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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는 모름지기 해악이고, 진보는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 한다" 구한말 이제마 선생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조선사회를 이렇게 표현하셨다. 시대를 막론하고 갈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심정은 비슷한가 보다.

동종(同種)끼리는 갈라서고 이종(異種)간에 서로 결합한다는 오늘의 세상살이, 적과 동지가 분명치 않고, 적의 적은 동지가 되는 사회적 관계 맺기, 그러기에 너무나도 다른 것 사이에서는 오히려 아무런 긴장도 현성되지 않아 평화롭고, 오히려 같다고 여겨지는 내부에서의 차이가 더 커 보이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요즈음의 현상인 듯 하다.

이런 세상의 흐름 탓 인지, 아니면 여성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키웠기 때문인지, 여성단체간의 차이에 대한 기사가 최근 심심치 않게 언론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 일면 다행이고, 일면 우려된다. 왜냐하면, 대체로 언론은 시민운동을 다룰 때, 시민운동계라는 말을 사용하기 보다는, 특정 단체들을 거명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인 반면,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유독 ‘여성계’라는 표현을 쓰면서, 붓지도 않는 ‘계’를 붓는 이름도 없는 집단인양 여성운동을 취급해 왔던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추어, 이제야 비로소 개별 여성단체들의 활동의 차이를 언급할 정도로 여성운동의 볼륨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여성운동은 17세기 후반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재산권과 참정권을 요구한 부르조아 여성운동, 여성의 성적 해방을 요구한 자유주의 여성운동, 여성의 생물학적 차별을 거부한 급진적 여성운동, 계급해방을 통한 여성해방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 가부장적 구조의 해결 없는 계급해방을 통한 여성해방의 한계를 지적한 사회주의 여성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근원과 중심적인 해결과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왔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70년대 이후, 계급운동과 민중운동(여성노동자, 여성농민, 여성빈민), 여성폭력 철폐운동(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가부장제 철폐운동(호주제폐지운동, 가사 및 육아의 사회화), 민족해방운동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따로 또 같이’ 라는 독자운동과 연대운동 방식을 펼쳐 왔다.

글로벌 지식정보사회라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여성운동 또한 20세기 이후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영향을 받은 여성주의 이론은 메크로(macro) 보다는 마이크(micro)로, 중심보다는 주변, 다수 또는 주류 보다는 소수에 대한 강조, 하나 보다는 다양한 여럿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존재한다.

반면 7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은 각 계층과 계급 그리고 다양한 부문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여성 이슈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우선해결과제에 대해 합의하고, 또 과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 전략을 수립해서 진행되었다.

여성운동의 기본관점 중의 하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되, 기회와 과정 그리고 결과에서 평등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운동'이다. 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붕괴를 계기로 여성운동 또한 이념적 차이와 대립보다는 성 평등을 위한 현실적 과제 해결에 집중해 왔다. 지금까지 이념이 현실을 해석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이 이념을 분화시키면서 여성운동 내부가 개별화되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운동의 각 부문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근거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상호 경쟁하고, 오히려 여성운동이 풍부해지면서 여성의 세력화, 주류화에 더욱 기여하게 될 것인가? 결국 여성운동 내부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각각의 치열한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검증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책임 있는 집단간의 대화와 소통을 통한 선택일 때,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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