성별분업에 따른다. 예를 들면 비서직, 간호원, 교사 등의 직종에 주로 종사하고, 소수의 여성만이 남성들이 주로 담당하는 전투와 인명 살상에 참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군대 내에서 여성은 이등군인에 불과하다. 여성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군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미국 군대 내에서 여성은 지상전 뿐 아니라, 공군과 해군 전투에서 배제되고 있다. 군대 내에서 오히려 성차는 강조되고 있다.

더불어서 군대 내에서 여성 군인은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에 의해서 남성군인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남성들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여성에게도 징병제가 적용되는 이스라엘에서 여성부대에는 'khen'이라는 접두어가 붙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매력'이라는 뜻을 지녔다. khen 구성원의 주된 임무는 부대의 도덕성을 정립하고, 부대의 병사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 군대 내에서 여성만의 분리된 부대편성이 폐지된 이후 강간과 성희롱의 비율이 높아진 것도 바로 여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혹은 여성군인에 대한 남성군인들의 불안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Yuval-Davis: 308) 또한 남아연방의 군대에 대한 조사에서는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나 공포증이 남성군인의 훈련에서 활용되었고, 그래서 훈련과정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군인에게는 '계집애 같은 놈(faggot)'이나 '호모' 등의 명칭이 주어졌다. '너희 엄마에게나 가라'혹은 '가서 계집애하고나 놀아라' 등의 표현도 자주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군사적 역할은 성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계급과 인종에 기초하고 있다. 인로는 그의 책 <인종적인 군인들(Ethnic Soldiers)>에서 이차대전 중의 전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장 높은 비율로 미국군의 전투에 배치된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전투에서 배제되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 징병제는 특정한 체제 혹은 정부가 다수의 광범한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주된 방법이지만, 주목할 점은 군대에의 참여와 시민권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 일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 특히 미국에서 여성의 군 입대 비율과 수준이 높아진 것은 병역의무가 더 이상 시민권의 기표가 되지 않는 바로 그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Turpin: 309)

그러나 여성의 군대에의 참여는 여성운동이나 여성학 내에서 많은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미 군 위안부 문제에 골몰하면서, 일본의 여성사가들은 여성대중이 전쟁을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음을 지적하였고, 이는 여성이 단지 전쟁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였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의 국민화' 프로젝트는 당시 일본의 페미니스트에게 왜곡된 길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맥락에서 전쟁은 그들에게 수용할 만한 일이었다는 것이다.(우에노 치즈코: 56-58) 물론 이런 문제제기는 여성을 더 이상 역사의 피해자로 제한하기보다는 여성이 역사의 주체임을 밝히려는 여성사가의 노력에 못지 않게, 전후 독일의 과거청산과정에서 여성에 대해서도 전쟁의 책임을 제기하는 독일 여성사가들의 시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의 군사적 직업에의 참여나 그를 둘러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는 군대에의 참여를 시민권 개념과 연결한다. 시민권은 어느 정도는 한 사람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능력에 달린 것이므로 여성이 시민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군대에의 참여는 필요하다는 것이고, 뿐 만 아니라 군에서의 봉사는 여성의 정치적인 고위직으로의 진출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여성들은 군대는 본질적으로 성 차별주의적인 사회제도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여성은 이를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여성 다수가 군대에 들어가면 이를 통해 군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군대가 여성을 변화시킬 것'이라 응수하며, 군사주의에 대한 여성의 단호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현실로 존재하는 군대와 군사주의 문제는 오랫동안 여성들을 괴롭힌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군대를 거부해야 하지만, 독일 녹색당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처럼, 현실 정치에서 군대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럴 경우 여성운동이 어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하는가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는다.

