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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올해는 북경여성회의가 개최된 지 9년째가 되는 해이며, 특히 2005년인 내년은 북경대회 1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유엔은 기본적으로 매 5년마다 세계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세계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이후 세계회의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면서 북경여성회의 이후 10년을 기념하는 세계대회 역시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대신 향후 2년에 걸쳐 아태지역 차원에서 북경여성행동강령 이행을 점검하는 정부간 회의가 2004년 9월 7일부터 4일간 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뒤이어 2005년 3월에 매년 개최되는 유엔여성지위위원회를 여성특별총회로 삼아 각 대륙별로 전개된 정부간 회의와 결과가 보고 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국제적 흐름과 정부간 회의의 일정을 앞두고, 아태지역 여성운동 차원에서 '북경+10 여성NGO 포럼'이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4일간 역시 태국의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서아시아의 이란과 터키, 남아시아의 스리랑카와 인도,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동남아시아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중국 또한 마지막으로 태평양지역의 피지와 호주 등 아태지역 35개국에서 해외 참가자만 약 700여명 연 인원 천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방콕 외곽의 살라야에 위치한 마히돌 대학에 모여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북경 이후 10년 동안의 여성운동의 성과와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문제 그리고 새롭게 부딪히고 있는 현안 과제들에 대한 평가와 토론을 전개하였다.
찌는 듯한 방콕의 무더위와 호텔과 회의 장소인 마히돌 대학을 셔틀로 출퇴근한 아태지역 NGO 포럼 참가자들은 3박 4일 동안 4차례에 걸친 전체회의와 12개 분야별로 조직된 수십 개의 워크숍, 그리고 매일 밤 개최된 여성영화제 및 평등장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 그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진행된 이틀간의 여성인권운동가 보호를 위한 시위에 참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체회의의 첫 번째 주제는 '지난 10년의 성과와 새로운 도전' 이었고, 두 번째는 '무슬림 사회에서의 아시아 여성; 전망과 투쟁'이었다. 세 번째의 주제는 '초국적 여성운동; 세계화 속의 미래 정치와 도전',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주제는 '여성의 권리, 민주주의 그리고 지속가능 개발의 과제'였다. 또한 12개 분야에 걸쳐 각 단체가 스스로 조직한 수십여 가지의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들 걷기보다는 뛰어다니다시피 모든 참가자들은 열정을 보였다.
전체회의에서 논의된 많은 주제 중에서 성과가 강조되기도 하였지만 한계와 새롭게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세계화와 전쟁의 위협, 여성운동에 대한 반동이 심화되는 상황과 특히 각국의 정치 및 문화적 차이가 낳는 여성운동의 다양성을 어떻게 통합해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국제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여성연대운동의 전망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제시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참가단은 한국여성 NGO 네트워크 차원에서 약 42명의 참가자가 참여하여 발표자와 조직단체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예를 들면,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네 번째 전체회의의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또한 '아시아의 선진 경제개발 국가에서의 신 빈곤여성'과 '여성의 정치참여 성과와 한계' 워크숍을 외국의 여성단체와 함께 조직하고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이와 함께 대회 기간 중에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고 김순덕 할머니에 대한 추모제를 7월 2일 진행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무리 없이 일정이 마무리되어 날인 7월 3일 오후 폐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모든 아태지역 참가자들의 입장을 모아 각 분야별 의견서와 전체 참가자 성명서를 채택과정에서 벌어진 몇 가지 헤프닝은 앞으로의 여성운동 10년에 대한 방향모색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겨 주었다.
대만대표가 제기한 중국 내의 성매매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한 중국 대표의 답변 과정에서 중국대표는 '중국 내의 성매매 여성인권 문제가 존재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대만은 중국의 영토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여 회의장 전체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매애와 여성연대가 대립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주었다.
또한 성명서의 문구에 성매매 여성이라는 용어를 'Sex Worker'로 사용해야 한다는 태국과 홍콩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이란과 필리핀 여성이 나와 성매매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적 착취를 하는 것인데 이를 성 노동자라는 용어로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강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 나아가 Force Prostitution 이라는 문구는 성매매 자체가 여성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적 구조에 의한 문제라는 점에서 'Forced'라는 단어를 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각국의 참가자들은 성명서에 들어갈 단어 하나를 둘러싼 입장을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무엇보다도 대회기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스로를 'Young Women'이라 칭한 그룹이었다. 이들은 성명서의 내용 중에 여성이라는 문구 앞에 'Young Women'이라는 용어를 별도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젊은 여성 또한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며, 젊은 여성만을 따로 열거하였을 경우, 농촌여성과 노인여성, 달릿여성(불가촉천민여성), 비정규직 여성, 이주여성 등 젊은 여성 집단 외에도 열거할 여성 집단이 수두룩하므로 도저히 열거할 수 없다는 다수의 문제제기를 받았다. 결국 젊은 여성 집단 내에서 이미 젊은 여성들의 성명서가 따로 준비되었으며, 꼭 성명서에 문구를 넣기 보다는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취지였다는 변과 함께 스스로 이를 철회하기로 결정하여 일단락되었다.
이처럼 같음 보다는 다름이, 하나 보다는 여럿이, 통합 보다는 분리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던 이번 대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공통의 소통과 모색, 그리고 함께 전망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입장에는 모두 공감하였다.
우리 모두 실감하듯이, 지난 10년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정책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그러나 지난 9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지적되었듯이, 한국은 여전히 “법·제도상(de jure)의 평등과 실제상(de facto)의 평등 간에 괴리(gap)가 심각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어 여성들이 체감하는 평등지수는 여전히 낮아 실질적인 평등을 위한 다음단계의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껏 한국정부는 여성폭력방지와 인권보호를 위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방지법의 제정과 함께 여성정책 담당기구의 확대, 성인지 예산정책의 수립, 그리고 최근의 여성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 도입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자유화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확대 및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과 직장과 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부족에서 기인되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며, 성 주류화 전략에 입각한 여성관련 법과 제도의 마련이라는 제도적 장치의 강화가 이룬 성과는 크나 동시에 여성을 여전히 차별과 폭력의 희생자로 만드는 전 지구적 구조의 전환을 이루어내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운동의 한계, 무엇보다도 운동 주체들의 다원화와 다양화 속에서 향후 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여성운동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향후 10년의 여성정책은 현재까지의 가시적이고 선언적인, 돈 들지 않는 여성정책을 넘어서 통합적 대안 패러다임의 모색을 통해 '빈곤의 여성화' 극복을 위한 노력에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앞으로의 여성정책은 더 이상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과 소년 그리로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사회평등 정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여성문제는 더 이상 여성지위 향상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로 진행되고 있기에 통합적 대안 패러다임의 모색은 불가피하다. 여성운동, 이제는 모든 사회정책과 모든 계층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보고, 또 여성적 관점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총체적 사회변화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요구받고 있다. 갈 길이 멀다.