3. 저항주체로서의 여성

저항주체로서의 여성을 제기할 경우, 우리에게 몇 가지 쟁점이 떠오른다. 우선 일반적으로 여성은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적이라는 여성주의적 입장이 있다. 여성의 평화지향성은 여성이 근본적으로 친밀성에 기초하여 돌봄이나 보살핌을 지향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차이에 기초한 여성성의 발견은 과거 여성성을 부정적으로 폄하하던 담론을 넘어서서 보다 긍적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혹은 여성은 본성적으로 남성보다 더 평화지향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생활상의 실천이나 노동방식이 생명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에 여성은 더 평화운동에 적합하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정현백: 109-10)

그러나 위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여성에게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는 담론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전쟁에 협조하는 보수적인 논리에 이용당할 수도 있고,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도 있고, 전통적으로 지지되어온 성별분업의 논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김귀옥: 193-4) 그러나 이런 본질론적인 논의는 우리가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이 더 평화지향적이라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조사도 여의치 않다. 한 두 번의 현장조사나 설문지 조사로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이나 남성 모두 역사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또한 남녀 모두는 그들이 처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무엇을 실천하는가 이다.

9. 11일 테러와 아프간전쟁 개시이후, 여성들은 남성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하였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전쟁반대여성평화행동>, <평화어머니회>, <전쟁반대여성연대> 등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들이 주로 하였던 사업은 테러와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서 발표, 두 번에 걸친 거리시위, 인터넷 신문을 통한 평화쪽지 날리기(현재 약 4500명 참가), 심포지움, 미국대사관 앞 1인 시위 등을 주도하였다. 또한 여연이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는 국제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평화운동의 측면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주었다. 그간 남성들이 통일운동에 보여온 열기를 고려하자면, 남성들의 평화운동에 관한 관심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여성평화운동이 부딪히고 있는 딜레마는 여성들이 훨씬 앞서서 평화운동을 시작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 내에서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대단히 낮다는 점이다. 여성이 수행하고 있는 평화운동을 어떻게 대중적인 정서와 접맥하면서, 대중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성들이 보다 진지하게 토론해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런던, 베를린, 할레 등의 도시에서는 수만 명이 참여한 반전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경우 불과 수 십명의 참여가 고작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아프간 전쟁 지원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의 성명서와 요구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보다 진전된 논의로 발전하거나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계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간 진행된 통일 중심의 통일논의를 어떻게 평화운동적 관점과 결합된 통일운동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한반도의 현실은 평화없는 통일, 통일 없는 평화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우리 통일논의는 지나치게 정치 제도나 경제체제 중심의 통일 논의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지난 2-3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남·남갈등과 '퍼주기 논쟁'은 사실상 남한 사회 내에서 건강한 정치문화와 일상적인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왔다. 그래서 본인은 여성들은 '통일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통한 통일'의 길을 선도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약간의 우회로를 돌아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와 남한 내 일상적인 평화를 정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여성들이라도 평화를 앞장 세우는 노력을 적극 실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통일운동을 관통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넘어서서, 우리 운동에 전지구적 관점(global perspective)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더불어서 우리의 평화실현과 아프간 전쟁의 연계성을 보다 명확히 제기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저항주체로서 여성이 평화운동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평화를 위한 여성의 적극적인 저항에서 정형화된 상징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국제적으로 영국의 그린햄(Greenham commom) 철거운동에서는 여성들은 핵 시설의 철조망에 기저귀를 걸었고, 시위를 하는 자신들의 목에는 어린이의 사진을 걸었다. 미국에서 핵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시위에서는 가사노동에 대한 파업을 선포하였다. 시위의 한 형태로 의회나 법정에 출석할 경우에는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복장을 함으로써, 권력기관에 있는 남성들에게 어머니나 누이의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지키는 또 하나의 어머니들(Another Mother for Peace)'은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 어머니날 기념 카드를 보내는 방법을 통해 평화를 호소하였다. 혹은 '평화어머니 헌장'도 20개국의 언어로 발표되었다. 대체로 '수동성'과 연계되는 이런 여성적인 상징물들은 여성들을 정치적 저항운동으로 전환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방법론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자칫하면 이가 성별분업이나 여성성의 이미지를 더욱 고착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평화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어쩌면 이런 방법론은 대중화를 위해 불가피할 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이 본질적으로 더 평화적이냐'는 논의로 우리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고, 여성들이 왜 평화운동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되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위의 여성적 방법론에 대해서도 계속되는 토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의 발상전환을 염두에 두면서, 여성평화운동의 실천방안을 정리해보자.

1) 북한의 식량위기를 도움으로서 (민족)평화공동체 만들기를 전개한다.

2) 군축과 복지사회제도 정착으로 (민족)평화공동체 만들기를 전개한다.

3) 평화체제로 전환하여 (민족)평화공동체를 형성한다.

4) 남북한 여성들의 만남과 다양한 협력을 통하여 (민족)평화공동체를 조성해 간다.

5) 남북한 국민들의 적대감을 조장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여 (민족)평화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여기에서 적대감을 조장하는 법이란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이다. 이 법의 폐지를 통해 남한사회 내에서 그리고 남북 간에 불화와 반목을 감소시킨다.

6) 평화연구와 평화교육을 강화하여 국민에게 평화의식을 심어준다.

7) '평화문화운동'을 전개하여 (민족)평화공동체를 만들어간다. 특히 이는 반군사주의 문화운동, 반북사상 시정운동, 언론횡포 감시운동, 자본주의 체제의 폐단을 줄이는 운동을 통해 새로운 대안문화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이분법적 사고의 극복, 적대적이라고 생각했던 타자와 의사소통하는 태도 그리고 상호이해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8) 국제적 연대를 통하여 다른 나라의 여성들과 더불어 평화공동체를 형성해가야 한다.


특히 동북아여성들의 평화운동이나 시민운동 단체, 미국과 유럽의 여성단체 혹은 해외동포여성들과 연대하여 우리의 국익실현이 타국에 비 평화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평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귀옥, 여성의 평화·통일문제 인식, 학술단체협의회·민주사회정책연구원 공동주관 연합심포지엄 <21세기 동북아·한반도 정세 전망과 평화·통일문제의 새로운 인식> 자료집, pp.193-212
김은실, 민족담론과 여성인권의 긴장, 여성평화네트워크 심포지움 발제문
우에노 치즈코(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서울: 박종철 출판사
정유진, 평화를 만든다는 것, 제주 인권학술회의 자료집, pp. 383-401
정현백(2000),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창작과 비평, 2000년 가을호, pp.97-112
Turpin, Jennifer (1999), Women and War, Lester Kurtz (ed.), Encyclopedia of Violence, Peace and Conflict, London: Academic Press, pp. 801-11
Yuval-Davis, Nira (2001), Gender Relations and The Nation, Alexander J. Motyl, Encyclopedia of Nationalism, Vol. 4, London: Academic Press, pp. 297-314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205 여성운동 희망이, 비추인다 - ‘모ㆍ부자 복지법’개정 운동 2007.06.08
204 여성운동 호주제폐지민법개정안 2003년 국회 통과를 위한 소나기 성명서 I 2003.11.21
203 여성운동 호주제폐지 각의 통과 환영 이제는 국회가 결정할 차례 2003.10.30
202 여성운동 호주제페지 운동 물결이 전국으로 2003.06.04
201 여성운동 호주제도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한다. 2003.11.21
200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하여 평등가족 실현하라!!! 2003.09.22
199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의 필요성, 대안, 운동 현황 2003.06.03
198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지도자 선언 2003.06.11
197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오해 2003.11.24
196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 올해 안에 국회 통과시키기!!! 2003.11.19
195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2004.12.29
194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 의원 입법추진 2003.04.25
193 여성운동 호주제 없는 평등 세상 함께 누릴 밝은 미래 2003.09.17
192 여성운동 헌법에서 명시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호주제 폐지!! 2003.05.29
191 여성운동 행복한 나눔, 평등한 가족, 힘내라 여성! 2005.03.08
190 여성운동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2010.03.03
189 여성운동 한국의 여성운동에 도움이 되고파 2009.01.23
188 여성운동 한국여성주의상담실천연구소 2010.10.19
» 여성운동 테러, 전쟁 그리고 여성 2002.04.17
186 여성운동 촛불시위와 여성정치시대 2004.04.08
Board Pagination 1 2 3 4 ... 11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